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꿈속에 어머니가 고맙다고 하셨다.'
2026년 1월 9일 금요일
내방 미처 군불을 지피지 못해 냉방이다.
설거지거리는 잔뜩이고 음식정리 하면서 그릇은
싱크대에 포화상태로 물과 함께 불려 채워두었다.
나머지는 구부엌 바닥 오봉상과 쟁반에 널러져 있다.
그간의 긴장이 풀려서일까?
피곤이 확 밀려와 항상 뜨뜻한 동생방바닥으로 가
외출복채로 익숙한 듯 맨머리를 바닥에 뉘어 금방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꿈에 그토록 보고 싶던 어머니께서 글썽거리는 눈으로
나에게 "재현아 아버지와 동생과 고마우신 분들 저녁식사 대접해 주느라 수고했다. 정말 고맙다."
슬프면서도 기쁜 미묘한 표정으로 입을 달싹이시던
어머니가 말을 마치시고는 허공 속 어둠으로 사라지셨다.
어머니를 더 보고 싶어 잡으려고 뒤척이다 얼굴에 눈물범벅이 되어 새벽잠을 깨었다.
'아버지와 동생 꿈에도 나오셨을까?
아니면 세 남자들 중 유일하게 풀천지일기를 내가 쓰니
어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을 기억해 달라는 당부였는지..'
이번에 아버지 지인 6분 오시기로 하였는데 2분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불참하셨다.
(우영헌 전석현2리 이장님 지인문상 / 노상운 동네이장님 부인과 내시경검사 못 드심. 미안하다 하시며(레드향 2박스(소))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 유언이기도 하였다.
삼성의원 원장님이 지극정성으로 치료해 주시려 애쓰시고 도움을 주신 고마운 분들을 불러 식사대접을
부탁하셨다.
생전 마지막 힘을 짜내 세 남자들에게 글을 남기느라 지치셨는지 '왜 해준 것도 없서서 미안하다 하셨을까?'
(어머니 그리움이 묻어 나오는 글을 쓸 때면 눈물ㆍ콧물이 멈추지 않는다. 뽑아 쓰는 각휴지와 휴지통을
가까이 둔다. 그렇게 실컷 혼자 울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난 울고 싶어서 새벽에 자꾸 일어나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전날 집주위를 보행기로 지지대
삼아 자신의 힘으로 돌아보면서 옆을 지켜주는 아버지와 동생에게 힘겨운 목소리로 말하셨다고..
"재현이 아빠 혹시 내가 죽게 되면 삼성의원 원장님 하고
대호ㆍ기진아저씨 그리고 고마우신 분들 저녁식사 대접 좀 해주세요. 그래야 내가 마음 편할 것 같아."
"약한 소리 하지 마! 정신도 다시 돌아오고, 걸을 수 있는 걸 보니 많이 좋아지고 있어. 내일부터 같이 더 노력하면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 거야."
난 그때 좀 멀리 떨어져서 어머니가 건강이 회복되었다
좋아하며 철없이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예전 어머니 모습을 꿈꾸며, 이제 같이 풀천지 농사일을 할 수 있겠다는 기대는 다음날 사라졌다.
다시 신발을 신지 못하고 사용하시던 물건들이 쓸모가
없어지게 된 어머니를 맞이하게 될 줄 그 누가
알았으리오..
이번 손님 저녁식사초대는 나의 준비부족으로
양상추 샐러드나 쌈채소도 제때 나가지 못했다.
아버지께서 며칠 전 내가 이발해 드린 거 오른쪽 앞머리
더 잘라 달라 했는데 조금 자르고 이게 자연스럽다고
우기고 안 해준다 불만을 우스개 소리로 하시자
삼성의원 원장님께서 차분히 느리면서 또렷한 발음으로 보청기 하신 아버지귀에 말씀하셨다.
"형님 지금 제 머리 어때요.
제가 거울보고 직접 잘랐습니다.
재현이 한테 미용도구 가져오라 하세요."
"네 지금 바로 갖다 드릴게요."
아버지와 삼성의원 원장님은 이어서 바둑도 두시니
기다리는 재미도 있으셨지만 문제는 빈 나무유리탁자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자계시는 세분이었다.
(방부목 계단 테라스 2군데와 현관 물걸레질
세탁기 위 어지러이 놓던 스티로폼 박스 외 물건들
다용도실 대정리 하며 나온 쓰레기들..
집 주변 정리하느라 미리 준비하여야 할
음식 밑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다.)
부족한 준비시간에 잘못된 판단으로 손님이 가시고 난 후 아버지와 동생에게 가벼운 꾸중을 듣게 된 나
결과로써 말하는 거기에 좀 억울하기도 했지만
개선해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밑반찬 준비부터_나 (어머니와 만든 마지막 음식들에 의미를 부여했다. 두릅 ㆍ산마늘ㆍ초석잠ㆍ마늘종 장아찌, 매실청, 무슬라이스 피클, 행수삼촌 절인 배추 담근 재작년 김장김치/준비해 둔 것 일부만 겨우 상오름)
"메인 요리부터 준비해야지"_밑반찬부터 고집하며 챙기던 나에게 화를 내던 동생 네가 옳았다.
미리 매운탕은 끓여두어 천만다행이었다.
약속시간이 오후 7시인데 6시 15분에 오셨다.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시골분들은 약속시간보다 일찍 오시는지
때마다 겪지만 적응은 쉽지가 않다.
가뜩이나 준비가 안되었는데 더 빨리 서둘러야 했다.
손발이 어지럽고 식은땀이 났다.
동생이 시키는 것부터 부랴부랴 내주었다.
점심때 아버지께서 사 오신 울진 7호 집회 '방어ㆍ숭어ㆍ오징어회 미리 접시에 담아둔 것과 생고추냉이 초장 기꼬만 간장을 검은 세 칸 종지 7개에 놓고 먼저 보낸 후
슬라이스 무 피클, 매실장아찌, 돼지감자 장아찌를 보냈다.
내가 파인애플 자를 동안 동생은 '멀티쿡 바비큐기계'
에서 훈연을 마치고 전용포일로 레스팅 해둔 돼지ㆍ소
바비큐를 같이 내었다.
파인애플을 해결한 뒤는 바로 삼종 섞은 수제 바비큐 소스에 스모키허니머스터드소스를 검은 두 칸 종지에
담아 뒤따라 갔다.
밥 올려두고 아버지 바둑판 심부름 갔다 왔더니 밑바닥이 좀 눌어 그 부분은 남기고 주걱으로 뒤엎었다.
김치를 다 써니 손님들이 찾는다고 동생이 바로 와
써빙해 갔다.
매운탕 휴대용 버너와 함께 드렸으면 좋았을 것을..
예행연습한 매운탕대로만 하면 되는데 힘이 들어가니
들척지근한 국물맛이 나와 버렸다.
(어머니도 평소엔 잘하시다 손님준비땐 더 맛있게 하려다 기본값을 손해 본다고 어려워하셨다.
'다 잘하긴 힘들고 한두 개 실수는 어쩔 수 없다 하셨었지..')
좀 차분해지니 준비만 하고 못한 게 떠오른다.
만회하고자 배부른 상태의 손님들을 두고
내 마음 편하기 위해
각종과자류와 과일에 공을 더 들였다.
동생의 노고는 흥행했으나
나의 노고는 팔리지 못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잠을 설치며 준비한 과정을 알기에
아버지와 동생은 가볍게 아쉬웠던 점만 짚고 넘어가게 되었다.
시간의 부족을 넘어설 수 있는 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현명한 판단과 진실한 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