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향기 어머니를 그리며" -53-

'내가 유명에 자신 있기 전까지 무명이었으면 한다.'

by 추재현

25년 12월 20일 토 요일


마을총회에는 새마을지도자 동생이 참석.

귀농길잡이 책에 실린 아버지글을 보고 (3년 전쯤)

찾아오셨는데 귀농하신 곳이 안동으로 가까이 계셨다.

한국에서 드문 같은 추계추 성씨에 아버지와 같은 나이

오실 때마다 '마음은 가볍게 양손은 무겁게'방문

하시니 금세 친숙해졌다.


어머니 돌아가시기 며칠 전 외국에서 결혼한 따님이 남편과 애를 데리고 추아저씨 농장에 자연을 벗한 삶을 살고 싶어 내려와 같이 있다.

(안동 산불피해로 집이 불타 시에서 마련해 준 숙소에

내 집처럼 지내고 계신데 외국인인 따님 남편이 살러오니 숙소 하나를 더 배려해 주었다 했다.)


어머니 돌아가시기 며칠 전 따님부부가 풀천지 이야기를 듣고 가보고 싶다 하여 같이 와도 되겠냐는

이양을 물어보았는데 아픈 모습을 보이기 싫다고

어머니께서 거절을 하셨다.


가까운 지역에 있으며 어머니 장례식 때 도움을 준분들에게 늦기 전에 신세도 갚고 마음 달랠 겸

검은색과 구별이 잘 안 되는 짙은 파랑 스타리아 몰고 여행을 떠난 아버지.

추아저씨와 어머니 추억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오셨다.


나는 오전 10시 총회시간 늦은 동생을 트럭으로

마을회관으로 데려다주었다.

태화 회색털신과 개사료 1포 외 필요한 장을 봐오겠다고

알리바이를 만들고 '열린 책방'으로 달렸다.


갈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 한다.

내가 사고 싶은 책이 많아 부모님, 동생 '안동성소병원'

다녀오거나 '영주장' 갈 때 책방에 연락해 몰래 다녀오기 때문이다.


내방은 좁고 책장은 한정적이라 책을 사 오는 날이면

책상정리를 한다.

책방사모님과 일정이 맞지 않아 만나지 못한 기간이

길어져 주문했던 책은 늘어났다.


오늘은 계신다 하여 최근에 추가한 그림 그리는

책들까지 가져올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책정리로 인해 전에 책들 안 보여 최근 그림 관련 9권)


어머니와 담았던 '마지막 복분자주 1병'과 '파카' (품질보증서가 들어있는 프랑스 볼펜과 리필심)을 들고 책방으로 갔다.

I

미리 기다리고 계셨던 사모님은 "잠깐 책방에서 기다리고 계셔요. 따뜻한 차 뽑아올게 뭐 드실래요."

"까페라떼요." 새로 지은 바로 옆건물 무인카페로

들어가셨고 난 책방구경을 하였다.


많은 책을 사고 빌려 같던 공간에 주인공들의 세대교체가 있었다.

내가 최근에 주문했던 책 상자는 보이는데

전파스 계속 쌓여간 책상자는 어디 있지?

이 책이 여기 꽃아 있었나.


책이 종류별로 분류가 잘 돼있고 새책들이 많이 보였다.

들어서는 주차장, 잔디마당, 무인카페, 책방 새 단장이

깔끔하게 되어 있었다.


책방사모님께서는 인자한 미소로 반갑게 맞이해 주시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좋은 말들을 해주신다.

그리고는 책 10프로 할인에 빌려주고 챙겨주시는 책들까지 어떤 게 필요한지 세심하게 살펴주신 배려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그런 사모님께 난 철없는 어린아이 같이 자기 자랑과

선물생색을 과하게 하다 돌아갈 때쯤 후회를 한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친척들과 풀천지카페 회원분들

그리고 식구들에게 까지 날 아는 가까운 분들에게

브런치에서 글을 쓴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사모님께는 다른 사람 심지어 가족과도

하지 않는 마음속 이야기를 길게 하게 된다.

