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간규정 Oct 06. 2021

내 집은 어디 있나요.

유현준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 - K의 시선

우리 집은 ‘ㄱ’ 형태였다. 고풍스런 느낌의 한옥과 거리가 멀었다. 황토 바른 흙벽도 아니었고 전통 기와를 올린 지붕도 아니었다. 오래된 시골 동네를 지나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양철 지붕이지만 전통 가옥의 형태를 띠는 그런 집이었다.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었다. 마당도 있었고 툇마루도 있었다. 불을 지펴야 안방이 따듯해지는 아궁이도 있었다. 부엌으로 가려면 신발을 신어야 했으며 대문은 나무를 빗겨당겨야 여닫을 수 있는 오래된 형태의 문이었다. 당연히 화장실은 집과 분리된 외딴섬같이 집 한쪽에 홀로 서있었다. 국민학교 때가 돼서야 비로소 대대적인 내부공사를 했고 수도꼭지를 틀면 따듯한 물이 소중하게 나왔다. 지독하게 불편했고 사춘기를 겪던 시절에는 친구들을 데려오기 무척이나 부끄러웠던 집이었다. 


집의 형태를 그려오라는 기술 과목 과제가 고역이었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 대다수가 아파트에 살았다. 수도권 확장 정책과 서울 거주 환경 개선 등이 맞물려 분당, 일산에 대규모 신도시가 만들어졌다. 이제 막 1회 졸업생을 배출하는 신도시의 한 고등학교에 다녔던 나는 ‘다름’이 싫었다. 허구의 집을 상상했다. 몇 번 가본 친구 집의 아파트 구조를 도면에 그려 넣었다. 신발을 신지 않아도 화장실에 갈 수 있으며 수도꼭지만 돌리면 나오는 따듯한 물과 손이 꽁꽁 얼면서 ‘바깥’ 같은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는 아파트는 신세계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다. 


사회인이 되고 오피스텔, 아파트를 전전했다. 그동안 나의 시골집은 국토 개발계획에 따라 수많은 차들이 밝고 지나가는 도로의 일부가 됐다. 나의 하루는 콘크리트를 지나 철을 타고 땅 구석에서 지상으로 올라서면 쇠붙이를 타고 공중으로 떠오른다. 하루 종일 공중에서 일하다 바닥으로 내려서고 다시 땅 구석으로 꺼졌다가 오르기를 반복하다 보면 역시 공중에 떠있는 콘크리트 상자에 누워있다. 방에 누워있으면 개구리와 풀벌레 소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그 시절의 작은 방이 떠오른다. 화장실까지 가기 귀찮아 마당 구석에 소변을 보던 추운 밤도 생각난다. 비 내리는 날이면 창문과 방문을 열고 한가득 빗소리를 담아내던 마루에 누워 꿀잠 자던 여름도 기억난다. 무척이나 싫고 부끄러웠던 그 시절, 그 집이 기억나는 건 무슨 연유일까. 


자연스레 그런 집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럴 것 같은 동네를 찾아 서울을 방황한다. 굳이 서울이 아니어도 된다지만 일터에서 멀어질수록 삶의 질은 급격히 떨어진다. 어딘가 작은 모퉁이 하나에 내 집, 내 공간 하나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두리번거리며 거리를 걷는다. 건축이 눈에 들어오고 도시 공학에 관심이 생긴 건 그즈음이었다. 공간이 삶을 만들어낸다. 공간이 시간을 채운다. 공간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조우한다. 그렇다면 그 공간을 내가 만들면 되지 않을까. 누가 만들어놓은 공간에서 삶을 살아가는 것보다 내가 만든 공간에서 내 시간을 변화시키려는 욕심이 생겼다. 나에게 건축은 그런 의미였다. 공간을 확장하고 넓히면 동네(도시)가 된다. 내가 걷는 풍경 역시 내 삶이 된다.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지금 당장 만들 수 없으니 도로와 환경과 주택의 구조로 오래도록 흘러온 그 동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가늠해야 한다. 동네(도시) 설계와 공학은 내게 그런 느낌이었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내 욕망을 채워줄 여러 기준 중에 하나다. 아는 만큼 보이니 알아야 할 것이 많다. 집값이 수직 상승하고 내 몸도 수직 상승한 채로 사는 ‘좋은 동네’는 싫다. 지킬 것이 많은지 포용의 미덕이 사라진 ‘대규모 단지’는 더욱 싫다. 골프장, 헬스클럽, 마트, 병원 등이 모두 갖춰져 하나의 자치구로 만들어버리는 ‘고오급’ 주상복합 단지는 더더욱 싫다. 싫어하는 건 확실하지만 좋아하는 건 불투명하다. 다행인 건 시간은 많다. 집 살 돈도, 내 멋대로 건축을 의뢰할 돈을 마련할 시간이 아주 오래 남았다. 은행이 믿어줄 나의 신용을 만드는 긴 시간은 덤이다. 인생에서 흔치 않게 긴 시간이 주어졌으니 내 공간으로 들어서는 첫 관문인 ‘대문’의 모습부터 정해야겠다. 대문을 열고 중문을 지나 마루 같은 거실과 툇마루 같은 베란다, 사계절 쏟아지는 햇살을 머금을 수 있는 내 집이 어느 정도 구체화되면 현실도 현실화돼 있지 않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