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지 않은 것들의 탄생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세계에 내보낸다.
UX 언어로 분류해 보면 콘텐츠, 세션 리플레이, 클릭 히트맵, 스크롤 깊이, 체류 시간, 이탈 지점. 말 한마디, 표정 하나, 어느 날의 사진. 그것이 포착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의 원본이 되고, AI 학습의 데이터가 된다.
오늘날 우리는 더 광범위한 의미의 탄생을 목격하고 있다. 밈(meme)의 탄생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밈을 문화적 복제자로 처음 제시한다. 유전자가 생물학적 복제를 통해 생존하듯, 현대의 밈은 '모방'과 '플랫폼'을 통해 살아남는다. 그리고 한번 태어난 밈은 좀처럼 죽지 않는다.
얼마 전 유튜버 충고의 영상은 요즘 다시 화두가 되는 반출생주의(antinatalism)를 다루고 있었다. 논리는 단순하다. 존재는 고통을 수반하며, 동의 없이 타인을 고통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행위는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 반출생주의가 두려워하는 건 결국 고통의 연쇄 전달이다. 염세주의적 고통과 업의 반복.
그런데 그 '던져짐', 세계 속으로 방출되는 방식이 꼭 하나뿐일까.
밈은 관계에서 기원한다. 누군가의 발화와 다른 누군가의 시선이 교차하는 접점에서 수태된다. 그런 의미에서 밈은 단순한 인터넷 유행어가 아니다. 단순한 은유를 넘어 실제 존재론적 단위가 된다. 하나의 밈이 탄생하는 순간, 그것은 세계 속에 존재하기 시작한다.
밈은 오리지널에서 떨어져 나와 수천, 수만 번 복제되며 새로운 의미를 입는다. 처음의 맥락은 지워지고 새로운 이야기가 덧씌워진다. 슬픔이 웃음이 되고, 진지함이 조롱이 되고, 누군가의 가장 솔직했던 순간이 타인의 오락이 된다.
원본은 자신의 밈을 통제하지 못한다. 의지와 무관하게 세계 곳곳에서 재탄생을 반복한다. 이미 세상에 나온 것은 거둬들일 수 없다. 여기서 반출생주의의 질문은 디지털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미끄러져 들어온다. 복제된 존재에 대한 조롱, 오용, 왜곡. 그 통제 불능의 감각은 반출생주의가 말하는 '던져짐'과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모두가 끝없는 탄생의 행위자가 된다. 그리고 세상에 내보낸 것은 손을 떠난 순간부터 우리 것이 아니다. 변형되고 복제되며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레거시라는 이름으로, 밈이라는 이름으로, 업(業)처럼 세계를 순환한다.
그렇다면 디지털시대에 반출생주의의 윤리는 어디까지 적용될 수 있을까. 우리가 세계에 내보내는 모든 것에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면. 이것은 고통을 복제하는가, 줄이는가.
그 질문은 모두의 손가락 끝에 놓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태어나게 할지 조금 더 오래, 깊이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