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회사에서 어떤 사람을 도와줬다. 그 사람을 도와준 이유는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그 사람이 고통스러워하고 있었고, 내 도움으로 타인에게 인정받는 경험을 한다면 바른 방향으로 향해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의 도움으로 그 사람은 나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지만, 끝없는 탐욕에 빠지게 되어 내 도움의 목소리가 끝내 들리지 않게 되었다. 나는 결국 그 사람과의 오해를 끝내 풀어낼 수 없어서, 다른 길을 가기로 했다. 나는 누군가를 도왔지만, 결과적으로 그 사람을 끝내 도울 수가 없었다. 이 경험을 복기하면서, 내가 정리한 사유에 대해 공유하고자 한다.
내가 믿는 사유의 방식은, 10년 넘게 공부해온 물리학에서 비롯되었다. 물리학적 사고란 과연 이런 것이다. 관측하지 못한 것은 존재하지 않고, 관측된 현상이 동일하다면 두 현상은 구별할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 생각은 절대로 타인에게 온전히 전달될 수 없다. 사람은 머리 속에 제각각 동작하는 세계 모델링 기계가 있어서, 각 자가 생각하는 세상을 추측하면서 살아간다. '나는 당신을 돕고싶다'라는 똑같은 말을 들어도, 어떤 사람은 말 그대로 너는 나를 돕고자 하는구나 해석하고, 어떤 사람은 너는 나를 돕겠다고 거짓말을 하는구나라고 해석한다. 아무리 글로 적고 말로 하고 소리쳐봐도 그 해석을 뛰어넘어 진심을 전할 수 없다.
물리학적 사고에서는 반면 어떤 사람이 어떤 말을 했을 때 그것은 관측된 하나의 현상이 된다. 그 현상에는 해석이 존재하지 않고 그저 그 현상, '나는 당신을 돕고싶다'라는 발화를 했다는 사실만 기억한다. 그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발화를 했든, 그 의도와 생각을 추가적으로 표현하지 않은 이상 물리학적 사고에서는 그저 '나는 당신을 돕고싶다'라는 발화를 했을 뿐이다. 의도와 생각, 감정을 추론하는 것은 심리학의 영역이지 물리학적 사고에서는 어떤 인간 개체가 나라는 인간 개체를 향해서 '나는 당신을 돕고싶다'라는 발화를 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남에게 어떻게 관측될 것인가 생각한다. 나는 10년 넘게 물리학 공부를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물리학적 사고가 뼛속까지 스며들어버렸다. 내가 어떤 사고를 하고 어떤 생각을 하든 내가 관측되는 현상과 실제 나의 생각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할 수 밖에 없고, 더불어 타인은 스스로가 가진 세계 모델링 기계를 통해 내 발화를 추론하기 때문에 같은 말도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들릴 수 밖에 없다. 인간의 부조리란 아마 여기에서 발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모두가 진심을 알아주길 원하지만 모두가 남의 진실을 각자 가진 세계 모델링 기계를 통해 곡해한다.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타인에 의해 관측되지 않았다. 관측되지 않은 생각은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오직 나만 관측할 수 있으나 이를 표현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