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조사 장부를 이어서 쓰다가..'
닭모이 한통 만들고 닭장 2곳 알집 똥과 먼지 지저분 깨끗이 선호미로 긁고 컨테이너에 새 볏짚 갈아줌.
저녁준비 늦음:'가자미미역국'1끼에 다 먹는 양 성공
어머니께서 써오시던 '경조사 장부'이어서 쓰려고
보다가 중간에 써두신 두 형제에게 남긴 글 발견
참아왔던 눈물보 또 터짐.
어머니께서 마지막을 준비하지 않을 수 있게 치료에
성공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꾸 미련이 남는다.
남겨진 사진과 글에서 나마 어머니와 만난다.
(글씨가 참으로 곱고 이뻤는데 어느 순간부터 고통을
참으며 힘겹게 글씨를 쓰기 시작하는 과정이 어머니 '가계부'나 '풀천지농산물 판매부'에도 보였다.)
2025년 12월 28일 일요일
전에도 한 번씩 갑작스러운 심정지가 찾아와 의식을
잃을 때면 119 응급엠뷸런스가 응급처치 하여 안동성소병원에서 치료해 나아져 돌아오셨었다.
25년 12월 8일 월요일) 이번에는 좀 더 심각했지만 그래도 좋아질 거라 믿었었다.
동생이 먼저 119 응급엠뷸런스에 동승하여 어머니를
지켰고 따로 가시는 아버지 스타리아에 이젠 익숙해진
부모님ㆍ동생 옷가지와 세면도구 외 필요 생필품 실어드렸다.
난 남아 풀천지 남은 동물 식구들 돌보며 밀린 일들을
하였다. 다른 때처럼 좋은 소식이 오길 기다리면서..
"형 내가 아침에 택배 싸려다가 못하고 나왔어.
건대추 2kg 강남사모님께 부쳐드려야 하거든. 전화로
가르쳐 줄 테니까 형이 부치고 어머니 드시던 약들
찾아서 트럭 끌고 와야겠다."
목에 숨 쉬는 관을 찔러 넣어 폐에찬 죽은 피를 빼 억지로 의식만 간신히 차린상태라 하였다.
담당의사분이 마지막을 준비해야 할지 모른다고 흐느끼는 동생목소리를 들으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약과 유박비료를 치지 않으니 품질이 고르지 않아
좋은 걸로만 골라 2kg 건대추 맞춰 드리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어머니 아프신 뒤론 택배는 동생이 맡아서
하고 난 잘하지 않아 맞는 스티로폼 박스 찾아
꼼꼼히 테이프로 포장하기까지 쉽지 않았다.
가장 어려웠던 일은 글씨를 쓰는 거였다.
부모님은 글씨를 잘 쓰시는데 동생과 나는 악필이었다.
어머니께서 글씨가 이뻐야 세상 살기 좀 수월해지니
보기 좋게 쓰는 연습을 평소에 해두어야 한다 하셨지만
하지 않았었다.
풀천지 스티커와 송장에 그나마 보기 좋게 보이기 위해
5번 정도 다시 쓰는 노력을 기울이니 봐줄 만하게 나왔다. (이때부터 글씨를 신경 써서 천천히 쓰게 됨)
어머니께 골치 아픈 일들은 다 미뤄두고 세 남자들은
바쁘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보내왔다.
어머니의 빈자리는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란 걸 알게 해 주었다.
매일매일 해나가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
어머니는 어떻게 이 많은 일들을 해가며 세 남자들까지
넉넉하게 품어주셨을까?
어머니의 크고 넓은 사랑이 너무 그립다.
계속 슬퍼하고 주저앉을 순 없다.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야 하니까..
계실 때 좀 부지런하고 잘 도와 드렸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는 이미 늦었다.
'오늘 해야 하는 일들은 어떻게든 하고 만다.'
잦은 시도에서 오는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쌓아
이 험한 세상 잘살아나갈 일이 숙제처럼 남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