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슬쩍 보이는 거대한 흰 건물무리. 외벽에는 네모난 창이 각 맞춰 늘어서있다. 저 건물 모든 층마다 집이 있고 사람이 살고 삶을 이어나가는 터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아파트다.
나는 평생 그곳에서 살아왔다. 저 흰색 배경에 놓인, 네모 반듯한 바둑판같이 일률적으로 배치된 창문 속에는 내 침대가 있었고, 책상이 있었고, 작은 벽장에는 교복과 많지 않은 사복으로 채워져 있었다. 밖에서 보면 무수한 별 중에 하나인 저 창문이, 학생 때 나에겐 세상의 전부였다.
성인이 되고, 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작은 건물 속 방 한 칸에 살게 되었다. 그 작은 원룸은 내 몸 하나 간신히 뉘일 정도의 공간이었는데 그래도 주방과 화장실, 신발장까지 갖출 건 모두 있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내가 살아 숨쉬기만 하는데도 돈이 들어간다는 것을 배웠다.
결혼을 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드디어 아파트라는 곳에 살게 되었다. 본가에서 내 모든 짐을 가져왔고 작게나마 가족의 보금자리를 꾸며나갔다. 나만의 소우주를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완벽했던 내 공간은 아이를 갖게 되면서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나에겐 이미 조카가 4명 있었고, 자주 교류했기에 아이를 키운다는 것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내 일이 되기 전까진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뛰어놀고 울고 웃고 소리 지르는 존재이다. 아파트에서 들리는 아이들 소리에 내가 관대하다고 해서 모두가 그렇진 않다. 나는 아이를 가짐으로써 공동주택에 산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아이를 임신하면서 나는 이직을 했고 이사 갈 집을 알아봐야 했다. 당시 집값 상승은 폭발적이었다. 전세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던 우리에겐 서울에 있는 아파트는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출퇴근이 가능한 서울 근교 지역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때 시누이가 좋은 동네가 있다고 소개해준 곳이 바로 단독주택단지였다.
단독주택이 길을 따라 늘어서있고, 주변에는 넓은 공원이 펼쳐져 있었다. 같이 산책하면서 배우자는 자기가 살던 미국 주택가가 떠오른다고 했다. 나는 그 풍경을 따라 단독주택 단지를 바라보았다. 넓고 한적한 잔디밭 너머 보이는 해질녘 태양이 잔디밭을 붉게 물들이는 아름다운 풍경. 나는 이 공간에 마음을 뺏겼다.
아이가 걷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단독주택으로 이사 갔다. 한 뺨 정도의 마당이 있는 3층 건물. 옥탑방 옆 테라스에서는 한강이 내려다보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세차를 하고, 손님을 불러 옥탑방에 올라가 보드게임을 즐기기도 했다. 아이는 늘 뛰어다니며, 장난감 차를 밀고 끌고 다녔고, 때로는 우리와 함께 노래를 부르며 마음껏 자유를 만끽했다.
아파트라는 작은 소우주에서 시작된 나만의 공간은, 이제 단독주택에서 우리 가족의 자유로운 세계로 확장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여전히 불안감이 있다. 우리 전 재산과 미래의 소득까지 담보로 한 선택, 몇 년간의 삶의 만족을 기대하여 내린 남들과 다른 결정. 과연 이게 최선일까? 다수가 가지 않을 길에는 내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아마 이곳에 계속 살든, 떠나게 되든, 나는 평생 이 고민을 끝내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납득하지 못한 이유로 당장 후회할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 일은 나에게 단순한 주거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늘 선택의 자유와 책임을 고민하며 살아왔다. 일본에서의 경험, 물리학이라는 길, 가족과의 삶… 모든 결정이 이런 고민과 닿아 있었다.
나는 일본에서 10년을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익숙한 일본어로 먹고살기보다 내가 관심이 생긴 물리학을 택했다. 공대를 복수 전공해서 취업하기보다 이론물리학이라는 진리를 탐구하는 길을 택했다. 내 가족과의 삶을 위해 과감히 학자라는 꿈을 접고 취직을 택했다. 이렇게 내린 결정들은, 가끔은 다른 길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도 든다. 허나 이 길엔 이 길 나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많이 벌진 못해도, 그래도 나답게 살아가고 싶다.
그 선택의 불안과 자유를 함께 안고, 나는 오늘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