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세운 인간 행동 가설
내가 인간관찰을 시작한 이유는 단순한 호기심은 아니었다.
물리학자답게, 나는 그다지 사람에게 관심이 많지 않았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세상의 진리 앞엔 아무런 가치를 느낄 수 없었다. 나와 맞지 않아도, 물리학자는 기계처럼 진리를 쫓아다녔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없었다. 내가 인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회사에 입사하면서였다.
회사에 입사하고 보니 그곳은 마치 천국과도 같았다. 일을 전혀 하지 않아도 돈을 꼬박꼬박 주고, 대학원 시절보다 훨씬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지낼 수 있었다. 내가 대기업에 입사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회사에서 나에게 주어진 문제는 물리학만큼 어렵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일하다 보니 자꾸 한계에 부딪혔다. 바로 다른 사람과 협업을 해야 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나는 문제를 해결할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을 제안했으나, 그건 희한하게도 항상 받아들여지는 게 아니었다. 이제 회사를 9년 다니고 보니, 지금은 알겠다. 나는 월급의 대가를 문제해결로 봤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다른 이유로 회사를 다녔다. 아주 다양한 목적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그들은 여러 가지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회사에서 뭐 월급 받은 만큼 하면 되지."
서울대를 나온 박책임은 늘 그런 식으로 적당히 회사를 다녔다. 어떤 사람은 회사에 입사한 것을 일종의 보상처럼 생각했다. 그동안 힘들게 입시 경쟁을 뚫고, 하고 싶은 것을 참으며 얻어낸 값진 보상. 그에게 있어서 일은 보상을 누리기 위한 최소한의 대가였다.
또 다른 사람에게 회사란 내 성취를 드러내는 장이었다. 서책임은 모두가 우왕좌왕할 때, 멋지게 앞에 나서서 장밋빛 미래를 약속했다. 이를 통해 상사와 주변 동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다. 그에겐 그것이 회사를 다니는 목적이며, 그것이 실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자, 나는 전략을 수정했다. 다양한 회사를 다니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도 회사가 나에게 월급을 지불하는 이유는 문제해결의 대가였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내가 문제를 끝까지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하고, 문제 해결에 필요한 리소스를 구해야 한다. 내가 인간관찰을 시작한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전 회사에서 2년 차였던 것 같다.
그때부터 나는 데이터를 수집했고,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면 특정 유형의 사람에게 원하는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 습득했다. 이 과정은 고통스러웠으나 성과는 있었다. 바로 3건의 과제를 내 이름으로 성공시킨 것이다. 문제가 100% 풀리진 않았지만, 그럭저럭 제한조건을 고려한 경우 목표에 인접했다고 볼 수 있었다.
지금 회사에서 나는 '인사이트가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어려움이 생기면 사람들은 나를 찾는다. 인간해석에 있어서는 그래도 과거보다는 많이 능숙해졌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가끔씩, 이런 칭찬을 듣는다.
"책임님은 저에게 늘 성장할 수 있는 피드백을 줘서 감사해요."
입사초기에는 왜 그렇게 화가 나 있냐는 피드백을 받았었는데 장족의 발전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지금도 물리학자이다. 관찰하고, 규칙을 찾고, 문제를 정의한 다음 해결한다. 사람 또한 내 분석의 변수일뿐이다. 하지만 인간관찰은 때론 상대를 위한 배려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주: 본 글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했으나, 일부 장면과 대화는 이해를 돕기 위해 각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