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AI에게 질문을 남긴다 – 희망퇴직 이후

회사에서 AI가 일상이 된 어느 날

by 물리학자

작년 희망퇴직으로 상처 입은 회사는 AI라는 허리케인으로 갈기갈기 찢겼다.


"올해부터 저희 업무에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봅시다."

팀장의 한 마디는 우리 모두의 업무 방식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시장 조사, 보고서 작성, 홍보메일, 서비스 기획, 개발 등 업무의 모든 영역에서 AI는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AI로 기획문서를 만들고, 서비스를 만들고, 챗봇을 만들었다. 이전에는 몇 달이 걸렸던 일이, 지금은 하루 안에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상무가 혼잣말처럼 남긴 말은, action item으로 기록되기도 전에 벌써 구현되었다.


이제 모르는 게 생기면 사람에게 묻기보다 AI에게 물어보게 되었다. 누군가 질문하면 AI가 더 정확하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누가 업무를 어떻게 잘할지에 대해 설파하면 외면받았다. 대신 프롬프트를 어떻게 쓰면 좋을지에 대해 공유하면 관심을 받았다. 인간관계상 어려움이 생기면 사람들에게 고민을 털어놓기보다, 인공지능과 대화를 이어갔다.


팀장이 지시한 지 하루 만에 자료 조사부터 PPT 작성까지 완성한 선임에게, 노하우를 물어보러 갔다.


"A선임님. 이거 어떻게 하신 거예요?"

"저도 AI한테 시켜서 잘 몰라요. 얘가 이렇게 하라고 하더라고요."

순간 어색한 공기가 흐른다, 누구도 눈치를 주지 않았다. AI가 잘한다니까, 그게 곧 우리의 모두의 기준이 되었다. 나는 급히 할 말을 찾는다.


"아.. 네.. 저도 얘한테 물어봐야겠네요."

"인공지능이 저보다 더 잘하더라고요. 하하"


서로 멋쩍게 웃고, 자리로 돌아간다. 이런 대화는 이제 낯설지도 않다.


우리는 전문성을 잊고, 마치 전문 투자자라도 된 양 주식 이야기에 몰두했다. 그렇게 시시콜콜한 대화를 이어가다, 어느덧 퇴근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축복받은 시대에 살고 있다. AI로 인해 전례 없는 생산성을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제 머리 아픈 일은 모두 맡겨 버리고, 핸드폰을 바라본다. 마음속 한 구석에 자리 잡은 공허 또한 채워줄 명령어가 있기를, 오늘도 나는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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