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같은 나이, 30대 후반의 개발자. 가끔 차 한 잔 하면서 농담을 주고받았던 그가 희망퇴직 대상자가 되었다. 성실했고, 해외 대학 출신인 그에겐 어쩌면 좋은 조건으로 이직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 마음이 불편한 것은, 회사가 임직원을 다루는 방식이 대단히 폭력적으로 느껴져서 그런 것 같다.
회사는 아주 명확한 기준으로 희망퇴직 권고 대상자를 선정했다. 나이가 많거나, 최근 몇년 내 C 이하의 고과 보유 여부라는 기준이다. 이는 아주 명료하고 누구나도 알 수 있으며 어쩌면 공평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준은 역으로 생각해보면 결국 기업이 어떤 인재를 필요로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젊고 좋은 평가를 받는 인재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기업이 가진 고유의 가치를 지키기보다 미래에 빠르게 대응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내 나쁜 평가가 하나라도 없어야 한다는 선별 기준이 과연 정말 우수한 인재만 회사에 남게 할 수 있는가?
대다수의 기업이 채택하고 있는 이런 방식의 선별 기준은, 기업의 평가 제도에 대한 신뢰도가 아주 높고, 실패에 대한 용인이 가능한 기업 문화를 가지고 있어야 유효하다고 본다. 그렇지 않다면 일반적으로 일을 잘하는 직원과 평가를 잘 받는 직원은 다를 수 밖에 없고, 특히 한국 기업에서는 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는 눈치가 좋아야 하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을 것 같은 조직과 실패하지 않을 것 같은 프로젝트를 찾아다니는 직원만 남게 될 것이다. 추가로 다른 회사에 이직할 수 있는 희망퇴직자는 이런 기회에 퇴직을 할 것이고 이직할 수 없는 퇴직자는 거절할 것이기 때문에 이번 희망퇴직의 결과는 어쩌면 돈을 쓰고 인재를 떠나게 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어떠하고 아니면 또 어떠한가. 내가 회사를 운영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가 떠나기로 한 날. 나는 한 통의 또 다른 퇴직 인사 메일을 받았다.
마치 결과가 예상되는 배드엔딩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으로 메일을 열어보았다.
그 분과 같이 일한 건 2달 남짓한 아주 짧은 기간이었다. 아주 열정적으로 같이 업무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거의 매일 얼굴을 맞대고, 그의 가정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게 될 정도로는 가까웠다.
내가 그 입장이었으면 어땠을까. 본인은 50대가 넘었고, 아내는 공기업에서 일하고 있고, 나름 두둑한 퇴직금을 가지고, 하나 뿐인 고3 아이는 수능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거절할 수 있었던 희망퇴직이라는 결정을 내린 그 심정.
어쩌면 20년 넘게 근무한 그의 빅데이터 속에서 이런 기회는 흔치 않으리라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얄팍한 나의 상상력으로는, 거절했다면 대학 등록금을 받을 수 있었을텐데 싶은 소시민적인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회답을 할까 고민을 한 참을 하다가, 마음 속 한 켠에 자리잡은 공허함을 어찌 할 수가 없어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