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할머니손에 자랐다.
그때는 도시락을 싸가는 시대였는데
친구들은 소시지에 계란물 입힌
동그랑땡에 바삭한 멸치볶음을
아주 예쁘게 싸왔다.
내 반찬은 장아찌, 김치,
간장에 적셔진 녹녹한 멸치였다.
그나마 특별한 건 계란 프라이였다.
그게 어찌나 창피하던지 교실에선 안먹고
집에 들어가기 전
계단에서 후다닥 먹곤 했다.
그 와중에 안 먹고 가면
할머니가 속상해하실까
걱정이 되긴 했었나 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할머니는
본인이 가장 맛있게 드신 걸 골라서
고이 싸주신 거였으실 텐데
아무튼 그땐 너무 싫었다.
할아버지는 지독한 구두쇠였다.
여름엔 생수병을 얼려서 안고 주무셨고
추운 겨울엔 집에서도 두꺼운 패딩을
입고 계셨다.
휴지는 세 칸만 써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고
샤워는 5분 이내에 해야
잔소리를 면할 수 있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일리 없었다.
할머니가 주신 밥은 늘 고봉밥이었다.
밥 만큼은 깊은 스텐 밥그릇에
볼록 올라오게 가득 쌓아서 주셨다.
밥을 그득 많이 담아주는 게
그분이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의 방법이었으리라.
어느 날 친구네 집에 가서
밥을 먹게 되었는데
친구네는 무슨 간장 종지만 한
그릇에 밥을 새 모이만큼 먹는 것이었다!
어찌나 충격적이던지..
난 그게 손님이 오거나
내숭을 떨어서 그런 건가 싶었다.
그날부터 나는 집에서
진짜 간장 종지에 밥을 떠서 먹었다.
할머니는 "뭐 하는 짓이여?!"
고만큼만 먹으면 병이 난다고
걱정 하셨지만 그게 좋았다.
또 반항하고 싶었다.
요즘 세상은 그렇게 하는 거라고
할머니한테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는 싫기만 했던
할머니 반찬중 요즘 자주 생각나는 게 있다.
바로 동치미인데
요즘 동치미같이 알록달록
예쁘지도 않고 새콤달콤한 게 아니라
그냥 물과 소금, 무 만 넣은 짠 동치미 이다.
그 옛날 동치미를 흉내 내려고 해 봤지만
절대 그 맛이 안 난다.
나이가 들면 입맛도 바뀐다더니
그래서 자꾸 생각나나..
투박한 그 맛이 뭐가 맛있다고
떠오르는 걸까
원망도 많이 했었다 .
할머니 잘못도 아닌데
자식 키우는 것도 힘든데
그분들은 그 고령 나이에 사춘기 손녀를
어떤 마음으로 돌보셨을까.
지금은 두 분 다 요양병원에 계신다.
그렇게 돈을 아끼고 본인을 위해
끝끝내 동전하나 못쓰시고
인생의 끝자락을 보내고 계신다.
인생이 참 서글프다.
과거에 손녀를 향한 사랑과 희생을
당사자인 나는 암흑기로 기억하고 있으니
이 또한 죄스럽다.
내 그릇이 이만큼인걸 어쩔 수가 없다.
가끔 할머니를 찾아뵙고 좋아하시는
카스텔라를 드리고 오는데
할머니는 ,,,,,"빵이 너무 맛있어요"를
백번은 말씀하신다.
그런데 날 알아보진 못하신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나의 마음을 인지하는 것,
그 마음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조금만 시간을 돌릴수 있다면..,
이 또한 내 욕심이다.
또 한번의 이기적인 고백을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