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페미니즘] K의 얼렁뚱땅
여대생이 캠퍼스를 거닐다 사회단체에 가입을 합니다. 낙태를 돕는 단체였고 처음엔 단순 자원봉사자로 주차장에 들어선 낙태 희망(고민) 여성을 센터까지 안전하게 안내하는 역할입니다. 쇠창살로 만든 센터 울타리에 밖에서는 낙태를 반대하는 단체의 회원들이 끊임없이 이들의 행동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인 여대생은 자신의 불법적 낙태 경험과 그 고통을 알기에 점차 센터 활동에 진심이게 됩니다. 결국 센터장의 자리에 오르게 되죠.
사회의 여러 문제에 흔들리지 않는 내 주장을 펼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저 같은 경우는 이 책, 저 책을 보다 보면 그리고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듣다 보면 매번 흔들립니다. 찬성하다가도 반대하다가도 ‘아 모르겠다. 내 문제 아니야. 몰라’ 이러고 치워버리기도 합니다. 누군가 의견을 물어오면 “그 사람들의 선택은 존중하는데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아”라는 이도 저도 아닌 대답을 할 때도 있습니다.
낙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마음의 무게 중심은 찬성 쪽으로 흐릅니다. 임신은 여성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중대한 사안입니다. 임신 자체가 축복이라는 말이 사실임에는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을 겁니다. 다만 저는 토를 달고 싶습니다. 모두에게 축복은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미처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여성도 있죠. 최악의 예부터 덜 최악의 예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더욱이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도 하더라도 여성은 자기 인생을 결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는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해당하는 일입니다. 여성이 임신이 가능한 신체이기 때문에 자기 삶을 결정할 권리 중 한 가지를 빼앗는 건 불합리합니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면 주인공은 센터장에 오르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센터를 방문한 한 여성의 자궁에서 태아를 기계로 축출하는 수술 현장에 들어가게 됩니다. 영화는 극적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자궁 안으로 들어간 축출 튜브를 태아가 이리저리 피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물론, 태아는 결국 의사 옆에 설치된 기계로 빨려 들어갑니다. 주인공은 그 과정을 지켜보다 뛰쳐나와 오열합니다. 물론 다른 사건들도 센터일을 그만두는 계기가 되지만 이 장면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저도 같은 장면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낙태에 관한 나의 무게중심이 옳은 것인가라는 회의감에 빠졌습니다. 잠시 마음을 추스르다 다른 영화를 보았습니다.
마약에 쪄들었으며 여러 남성과 성관계를 하는 여성, 그리고 그녀의 아들. 초등학생인 아들은 여자 옷을 좋아하고 여자 아이들과 잘 어울리고 말투와 행동 역시 여자처럼 합니다. 사뭇 달라 보이는 이 아이는 남자아이들의 놀림거리이자 일부 학부형에게도 여자처럼 군다며 괴롭힘을 당합니다.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주인공 남성은 이 아이의 친구이자 보호자가 되어줍니다. 남성스러움의 표상인 주인공은 점차 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아줍니다. 그리고 말없이 떠났다 돌아오길 반복하는 아이의 엄마로부터 이 아이를 지켜주길 희망합니다. 영화 말미에 아이 엄마는 주인공에게 법적 보호자 신분을 허락하며 아이 곁을 떠납니다.
개인적으로 여성스러움, 남성다움을 일반적으로 이미지화하는 사회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그려내는 전형적인 모습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앞선 영화 탓에 여성의 결정권과 태어난 아이의 삶을 연관 지어 생각해봤습니다. 모든 탄생이 축복일까요.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데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은 무관심과 방치, 학대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출산한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다만 여성의 결정권이 태어날 아이의 삶과 직결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저는 여전히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어느 곳에 무게중심을 두고 세상을 봐야 하는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세상은 바뀌고 있습니다. 모르시는 분이 있으실까 봐 알려드립니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낙태를 처벌토록 한 형법 조항은 2021년 1월 1일부터 효력을 상실했습니다. 다만, 죄는 사라졌으나 관련 입법은 공백 상태입니다. 여러 의원의 관련 법안이 국회 상임위 문턱 조차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모르겠고 표밭을 잃을까 노심초사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 사회는 큰 한 발을 내딛은 것으로 보입니다. 누군가는 퇴보라 욕을 할 것이고 누군가는 진보라며 응원할 것입니다.
비겁한 제 입장을 말씀드리면, 여성의 권리 보호가 사회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일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비단 여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사회적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다수에 속한 내가 가진 알량한 권한에 취해있지 말기 바랍니다. 경계를 허물고 다름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 성소수자, 다문화 가정 관련 운동을 응원합니다.
[첫 번째 영화는 언플랜드 / 두 번째 영화는 팔머입니다]
언플랜드// 팔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