삶의 무상함으로 용감해진다

삶과 생의 아이러니

by 문해월

얼마전 친구가 떠났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비보였다.

인스타 스토리였는데 처음엔 짖궂은 장난인줄로만 알았다.


자주보진 못해도 친한친구의 베스트프랜드였기에, 몇번씩 협업을 하며 일년에 한두번씩 얼굴을 보곤 하면서 굉장히 오랜시간 알고 지냈던 친구였다.


만날때바다 항상 밝고 배려심이 넘치며 장난끼 넘치고 반듯한 사람이였다.

지금도 떠올리면 익살스럽게 웃는 못습이 제일먼저 떠오른다.


세상엔 설명되지 않고 이해할수 없이 따라오는 결과들이 있다.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들, 심지어 누구나 부러워 할만한 아름다운 외모의 연예인의 스스로 선택된 죽음과 같은 결과들


많은 사람들이 누려보지 못한 좋은 상황에 있음에도 이해되지 않는 선택.

사실 이친구의 죽음도 그렇게 느껴졌다.


예체능을 전공하며 프리랜서로서 불확실한 커리어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있었지만 집안이 매우 좋고, 친구들 교우관계까지 굉장히 좋던 친구였는데, 미래 커리어 적인것들과 생활비 같은 문제로 우울감을 느꼈고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힘들을 주변에 털어놓고는 해서는 안될 선택을 했다.


주변 모두가 입을 모아 슬픔속에서도 의아해했다. 왜 왜 왜.

사실 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생활고로 힘들다 해도 집이 이렇게 부유한데..?


그래서 더 애통하고 무상했다.

모른다.

이해라는건 내가 사는 세상안에서 이해될만큼만 이해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채워 지지 않는 물음만큼 비어버리고 공허해져 버렸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정말 중요한 것인지, 물음표가 채워지지 않는 크기만큼 나의 고통도 붕 떠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는 수억대의 빚이 있고 가난해도 살아가며

누군가는 탄탄한 안전지대 속에서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며 불안감에 삶을 마감한다.


누가더 강하고 약하고의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그냥 우리는 모르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까지도 타인의 고통을 내가 온전히 느껴볼수 없다.

내가 경험한 감정속에서 이해되는 만큼 아파볼수 있을 뿐이다.


그럼 절대적으로 죽음까지 몰아갈수 있는 절대적으로 큰 고통이 무엇이라고 말할수 있을까?

어떤 이유여야 죽음이 납득되는 그런것이 있을까?


글쎄 없다. 이세상에 절대적인 고통도 없고 고통만 있는 선택도 없다.

기준이 모호해질수록 세상 모든것들이 모호해지고,

모호해질수록 모든것이 무상해진다.


삶은 '그냥'

두려울것도 없어진다.

더욱 단순해 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인간은 욕망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항상 무언갈 원할것이다.

그 원하는것을 이루려고 고통스러울 것이고 이루지 못할 것에 고통스러울 것이다.

근데 조금은 모두가 무감각해지고 조금은 낙관적이였으면 좋겠다.


고통의 터널을 몇번씩 지나고 빛을 느꺄본 사람이라면 공감할수 있을것이다.

빛을 '믿고' 현재를 견디면 분명 어떤식으로든 세상은 길을 만들어 준다.


삶의 무상함으로 허무함만을 비단 이야기 하려는것은 아니다.

삶의 무상함을 온몸으로 맞고 모두가 무딘 갑옷을입고 좀더 용감해졌으면 좋겠다.


그냥 우연히 받은 삶이라는 선물, 다 써봅시다. 끝에 뭐가 있을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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