비싼 심리상담까지 무료로 받고 온다. '믿음ㆍ신뢰')



가까이 아는 사람들이 보면 아무래도 부담이 된다.

내가 쓰고 싶은 대로 글을 쓰는 게 지장 받을 것

같아서이다. (소설이 아닌 에세이 형식이라 그럴지도..


"다음에는 더 좋은 사람이 되어 찾아뵙겠습니다.

건강하세요." 매일 글을 쓰고 이제는 그림 그리기도

접목하여 성공한 작가가 되겠다는 공수표를 마구

날리고 오는데 걱정되면서도 책이 바꾸어줄

내 미래에 설레었다.


《식물학자 허태임의 나의 초록목록》(김영사) 저자가 사모님 지인이라 사인본을 받아 읽어보았었다.

"가장 자연적인 것이 가장 과학적인 것임을 아는 당신께"란 문장으로 식물학자로서 보낸 삶을

섬세한 시선으로 관찰하여 이야기해 주었다.


마음만 제대로 먹었다면 천국 같은 삶을 살 수 있었던

풀천지에서 난 나와 다른 화려하게 성공한 삶들을 부러워하며 내가 가진 것들에 소홀하게 지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이 목차였다.

농부도 엄연히 식물학자 아니던가.

해마다 감당하기 힘들었던 그 많은 작물들

줄이기도 하는데 새로 늘어나기도 한다.


잔손이 많이 가고 조금씩 돌려지으니 시간이 지나면

신기하게 어디에 언제 심었는지도 모르게 된다.

(매일 글을 쓰고 사진 찍는데 왜 이리 까먹는지..)


저자는 어떻게 그 많은 식물들의 이름과 그들의 삶을

친구처럼 잘 알고 있는 것일까?

그건 항상 관심 어린 애정과 따뜻한 시선으로 맞이하기

때문이겠지..


나는 그러지 못했다.

건강하게 잘 살고 싶어 친구로 삼았던 농작물들과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고 원망도 했었다.

내가 이 나이 먹도록 결혼도 못하고 매사에 자신감이 없는 건 너 때문이라고, 다른 친구를 만나고 싶을 능력이 안되니 어쩔 수 없다.


그냥 그렇게 어색한 사이로 지내던 친구와 화해를 하고

앞으로 잘 지내도록 만들어준 책이다.


차례의 제목들에 풀천지재현의 나로 바꾸어 내경험을

정리해 머릿속에 써나가며 작가의 책을 두 번째 읽었다.


별 의미 없이 보냈다고 생각했던 세월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니 지루했던 하루가 달라졌다.

어쩔 수 없는 힘겨움이 설레고 신선한 경험이 되었다.

아버지께서 동생 데리고 풀천지일기 쓰며 삶을 개척했듯이 나는 과거ㆍ현재 풀천지재현을 데리고

나와 세상을 바꿀 이야기를 쓰고 있다.


나에게 멋진 작가라는 꿈을 꾸게 해 준 고마운 저자분의

두 번째 책이 나왔다.

《숲을 읽는 사람》'식물분류학자가 채집한 초록의 목소리'_허태임 (마음산책)

열린 책방 메인자리에 기본ㆍ큰 사이즈 2가지로 나왔는데 큰 사이즈로 구매했다.


사모님께서 고맙게도 사인을 받아주신다 하여 맡기고

기본사이즈를 빌려왔다.


'저자도 처음에는 무명이다가 유명으로 넘어간 시절이 있겠지. 제대로 자기 삶을 살아왔기에 이토록 담백하고

아름다운 초록의 싱그러움을 그려낼 수 있었을 거야.'


난 지금 저자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지?

또 쓸데없는 알량한 자기 자랑과 선물생색으로 부족한

나를 포장하려 들지 않을까?'


걱정을 지울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싶어졌다.


가고 싶은 길을 먼저 가 기다리고 있는 작가님이 가까이 있고 갈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 있기에

풀천지 하루는 오늘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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