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친구를 사귄다는 것

by 물리학자

40년 가까이 살아왔는데도 인간관계는 여전히 어렵다.


나는 첫 직장을 대기업(A사)에 입사했고, 3년 넘게 다니다가 다른 대기업(B사)으로 이직을 했는데, A사에서는 마음 맞는 친구가 참 많았다. 소위 프레시 박사라고 부르는, 박사 졸업하자마자 입사한 동료들이 많아서 그런지, AI라는 새로운 분야를 같이 개척한 경험 때문에 그런지, 아니 어쩌면 나이대가 모두 비슷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 친구들과 얘기하는 재미로 회사를 다녔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A사는 회사라기보다는 막 생긴 연구실 같은 분위기였다. 서로 진솔한 피드백을 주고 받았고, 좀 더 좋은 일과 좋은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서로 마음을 터놓고 논쟁을 벌이며 성장해나갔다.




내가 이직한 다른 회사, 현재 재직하고 있는 B사는 이전 회사와 많이 달랐다. A사에서의 상식이 이 회사에서는 통하지 않았고, 회사마다 기업 문화라는게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하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그런데 나한테 제법 크게 다가왔던 차이점은 B사는 A사와 다르게 훨씬 전형적인 회사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 대부분이 개인주의를 탑재하고 있고 좀 더 서먹한 관계를 서로 유지하고 있었다.


나의 일에 대한 열정은 여기에서는 호들갑 떠는 사람이 되었고, 상대방을 향한 진솔한 피드백은 남에 대한 괜한 참견으로 받아들여졌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하던가. 나는 한 동안 부탁받은 일을 하면서 상사나 동료가 요청한 일만 하는 회사원이 되었다. 부서에서의 나의 평가는 일은 잘하지만 사람들과 원활히 지내기 어려운 사람이 된 것 같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진솔하지만 뼈아픈 피드백을 감사하다고 얘기해주는 분들도 많았지만, 이전 회사에서처럼 같이 지내기 편해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어제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A사에서 같은 부서로 입사한 동기이며 만나면 늘 재밌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다. 청첩장을 받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왜 이렇게 마음이 편안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단순히 이 친구와 성격이 맞아서 그런걸까? 내가 대화를 하면서 편안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다시 떠올려 보면서 어떤 공통점이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회사원, 이공계, 박사, 나와 비슷한 연령대. 외적인 공통점을 추려내면 이 정도 나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이것 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현 부서에서도 이에 해당하는 사람은 많이 있다. 그러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심리적 안정감, 즉 자기의 분야에서 이미 성공을 경험한 사람들이었다. 그 성공으로 말미암아 자기 일에 대해 흔들리지 않은 태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에 꼬리를 물다보니 이전 회사에서 대화하면서 그렇게 편안하지 않았던 동료들이 떠올랐고, 역시 그 가설은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


물론 자존감이 높다고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같은 회사, 전공, 박사, 연령대와 같이 서로 향유할 수 있는 공통점이 배경으로 깔리게 되면서 같은 세계관을 공유할 때 그 때 자존감이 높은 사람과 나는 편안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자존감이 높은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는 스스로도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유유상종이라 하지 않던가. 내가 그렇게 자존감이 높은지는 확실치 않지만 나는 일을 하는데 있어서 자기 효능감이 중요하고,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인가 가장 최우선으로 자가 검증을 하는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회사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 어떤 사람은 회사에서 까지 그래야 하나 싶겠지만, 인생의 1/3이 넘는 시간을 사용하는 공간에서 가끔 마음 편히 차 한 잔 할 수 있으면 힘든 회사 생활을 버티는 힘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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