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 곶감 내려 포장/《귀농 길잡이》2
2026년 1월 4일 일 요일
25년 10월 26일~27일 1차)'산밭 감나무 5그루 20kg 컨테이너 16박스 수확/ 11월 2일 2차) 집 앞 감나무 1그루 5박스 수확(들깨 털기 겹침)
1) '곶감'과 도로 일일이 깎아 어느 정도 쌓이면 걸이대에 걸어 처마에 걸어주었다.
2)'식초'작다/깨졌다/물렁하다 (2층 사랑방 총 6 항아리 감만 채워 담음
*26년 11월 4일 '촉촉 쫀득 달콤 잘 마른 곶감'
다 내려 정리한다기에 사진 찍어둠.
70일 따스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친구가 돼주었다.
아버지와 동생이 처마에서 내려 컴프레서로 뿜고
다용도실로 들여놓았다.
1) 손님께 팔 보기 좋은 것
2) 작고 덜 이뻐 우리 먹을 것
상품이 되도록 모양 만드는 작업을 하셨다.
"재현아 오늘부터 점심 12시 참 4시 저녁 8시 식사시간
맞추겠다는 약속 지켜야 한다."
오전 10시 30분 알람 맞춰두고 동물들 돌보고 빨래 널며
내일 하다 점심하러 구부엌에 들어왔다.
전날 저녁이나 이른 아침에는 무얼 만들지 정해두어야
냉동실에서 재료 꺼내두고 조리 예상시간 가늠해 볼 수 있다.
기존 멸치볶음의 변화) 어린 고추대신 '마늘종'
처음 너 본 '완두콩' 넣어오던 호두, 땅콩
간은 죽염소금 /불 끄고 '수제조청'
*어머니와 만든 마지막 조청
볶아주신 '참깨'는 다 써서 깨소금이 필요한 곳에
쓰이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는 약방의 '감초'/어떤 요리든 더 빛나게 해주는
'깨소금'같은 존재이셨다..)
'황태국밥'뚝배기 3그릇에 담아 끓으면 계란 풀어주려
대기 중이다.
어떤 용기에 담기느냐에 따라 가치가 더 올라간다.
(마치 사람이 자기 겉모습을 잘 꾸며 깨끗하고 깔끔하게
맞는 옷을 입고 나와 정중한 태도로 말하는 것처럼..)
참에 이어 저녁시간대까지 딱 맞추었다.
'도루묵조림'이 비린내 안 나고 짭조름 달큼한 맛을 잡았다. 보들 푸근 졸인 무 와 감자 고소 담백 도루묵
하모니로 백밥에 바닥까지 싹싹 잘 팔렸다.
(저녁식사 후 2층 사랑방 옮겨 자정이 넘어서 까지 '곶감'포장하다 늦게 잠이든 동생)
"내게 피와 살이 되는 풀천지 재현 독서노트"
본 내용이 나오는 중요한 첫날이다.
쓰기 전 한번 더 읽어 보았다.
《귀농 길잡이》96페이지~102페이지
도시농업)'지금 당장 똥을 모으시오'
안철환 농부. 경기 안산. 귀농본부 도시농업위원
"안산 바람들이 농장에서 도시농부들과 신나게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목발을 짚고 밭을 누비는 모습도 놀랍거니와 종횡무진 달리는 시원한 입담 또한 놀라워 도시농업 전도사로
인기가 높지요.
지은 책으로 《도시 농부들 이야기》(소나무),《주말농사, 텃밭 가꾸기》(들녘)들이 있습니다."
란 소개글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셨다.
저자분은 아버지께서 풀천지왕국을 만드시기 전 귀농교육을 가르쳐 주던 선생님 이셨고 귀농 후엔
선배님이었다.
무농약/무비료/무제초제/가족소농. 이론적으로는 가장 이상적인 농법이라 강의는 하셨지만 실천하는 수강생은 없었다.
이상을 실천하기에는 극복해야 할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리라..
2000년 노스트라다무스 예언 못지않은 일이 대한민국에 나타났으니 '풀천지의 탄생'이었다.
가족소농의 성공적인 실천사례로 대대적으로 홍보해 주시고 물심양면 지원을 해주셨다.
아버지 께서 너무 유명해지면 농사에 지장 받는다고 방송국 TV출연은 거절하고 이곳저곳 부탁받은 곳에 글을 써주셨는데 이 책에 공동저자로 같이 실리게 되었다.
풀천지 성장이 더 커지자 작가님이 거꾸로 아버지에게
선생님ㆍ형님이라 부르시며 호칭정리가 새롭게 되었다.
여하튼 귀농운동본부 위원자리 계실 때까지 교육생도
일 도우며 배워보라 단체로 보내주셨다.
농산물선물도 풀천지를 넣어 농가살림에 보태주셨다.
(아버지 와 동생도 귀농강사로 경험 쌓게 됨)
풀천지의 전성기를 함께한 셈이다.
여기 실린 짧은 글로는 '도시농업 거름 만드는 방법'
을 알 수 있는 자료로 부족하다.
왜 일주일에 한 번 주말농업을 하는 도시농부가 똥ㆍ오줌을 받아 거름을 만들어야 하는지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
아주 작게 소규모로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니 이왕이면
삼무농법으로 해보자는 취지라고 이해했다.
이 글을 보고 학교선생님이신 젊은 여선생님이 귀농
꿈을 꾸며 풀천지에 1.5 페트병과 들통을 경차에 싣고
방문한 적도 있었다.
빈 페트병 '액비'와 들통에는 '풀천지 발효거름'을
갈 때 실어주며 주말농업 잘해보라 응원해드린 적도 있었다.
'지금 그분은 마음이 맞는 남자분과 결혼하여
귀농이란 꿈을 이루셨는지는 모르겠다.'
그 수많은 인연 끊어진 것도 있고 아직까지 이어진 것도
있다. 이번 어머니 장례식으로 소식 끊어진 풀천지회원
분들과도 다시 연락하며 안부 묻는 사이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서로 간의 오해가 쌓여 연을 끊고 살던 피붙이들과 다시 만나기도 했으며
요즘 매일매일 농산물 주문이 들어온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서 도와주시는 덕분이다.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마다
'아버지는 산을 오르고 소파에 어머니와 함께 찍은
제주도 여행사진을 올려두고 보며 대화를 하신다.
동생은 자신방에 모셔둔 어머니 사진을 보며
울다 웃다 하고 싶은 말을 한다.'
'그리고 나는 매일 아침 어머니를 그리며 글을 쓴다.'
각자의 방식으로 어머니를 기리며 잘 살아가려 애쓰고
있다.
26년은 그 어느 때보다 책임감이 무겁게 다가오는 때이다. 마흔이 넘었는데도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만나는 여성도 없다는 것은 직무유기다.
내 글은 생각 가는 대로 쓰기에 어수선하여 풀천지일기
시절에 아버지 검열에 걸려 몇 편 올라가지 못했다.
보기 좋게 잘 정돈된 아버지ㆍ동생글 못지않게
투박하고 거칠어도 내 글은 나름대로 세상에 쓸모가
있으리라고 본다.
지금도 앞으로도 제 글을 봐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리며 좀 더 쓸모 있는 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