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기자] K의 얼렁뚱땅
백신 2차 접종 후 이틀 동안 너무 고생했습니다. 사흘째 되는 아침, 허기에 잠이 깨었지요. 불현듯 한정식이 머릿속에 떠올랐어요. 그간 거의 먹은 음식이 없는지라 재료와 조미료의 맛을 분별해낼 수 있을 정도로 위와 혀가 깨끗한 상태라는 자신이 들었어요. 막상 같이 먹을 사람은 없었지요. 있었다면 접종 후 사흘이 이렇게 힘들진 않았을 거예요.
몸 상태가 괜찮진 않아요. 오한과 두통에 괴롭습니다. 머리 전체가 계속 찌릿찌릿해요. 온몸의 근육은 제 것이 아닌 느낌입니다. 그래도 어제보다 한결 나아졌어요. 결국 회사에 나왔네요. 맞아요, 오늘은 일요일이에요. 쉬는 날이죠.
뭐, 대단한 기사를 준비하는 건 아니에요. 뭐, 엄청난 취재를 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습관적 불안함이랄까요? ‘내가 만나야 하는 사람들은 연배도 많고 지식도 많을 텐데, 나는 제대로 세상을 알아가고 있나.’, ‘지금 내 생각은 한 달 뒤에도, 세 달 후에도 바꾸지 않을 만큼 확고하고 정제된 것인가.’ 등등 저는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정작 결과물이 좋지도 않아요. 그저 한 자, 한 자 써 내려갈 뿐이죠.
J님이 [단상]이라는 새로운 글쓰기를 해보자고 제안했을 때 느꼈겠지만 잠시 머뭇거렸지요. [독후감]도 한 달에 한번 쓰는데 거기에 하나를 더 하면 내가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었어요. 근데 또 우리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지요. “아니, 기자가 한 달에 두 개의 글을 못쓰는 게 말이 됩니까” 결국 J님 바람대로 우리는 [단상]이라는 글을 쓰기로 했지요. 그리고 발 빠르게 주제까지 정해준 J님. 이번 달 주제는 ‘기자’였지요? 이 단어를 접하는 순간, 머리가 더욱 복잡해졌답니다.
주변의 친구들이 간혹 제게 애증의 조언을 해주곤 했답니다. “야, 굳이 네가 안 해도 되니까 회사원처럼 살고 회사원처럼 행동해.” 이제는 한 아이의 아빠가 된 그들에게 저는 아직도 철부지 망아지처럼 살고 있는 것으로 보였겠지요. 굳이 제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란, 멋있는 말로 사회 정의, 권력 감시, 약자 보호 등등의 것이겠죠.
요즘 세상에는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기자가 될 수 있어요. 어렵지 않죠. 덕분에 기자의 자질이 도마 위에 오르곤 하죠. 기레기라는 단어도 익숙합니다. 생각해보면 검사, 변호사, 판사, 의사, 장관, 외교관 등은 모두 국가가 자격을 부여해요. 거기에서 힘이 생기죠. 근데 기자는 아니에요. 기자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자격을 부여해요. 혹은 시민, 국민이 부여하죠. 하고 싶은 사람들은 기자를 할 수 있고 대중의 심판을 받죠.
그래서 고민입니다. 쓰고 싶은 기사를 쓸 수 있고, 생각 없이 써 내려가는 기사를 인터넷에서 많이 봅니다. 사실, 문맥, 어휘에 어긋난 ‘쓰고 싶은 기사’를 흔하게 봅니다. 사생활, 험담, 욕설, 치정, 자극적 소재 등 공론화하지 않으면 더 좋을 것 같은 내용을 치열한 고민 없이 ‘생각 없이 써 내려가는 기사’를 봅니다. 저라고 달랐을까요. 휘발성 강한 소재를 제가 이끌고 불타오르는 인터넷 대중을 보고 환호한 적도 있죠. 남는 것은 흩날리는 재밖에 없는데도 말이죠.
두 자릿수 연차를 채워가는 마당에 저는 기자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오히려 어떤 조직에 속해있기 때문에 회사원으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알 수 있죠. 그래도 습관적으로 지켜가고 싶은 모습은 있습니다. ‘호기심 갖기’, ‘공부하기’
저는 세상에 궁금함이 생기지 않을 때 이 직업을 그만두고 싶어요. 그리고 그때까지는 공부를 이어나가고 싶어요. 하나의 사건은 하나의 면만으로 해석이 불가능하잖아요. 하나의 정책은 하나의 사회에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잖아요. 제가 많이 알면, 제가 많이 볼 수 있다면, 더 잘 쓸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제가 바라고 꿈 꾸는 세상이 있지만 그 이야기까지는 하지 않을래요. 개별 기자가 바라는 세상은 무궁무진하잖아요. 그저 무궁무진한 꿈을 현실로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하길 바라요. 기자라는 타이틀이 단순 어깨 힘이 들어가는 '자리'가 아니라 겸손과 예의 안에서 냉철한 이성을 드러내는 '자리'이길 바라요. 회사의 독촉에도 사실 확인을 하지 않으면 기사를 내보내지 않는 기자가 되길 바라요. 끝으로, 질문하는 힘을 기억하는 기자가 되길 바라요. 이 모든 바람은 저에게 보내는 채찍질이기도 합니다.
P.s J님,
단어를 갖고 글쓰기를 시작하게 됐네요. 사건일 수도 있고 명사, 동사일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더더욱 어려운 숙제가 될 것 같습니다. 부제 형식은 ‘[단상-(그 달의 단어)] J(K)의 얼렁뚱땅’으로 하면 좋겠어요. ‘단상’은 J님의 아이디어고 ‘얼렁뚱땅’은 무겁지 않게, 가볍게 생각을 담아내 보자는 제 의지입니다. 물론 한 번도 그렇게 써본 적은 없어요... 하아...
이번 달 제가 고른 책은 또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요.. 다음 달 만난 날을 기다립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