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밀어내 떨어뜨린 '시래기묶음'은 어머니께서 삶아 정리하라는 뜻일까
2026년 1월 29일 목요일 -11도/-1도
"재현아 바람에 떨어진 시래기묶음 다시 걸지 말고 양은솥 걸어 삶아 찬물 2번 헹궈서 다용도실 들여놔라.
소포장할 때 물기 짜지 말고 그대로 넣고 국자 1번씩 물 넣어주렴."
작년에도 본격적인 농사철로 바쁘기 직전 추운 날 2~3일 걸쳐 건시래기 묶음을 정리해 주었었다.
아버지는 고추손질 하시고, 동생은 농업기술센터에 농산물판매를 원할이 할 수 있게 조언을 들으러 갔다.
전날저녁 코다리 2마리와 시래기 1 덩이를 내려놓았다.
사리암총무님이 정기적으로 선식과 서리태를 사가셨는데 어머니와 만든 선식이 떨어지면
다시 만들어야 하는 일이 걱정된다.
시키는 과정만 해봤지 전체적으로는 잘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말과 글에는 알 수 없는 경험으로 체득되는 손맛이란 게 있다.
그때그때 느낌으로 맞추어야 하는 게 있는데 계속시도해 가며 실패를 줄여나가는 일밖에 방법이 없다.
최근에 서리태포장하면서 자연식은 못하고 있더라도 서리태라도 미리 씻어 불려 밥에 넣어먹자
마음먹고 며칠 전부터 콩밥을 먹고 있다.
흔히 감방죄수들 비유하며 "너 그러다 콩밥 먹는다."란 말이 있는데 무절제한 식습관에 괴롭다면
절제된 환경을 만들어 규칙적인 식습관에 콩밥을 더하면 좋다란 말을 하고 싶다.
그냥 백밥만 먹는 것보다 서리태를 얹어 먹으면 포만감도 더 들고 몸에 힘이 더 난다.
뭔가 먹고 싶은 군것질 생각도 덜 들게 된다.
어머니를 보내고 나서야 건강한 식습관에 대해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냉장/냉동고 정리를 하며 묵은 걸 버리게 되었다.
그러면서 애써 고생하여 만들어 놓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못 먹고 버리게 되는구나
반성하고 잘 먹기 위해 자꾸 한눈에 들어올 수 있도록 수시로 정리 정돈하게 되었다.
어머니께 모든 짐을 맡기던걸 이제는 세 남자들이 나눌 수밖에 없게 되었다.
몸이 아프면 먹는 걸 소홀이 하게 되기 쉽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자꾸 사 먹거나 인스턴트식품을 찬장에 쟁여놓게 된다.
(건강하게 생산하겠다는 농산물을 만드느라 건강을 해치는 모순을 피하기 위해
농사 가짓수와 규모를 축소하기로 동생과 이야기는 되었는데 문제는 자꾸 일을 늘리시는 아버지다.)
세상 누구보다 건강하게 살 거라고 외쳤지만 불규칙적인 식생활과 중노동에 어머니를
보낸 것 같아 풀천지 생활을 자꾸 돌아보게 된다.
라면을 사다놓질 않으니 대신 빨리 먹어야 할 때는 자연스럽게 바지락칼국수나 떡국,
비빔국수, 수제비, 찐 고구마/감자..로 밥보다는 빨리 차려낼 수 있는 걸로 바뀌게 되었다.
영주나 봉화로 멀리 볼일 있어나갔다 들어올 때도 웬만하면 그냥 들어오라 하였다.
(음식을 담당하는 사람의 권한은 커다란걸 느낌)
점심에 '코다리시래기찜'을 차려내었다.(마무리 '들깻가루'이 어머니킥)
작년 겨울 어머니께서 여러 손을 사다 놓으셔서 이제 2마리 남았다.
부엌의자 앉으셔서 지시하시면 내가 아바타가 되어 요리를 만들곤 했는데 부엌에
그 의자는 없다.
"왜 이렇게 자꾸 많이 사다놔요."(작년 어머니께 따지기도 했는데...)
평소 비해 자꾸만 많이씩 사다두신 식재료들을 꺼내서(주로 제철 해산물과 과일..)
잘 먹고 있지만 이젠 철마다 맞추어 구해야 되게 되었다.
(손님초대상 준비할 때 빼고는 살일이 거의 없다. 부엌담당인 내가 풀천지 농산물과
미리 사다둔 식재료 활용하여 먹어야 되겠다 마음먹고 짜니 외식/참 비용이 확 줄었다.
전에 점심 12시 참 4시 저녁 8시로 맞추니 풀천지생활에 지장 있어
다시 점심 11시 참 3시 저녁 7시 한 시간 앞으로 당겨오니 몸의 리듬이 맞다.)
침대에 누운 어머니께 삶은 시래기 가져다 드려 "이제 꺼내서 찬물 헹궈요?"
물어봤는데 그 감을 떠올리며 엄지와 검지로 눌러 물러진 걸 꺼내었다.
풀천지 곳곳에 어머니와 한 흔적들이 새겨져 있는데
새로이 만들어야 할 한 해는 모든 게 낯설고 처음 같다.
큰 제목도 다시 바꾸었다.
풀천지재현 마침내!(노총각 벗어나는 글쓰기) 이루고 싶은 일들은
초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하다 보면 마침내 가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실패 속에 얻어지는 성공'마침내'
며칠간 지쳤던 몸을 추스르며 항상 새로운 새날을 맞이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