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와 사고의 재설정
다들 2026년을 살아가는데 나만 작년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뒤처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본다. 손때 묻은 책장을 넘기다 보면, 오래전에 쓰였어도 낡지 않은 문장들을 만난다. 십 년 전 책이든, 백 년 전 책이든, 어떤 문장들은 시간을 초월해 빛난다. 새로운 것만 좋은 건 아니라는 것을, 새로운 시작만이 답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알 수 있다.
IT 업계가 더 그렇기도 하고 트렌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고,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다. '지금 이 순간'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조급함 FOMO가 매일 정신을 휘감는다.
그래서인지 작년에 머물러 있다는 감각은 어쩌면 방임과 같은 죄책감처럼 느껴진다. 남들은 모두 앞으로 나아가는데, 제자리인 것 같은 기분.
하지만 정말 그럴까?
독서의 순기능은 단어에 대한 시각이 재설정되는 것이다.
'뒤처진다'는 말을 생각해본다. 누구의 기준으로? 무엇으로부터? 어디를 향해 달려가야 뒤처지지 않는 걸까?
책을 읽으면서 나는 '뒤처짐'이라는 단어를 다시 바라본다. 어쩌면 내가 머물러 있다고 느끼는 그 시간은, 뿌리를 내리는 시간일 수도 있다. 천천히 삭히고, 곱씹고, 이해하는 시간이다.
헤르만 헤세의 문장은 100년이 지나도 낡지 않았다. 버지니아 울프의 통찰은 지금 읽어도 날카롭다. 이문열의 문장은 여전히 무게감이 있다.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유행을 타지 않는 '본질'이 있다.
그것을 이해하고 발견하는 건, 트렌드를 쫓는 것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다.
너무 흔한 구호지만 모든 이가 같은 속도로 달려야 하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빠르게 질주하고, 어떤 사람은 천천히 걷는다. 어떤 사람은 잠시 멈춰 서서 주변을 본다.
마찬가지로 예전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읽는 행위는, 그래서 퇴보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얼마나 변했는지, 혹은 변하지 않았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같은 문장이 다르게 읽힌다면, 그건 내가 성장했다는 증거다.
새로운 시작은 설렌다. 하얀 도화지 같은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때로는 새로 시작하는 것보다 계속 이어가는 게 더 어렵고, 더 용기 있는 선택이다. 작년에 시작한 일을 올해도 계속하는 것. 몇 년 전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것. 이미 알고 있던 것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것.
이 모든 게 뒤처지는 게 아니라, 깊이를 더하는 과정이다.
불안한 마음이 들면 나는 오래된 책을 펼친다. 시간이 검증한 문장들 사이에서, 조금씩 나만의 단어 사전을 업데이트한다.
'뒤처진다'는 말 대신 '머문다'라고 쓴다.
'느리다'는 말 대신 '신중하다'라고 쓴다.
'낡았다'는 말 대신 '깊이 있다'라고 쓴다.
독서는 그렇게 내 언어를, 내 세계를 조금씩 바꿔간다.
2026년 2월, 머물러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