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향기 어머니를 그리며" -52-

'육감에게서 배운다.'

by 추재현

전라도가 고향이셨던 부모님

아버지는 목포 어머니는 고창 출신이셨다.

그러나 성장과정에서 즐겨드시는 음식이 달랐다.


해양도시 목포에서 할아버지는 선장 할머니는

선주이던 시절 바다에서 그득 잡아오던 해산물을

주로 드셨고 그때는 비싼 낙지가 풀빵보다 싸 새우와

함께 간식으로 자주 드셨다 하셨다.


광산김 고창지역 산골 농부셨던 외할아버지 와 외할머니에게 해산물은 먹으면 몸에 찌꺼기?

생겨 꺼리는 어떤 미신이 있다 하셨었다.


동태ㆍ생태 외 육지에서 구할 수 있던 몇 가지 해산물만

어쩌다 드셨고 농가부산물로 키울 수 있던 돼지고기를

주로 드시게 되었다 하셨다.


(외할아버지는 농약중독으로 일찍 돌아가셔서 장녀이셨던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일찍 외할머니

도와 농사를 지어오시다 돈 벌어서 어린 동생들 공부시키려고 과일ㆍ슈퍼가게일 하시다

그 당시 백수셨던 아버지를 만났다 하였다.)


안살림은 어머니께서 하시기에 취향 따라가기 마련

과일ㆍ슈퍼장사가 잘돼 워낙 바빠 가게에서 팔던

각종 인스턴트식품과 차리기 쉽고 다들 좋아했던

소ㆍ돼지고기를 잔뜩 먹고 자랐던 나


그래서 아토피로 고생하다 나중에 안현필자연식으로

깨끗이 나은 기적을 만나고 많은 돈을 벌어주던

가게를 포기하고 쉬시면서 동생이 생기게 되었다.


여러 군데 정육점을 돌며 고기질이 가장 좋은 곳을

찾아 단골로 다니며 주로 쟁여두고 해산물은 아버지성화로 조금씩 들여놓으셨다고 했다.


생선가게 보다 정육점 심부름을 자주 갔었다.

경북봉화 풀천지로 귀농하면서 해산물 비중이 늘었으나 기본값은 돼지고기였다.


어머니 돼지고기사랑을 오랫동안 만족시켜 주던

산골 맑은 한우 사장님도 잘해주셨지만 데리고 있던

남자직원이 친절하고 싹싹하다 칭찬하셨었다.


두 분 다 안경 쓰시고 고기에 냄새나지 않게 관리를

철저히 하는 노력 위생ㆍ청결이 몸에 배어있고

서비스도 자주 주셨었다.


그러다 내 말실수로 관계가 멀어지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단골정육점을 바꾸면서 연락이 뜸해졌는데

그때 직원분이 독립하여 영주에 음식점을 개업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고 시간 나면 언제 가봐야지 했었다.


하루 날 잡아 산사람은 살아나가기 위해 고인이 되신

어머니 흔적을 정리하다가 저녁을 먹으러 방문했다.


육감이라 한문과 섞인 가게간판 뜻이 멋지다.

셀프 볶음밥을 넣으려고 숯불이 아닌 건 아쉬웠지만

종류별로 돼지고기구이는 역시 맛이 있었다.

오후 7시 넘어 도시의 퇴근시간이었을까?

정장차림의 중년남성 샐러리맨들, 편한 차림의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들, 간간이 보이는 아주머니


테이블을 가득 채운 손님들은 주로 소주 한잔 하러 온

남성들이었고 그 사이에서 난 좋아하는 생맥주

시켜 먹었다.


이젠 사장님이 되어 알바직원 남자 대학생일 것 같은

한분이 써빙을 하는데 두 명이서 그 많은 손님들 원할이

받을 수 있게 셀프코너라든가 고기 굽는 방식을 맞추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사이사이 사장님과 인사하며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바빠 잘해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는 사장님

말보다 행동으로 챙겨주시는 스타일이신데

원산지 표시보고서야 알았다.


밝은 표정으로 손님을 맞아주시던 사장님이 아저씨가

아니라 아직 노총각이었다는 것을..


떡집 아드님도 그렇고 돈도 잘 벌고 그러는데 여자 만나

결혼한다는 건 다른 재능이 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까면 깔수록 나오는 매력이 팜므스타일이라 했던가

별말 없이 생색도 안 내고 질 좋은 고기를 주시던 분손에서 이리 맛있는 손맛 좋은 음식까지 할 줄아 시다니 후식으로 먹은 김치냉소면에 깜짝 놀랐다. (입안의 기름기를 맑고 담백 깨끗 정리)


다른 분들은 따뜻한 온면 드시던데 그것도 잘하셨을 것 같고 밑반찬 하나하나 신경 썼다는 것이 느껴졌다.


전 직장 산골 맑은 한우에서도 직원이긴 하지만 나도

언젠가 사장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오랫동안 독립을

준비하셨나 보다.


말없이 그냥 묵묵히 하다 보면 세상이 알아주게 되는 날이 온다.

생색을 내지 않으니 영수증을 세세이 살펴보고 서야

알았다. (폭탄계란찜 4천 원, 소주 1병 4,500원 서비스/전 직장 단골손님 오셨다고 잘해주었다는 것을..)


그리고 오신 손님들에게 나가실 때 행운 갇고 가시라고

쥐어준 한 장의 복권/로또만 알았지 동전으로 긁는 복권은 오랜만이다.

행운숫자 안 맞는 걸 확인

그래도 모르니 바코드 찍어 한 번 더

낙첨 다음 기회에


로또는 잘돼면 한방 이미지로 별다른 노력 없이 운에

기댄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크다.

잘되도 안 돼도 그만 집착하지 않고 재미로만 조금씩

해보는 건 나쁘지 않나 싶다.


어머니를 보내고 한동안 외식 할 때도 어머니 자리에 수저와 음식을 올리며 이야기하곤 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그러지는 않고 계셨으면 좋아하셨겠다는

이야길 나누곤 한다.


오감을 넘어 하나 나만의 감은 무엇일까?

그건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일단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며 집중한 시간이 만들어준 독창적인

실력 아닐까 싶다. (난 글과 그림을 키우고 싶다)


지금 나에게는 그게 있나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가질 수 있는지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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