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검사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나는 INTJ다.
MBTI를 믿지 않는 INTJ다.
내가 MBTI를 믿지 않는 이유는, 과학적 근거가 희박하고, 최근 심리학 연구나 심리 상담 임상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으로 치면 사체액설이나 천동설 같은 것이다. 사실상 유사과학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TI는 사회에서 제법 효용성을 가진다.
MBTI는 외/내향, 감각/직관과 같은 네 가지 축으로 성향을 나눈다. 나는 내향적이고 직관적이며 사고형이고 판단을 선호하는 성향이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하지만 난 MBTI를 유사과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 INTJ 유형에 거의 정확히 들어맞는다. 여러 번 검사해 봤고, 심리상담에서 진행한 검사도 해봤으나 결과는 늘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MBTI는 각 유형에 대한 해석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또 당황스럽게도 거의 모든 INTJ 특성에 해당한다. INTJ는 흔히 '과학자형'이라고 불린다. 나는 이론물리박사이다. 또 시스템을 이해하고 다루는데 강한 유형인데, 현재는 AI와 딥러닝을 공부해서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고 있다. 단순히 설명에 들어맞는 수준이 아니라, 어떤 구체적인 부분까지 그대로 맞아떨어진다. 예컨대, 'INTJ는 MBTI를 믿지 않지만 쓸모가 있다면 활용한다'와 같은 부분 말이다.
그렇다. 이 글은 MBTI 불신론자인 INTJ가 어떻게 이를 인간관계에 활용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INTJ는 비교적 드문 유형이다. 보통 똑똑하고 냉혈한처럼 보이지만, 친해지면 정을 주는 편이다. 알고 보면 타인에 대한 기준이 너무 높아서, 인간관계를 어려워한다. INTJ는 보통 효율성을 추구하는데, 내 경우에는 이게 회사 조직 운영까지 적용이 된다. 그래서 나와 일해온 조직장 들은 꽤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겪어왔던 상사들 중에서 나는 현재 상사를 가장 어려워한다. 그 이유는 서로 보고 성향이 정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조직장은 S와 P라는, 정확히 나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S에 반대되는 N은 연역적 추리를 선호하기 때문에 논리와 유추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 나는 이론물리학자다. 논리적 추론 엔진을 항상 돌리는 내 눈에는, 명백히 세상의 흐름이 보인다. 따라서 현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보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그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나에겐 너무나 자명하다. 이에 내가 미래 로드맵과 향후 예상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 상사는 어김없이 이런 말을 한다.
"그건 너무 앞선 걱정인 것 같네요. 넘어가시죠."
과연 이런 일뿐이겠는가. P 성향은 판단보다 인식을 중요하게 여겨서, 성급한 판단을 경계하고 현황을 정확히 인식하기 위해서 시간을 쏟는다. 그래서 상사는 정확히 파악하기 전까지 판단을 미루는 편이다. J인 나는 판단이 중요하기 때문에 빠르게 판단한 다음 액션을 하고 싶어 한다. 따라서 결정을 미루는 것은 J에겐, '난 일하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이러한 성격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을 적에 조직장에 대해 나쁜(?) 마음을 가지기도 했으나, MBTI에 대해 알게 되면서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방법을 많이 터득하게 되었다. 미래의 예상되는 문제보다 현재 눈앞에 닥친 리스크를 얘기하고, 꼭 필요한 판단에 대해서만 물어보고, 기다렸다.
사실 이건 정말 공개하고 싶지 않은 비결인데, 상사와 성격이 안 맞는다면 상사의 MBTI를 알아내는 것도 방법이다. GPT에게 "이 MBTI 유형을 가진 상사에게 보고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물어보길 바란다. 몇 번 하다 보면 감쪽같이 그 상사가 원하는 방식으로 보고를 할 수 있게 된다.
MBTI가 과학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알고 있다. 하지만 INTJ 답게 쓸모가 있다면 활용할 뿐이다. 적어도 상사에게 보고할 때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