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스무 살

시골 호랑이 상경하다

by 토박이

“아따 허벌라게 춥네!”

서울의 겨울은 목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목포는 바닷바람이 불긴 했지만 이렇게 뼛속까지 시리진 않았다.

마치 수천 개의 바늘이 온 몸을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일기예보를 보지 않았냐고?

훗. 나처럼 철두철미한 놈이 그랬을 리가.

지금 이렇게 개고생하는 이유는, 바로 얼마 전 보세가게에서 구입한 세무 정장 때문이다.

‘진정한 멋쟁이는 추위를 타지 않재.’

오로지 멋을 위해, 나의 거시기가 쪼그라드는 정도의 고통은 감내해야 하는 법이다.

왼쪽 귀엔 금색 링을, 오른쪽엔 베이직 큐빅 귀걸이를 차고 탈색한 머리엔 젤을 아낌없이 처

발랐다.

역시 초강력 슈퍼 울트라 하드 젤이라서 아무리 눈발이 휘날려도 꿈쩍도 않는다.

남자는 머릿발로 절반은 먹고 들어가기 때문에 허투루 할 수가 없다.

이 정도면 준비는 완벽에 가까웠다.

단 한 가지, 신발만 빼면.

발이 꽁꽁 얼었다.

진창길에 세무 구두가 젖어 점점 발가락에 감각이 없어진다.

이건 답이 없다.

얼른 가서 양말이라도 갈아 신는 수밖에.

얼어붙은 땅바닥 탓에 뒤뚱거리며 서둘러 목적지인 운동장으로 향했다.

운동장이 가까워지자 여기저기 학생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두툼한 패딩에 편한 운동화 차림이었다.

목도리를 칭칭 감고 털모자를 푹 눌러쓴 채 삼삼오오 무리 지어 걸어가는 모습이 마치 펭귄

떼처럼 보였다.

나름 귀엽긴 했지만 내가 추구하는 '멋'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도 느꼈지만, 서울 사람들은 생각보다 꾸미지 않았다.

실용성을 우선시한다고 해야 할까.

‘그치만 따뜻해 보이긴 하는데...’

살짝 부러웠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첫인상이 얼마나 중요한데, 이깟 추위쯤이야.

마음을 다잡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우와~”

마침내 도착한 운동장은 상상 이상이었다.

수십 대의 버스가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었고, 넓은 운동장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학생

들로 가득 차 있었다.

축하합니다 새내기 여러분!

청춘의 첫 발걸음을 함께!

형형색색의 현수막들은 만국기처럼 운동장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펄럭이는 천들이 마치 축제의 깃발처럼 보였다.

데스터니~~~!

그 순간 시야에 들어온 그림 같은 풍경들.

저기 영문과 현수막 아래, 흰색 패딩 여학생.

눈처럼 하얀 피부를 반짝이며, 강아지처럼 살짝 처진 눈으로 해맑게 웃고 있는데...

오잉? 흐음.

글쎄, 뭐랄까.

너무...

내 스퇄이야~~~!!!

또, 또 저쪽 경영학과 부스 앞에 무심한 듯하면서도 맑고 쓸쓸한 눈빛의 그 여자!

새하얀 눈이 내려앉은 검은 머리, 갸름한 턱선, 굳게 다문 입술까지.

나 원참.

진짜 이런다고?

이건 못 참지...

흐읍~

오겡끼데쓰가~~~!!!

꼭 영화 러브레터 속 주인공 같은 느낌의 그녀였다.

중고등학교 6년 내내 남자들끼리만 지내온 나에게 이곳은 그야말로 신세계!

‘ㅅㅂ... 대학이 이런 곳이구나.’

세무 정장을 입고 온 보람이 있었다.

추위 따위는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입가에는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우리 과에는 어떤 여학생들이 있을까?’

‘첨부터 바로 막 사귀는 건 자제해야겠지?’

‘미팅도 하고 소개팅도 좀 하고, 그래야 하잖아.’

설렘 가득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우리 과 현수막을 찾기 시작했다.

“저기다아!”

그중에서도 유독 붉은 글씨로 크게 쓰인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2001 고구려대학교 강철공대 새내기 새로배움터!

바로 그거였다.

나는 오늘부터 2박 3일간 설악산에서 열리는 고구려대학교 새내기 새로배움터, 일명 '새터'에

참석하러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