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 부는 겨울이면
늘 반장님이 계시는 주차관리실로
들어갑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오롯이 반장님만의 공간이라고
만천하에 알리고 있는데도
두꺼운 얼굴은 태연하게 들어갑니다
"반장님 오늘 너무 추워요"
"어서 오소 오늘 바람이 장난이 아이다"
주차타워에서 차가 내려오는 시간은 2분,
그 잠깐을 못 참고
관리실에서 찬 바람을 피하는 것이죠
따뜻한 히터 앞에서 손도 녹이고
거울 보면서 마스크도 고쳐 쓰고
티브이로 늘어난 확진자 수도 보곤 합니다
반장님
회사 주차타워를 관리하는 분입니다
성함도 모르고
그저 '반장님' 이라고만 부르죠
본래 반장이나 통장이라고
불려지는 분들은 못하는 게 없는 법,
우리 반장님도 예외가 아닙니다
혼자서 신나게
벽면이나 전봇대를 들이받아
차 한쪽을 허옇게 갈아오면
멀끔하게 고쳐놓으셔서
깜짝 놀랄 때도 있고요
퇴근길 아이들 밥 걱정에
마음은 벌써 부엌에 가 있는
여자 선배들을 위해
미리 주차 타워에서
차를 빼놓기도 하시는데요
주차관리실에서
선배들이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는 걸
CCTV로 보고는 그리 하시는 겁니다
물론 어디에나
밉상들은 있기 마련이죠
'내가 먼저 차 빼 달라고 했는데
왜 저 차가 나오느냐' 고 툴툴대거나
'나오면서 차 빼 달라고 전화했나 보네
나도 그래야겠다'라고
비꼬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엄마로 복귀하는 선배들을 배려하느라
좁쌀 같은 사람들의 날 선 말을
'흘려듣는' 반장님입니다
말을 듣지 않고 흘려서 듣죠
역시 못하는 게 없는 반장님입니다
이번 주 유난히도 따뜻했던 날
불어오는 바람에 봄 향기가 나서
관리실 문 밖에서
눈짓으로 반장님께 말씀드리고
밖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잠깐 들어와 봐"
관리실로 들어갔더니 자랑이 이어졌습니다
까만 블루투스
"아들이 선물해 주더라고 들어봐봐
유튜브에서 노래 틀면 이래 크게 나온다"
탁상 달력과 소형 라디오 사이
아담한 블루투스에서 나오는 트로트가
주차 관리실을 에워쌉니다
달력, 자랑하고 싶은 아들, 라디오, 전화기가
사이좋게 놓여 있습니다
아들은 특별대우죠
블루투스 아래에는 네모 반듯하게 접은
휴지를 깔아 두셨더군요
두꺼운 얼굴은 오늘이 아니래도
또 주차관리실로 들어올 테지만
반장님은 이 날 꼭 자랑하고 싶으셨나 봅니다
봄바람에 말랑말랑해진 마음으로
올 봄부터
반장님의 관리실은 북적댈 듯 합니다
늘 들락거리는 얼굴에
자랑스러운 블루투스까지
보태졌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