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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뤼미쌤 Dec 31. 2021

2021년의 마지막 날


브런치에 정말 오랜만에 들어왔다. 학교에서 업무도 정말 너무 많았고 개인적으로 힘든 일들도 겹쳐서 눈코뜰 새 없이 11월과 12월이 지나간 것 같다. 날이 정말 많이 추워진 2021년 12월 31일, 신규 1년간의 소회를 적어보아야 한 해를 끝내는 실감이 날 것 같아 화면을 켰다.

최근에 있었던 일들을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우선 학교는 어제(12/30) 방학식이었고 오늘이 방학  날이었지만 나는 오늘도 출근을 했고 5 반이 넘어서야 학교를 나왔다. 방학 중에 상담을 받고 싶다는 학생의 요청에 마음이 쓰여 올해가 가기 전에 신청을 해야 대기를 조금이라도 덜할  같아 무리해서 준비했다. 위클래스 리모델링 관련해서 여러 모로 잡음이 많았고  말할  없지만 마음이 힘들고 당황스러운 일들이 있었으며, 여전히 공사와 비품채우기가 남아 있어서 방학 중에도 간간히 출근을  예정이다. 연말이지만 위기 사안도 많았고, 코로나 때문에 갑작스럽게 원격으로 전환되거나 조퇴하는 상황들 때문에 학생상담자원봉사자를 초빙하여 운영되는 집단상담과 관련한 일을  달에 걸쳐 계속 수정하고 조정했다. 연말에 갑작스럽게 떨어진  금액의 목적사업비 소진을 위해 학생  보호자 상담  심리검사 지원을 추진했고 지출 품의를 계속 해서 올리는 중이고 2월까지도 체크해서 올릴 예정이다. 자퇴를 고민하는 학생도 있어서 학업중단숙려제도 병행했다. 축제도 미루어지다가 결국 원격으로 전환되었고, 또래상담부의 축제를 준비하고 부스 운영을 하려던 것을 키트를 신청받아 배부하는 것으로 바꾸어 진행해야 했다.  연말이니 만큼 다면평가와 업무분장으로 칼바람이 불었고, 내년도를 준비하는 예산 요청서나 연간업무 일정표를 정리하여 작성해야 했다. 그러면서 개인상담을 받기 시작했는데, 상담 속에서 꾹꾹 눌러담아 있던 감정이 건드려져 폭발하여 눈물로 몇주를 지냈던  같다. 코로나도 너무 심해지고 학교 내에도 확진자가 생기기 시작하여 걱정되는 마음으로 코로나검사를 받기도 했고, 모든 것들이 미뤄지고 변경되고 취소되는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냈다. 한없이 무기력하기도 무한정 화가 치밀어오르기도 하면서 휘몰아치다가 12 중순 즈음 청소년 상담사(3) 면접을 보고나서 크리스마스 즈음부터 조금씩 감정과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했던  같다.



힘들었던 이유들을 간단히 요약해보려 한다.


1) 나의 경계가 불분명한 것. 학교에서든 가정에서든 다른 사람과의 관계나 감정에 지나치게 영향을 많이 받고, 내 마음이나 생각은 모른 척한 채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을 살피는 데 온 주의를 기울여버리는 것. 그래서 소진감이 매우 심해지는 것.


2) 무엇이든 완벽히 준비된 후에 실수없이 하고 싶은데, 내 기준 완벽히 배우고 준비된 것도 아닌 채 필드에 내던져진 것이 너무 공포스럽고 무서운 나머지 하면서도 심히 불안해하고 계속 준비를 한다고 해도 확실히 잘할 자신이 없으니 공부나 수련마저도 피해버리고 싶은 마음.


3) 잘하고 있는지 성장하고 있는지 내가 느낄 수 있는 변화나 피드백이 없다고 느껴 나의 일에 스스로 의미부여를 하지 못한 것.


4) 지금까지 내 인생을 후회 없이 살아왔다고 믿었지만, 내 삶도 어떤 부분에서는 불완전했고 그로 인해 현재의 나에게도 어떤 결핍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마음.


5) 지금의 직업이 온전한  선택이기보다는 상황과 현실 속의 타협이었다고 느끼며,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너무 빨리 철들어야만 했던 여러 배경에 대한 원망.


6) 어머니의 수술 , 입원 , 퇴원 후에 어머니께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혼자 감당해 내기에는 버거웠던 두려움과 책임감.



나의 마음을 추스리고 끝까지 버텨내는 데 도움을 준 요인들도 생각해보았다.


1) 청소년 상담사 3급 면접을 보러 가서 작년의 나와는 달리 전혀 긴장도 하지 않고 묻는 질문들에도 막막함 없이 현장을 떠올리며 막힘없이 이야기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의 성장을 느낀 것.


2) 내가 편안하다고 느끼는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내 힘든 마음들을 조심스레 꺼내어 놓았을 때 따뜻한 공감과 위로를 바탕으로 정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언을 받은 것.


3)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적당한 거리를 찾고, 상담을 통해 때로는 섭섭하고 서운하게 만들어야 내가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4) 상담을 통해 내 삶과 나라는 사람과 우리 가족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


5) 가족과의 진솔한 대화와 이를 통해 언니에게 조금  의지할  있게  .


6) 코로나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면서 건강과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크게 느끼고 현재에 감사하게  .


처음 해보는 업무에,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 처음 가보는 공간에 치이기도 하고, 또 그 속에서 채워지기도 하면서 그렇게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냈던 것 같다. 나의 불완전하고 미숙한 면모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성숙해지는 것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도 2021년 한 해를 무사히 지내온 것에 감사함을 느끼는 마지막날이라서, 그래서 참 다행이다.



2022년에는 어떻게 살고 싶을까.


1) 학교 일은 빠르게 할 필요도, 누구보다 월등히 잘 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찬찬히, 내가 소화할 수 있는 만큼 한계를 넘지 않고, 그렇게 해야지만 나를 잃지 않고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도움을 제공할 수 있다.


2) 맨땅에 헤딩으로 부딪혀서 주먹구구식으로 했던 일들을 다듬고, 숲을 보아가며 천천히 시스템의 기반을 다져보고 싶다. 상담도 구조화를 더 잘 해보고 싶다.


3)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데 썼던 에너지를 이제는 좀 모아서 상담역량을 키우는 데 좀 더 투자해보고 싶다.


4) 체력과 정신력은 같은 배터리를 공유한다고 하더라. 체력을 키우는 운동을 꾸준히 하고 싶다.


5) 집에 와서는 혼자 말없이 쉬는 시간을 확보하려고 한다. 큰 소리를 낸 것도 아닌데 일년간의 발화량이 쌓이니 목소리가 조금 망가진 것이 느껴진다. 목을 쉬게 해줘야 겠다.


6) 내가 나를 소중히 여기고 내 마음과 생각을 물어봐주고 내 몸을 돌보고 싶다.


7) 나를 채워주는 책들을 읽고 나의 삶을 틈틈이 기록하고 싶다.


이 정도로 줄여보려 한다. 오늘 임용고시 일차 결과가 나왔는데 작년 이맘때의 내 감정이 생생히 떠올라서 괜시리 심장이 두근거리고 긴장이 된 아침이었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느낌이었는데 일년을 돌아보며 훑어보니 꽤나 많이 성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2022년을 맞이하고 보낼 수 있기를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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