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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뤼미쌤 Oct 15. 2021

누괜잘반-2

지난 게시글에서 누괜을 다루었다. 이번 게시글에는 잘반을 살펴보려고 한다. 다시 한번 언급하자면, 누괜잘반은 누구라도 그랬을거야, 괜찮아 울어도 돼, 잘했어, 반가워의 줄임말이다. 



“잘했어”는 “인정해”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겹칠 수 있지만 두 표현 모두 잘 사용한다면 좋을 것 같아서 넣어봤다. 내가 주로 “잘했어”라는 말을 쓸 때는 학생이 자신의 선택이나 결정에 확신을 갖지 못할 때인 것 같다. 혼자 수많은 고민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많은 조언을 듣고 어렵게 내린 결정이나 선택에 대해서도 여전히 확신을 갖지 못할 때, “잘했어”라고 인정해줄 수 있다. 


“잘했어. 물론 너가 지금 내린 결정이 완전무결의 완벽하고 최고인 결정은 아닐지도 몰라.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고 다른 선택에 미련이 남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쌤은 너가 이렇게나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라면 지금의 최선일거라는 건 믿어. 고생했어. 잘했어. 그리고 틀린 결정이고 선택이면 뭐 어때. 겪어가면서 점점 더 나은 결정을 하면 되지.” 


다만 위와 같이, 잘했다는 인정은 ‘결정이나 선택의 내용’이 아니라 ‘결정을 내린 과정’과 어렵게라도 ‘내가 주체로서 결정을 했다는 행동’에 주어져야 한다. '너의 결정이 옳다는 의미의 잘했어' 보다는 결정의 내용과 상관없이 이렇게나 고민하고 정보를 모아 너가 스스로 결정한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잘했다고 해줄 수 있어야 한다. 나도 어릴 적부터 결정을 잘 내리지 못했지만, 그 아래에는 완벽하게 좋은 결정을 내리고 싶은 마음이 숨어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완벽한 결정을 내리고 싶고 결정에 대한 결과를 책임지기가 무서워서, 결정을 미루고 누군가에게 승인과 허락을 받음으로써 자꾸만 내 결정을 합리화, 정당화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나의 결정은 내가 내리는 것이고 그 결과도 내가 받아들이면 되는 것임을 자연스레 알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주체로서 결정을 내렸을 때, 그 내용과 상관없이 선택하는 행동 자체에 ‘잘했다’고 지지해줄수록 아이는 결정의 주체가 되어 오로지 나를 위해 스스로 더 섬세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 것 같다.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고 생각할 때 자꾸만 누군가 대신 결정해주기를 바라고 또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 남탓을 하게 되는 게 아닐까. 결과를 책임지라고 하면 무섭게 들리지만, 비록 그 결정이 완벽하지 않았더라도 뒤에 오는 아쉬움은 다음에 더 나은 결정을 하게 도와줄 것이라며, 조금 부드러운 말로 ‘무엇이든 너가 원하는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는 받아들이면 된다’고, 네 삶의 주인은 너라고, 그러니 무슨 결정이든 지금의 네 선택이 지금은 옳다고, 잘했다고 말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다시금, 칭찬은 결과보다는 과정에 주어져야 함을 느낀다. 결정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공부를 하는 것에 있어서도 성적이라는 결과보다는 노력한 과정에 대해 “잘했다”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는 완벽주의를 내려놓을 수 있고 편안한 마음으로 실수투성이인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을 것이기에.



마지막으로 “반가워”라는 말.  단순히 만나서 반갑다는 뜻으로는 잘 쓰지 않는 것 같다. 감정을 억제하고 모른 척하며 부인하는 방어기제가 강한 아이들이 처음으로 눈물을 보이거나 감정을 실어 화를 표현할 때 "쌤은 너의 감정 표현이 반가운데?"라고 주로 사용한다. 


"감정은 표현하지 않고 누르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쌓여서 나중에 너를 아프게 할 수 있어. 쌤은 지금까지 ㅇㅇ이가 보여준 밝고 활발한 모습도 좋았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눈물을 보이고 화를 내는 모습도 정말 반가워. ㅇㅇ이도 사람인데, 어떻게 항상 밝기만 할 수가 있어. 밝은 면도 있지만 어두운 면도 있고 재미, 기쁨, 설렘도 있지만 우울, 화, 슬픔, 불안도 있는거지. 그리고 이런 감정들도 나쁜 게 아니야. 나쁜 감정이었다면 벌써 진화과정에서 사라졌겠지? 우리에게 다 필요하니까 남아서 우리가 지금도 이런 감정들을 느끼는거야. 그러니까 ㅇㅇ이가 상담실에서만큼은 편안하고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했으면 좋겠어. 지금 이렇게 감정이 담긴 말을 하는 ㅇㅇ이의 모습이 쌤은 정말 반갑고 앞으로도 더 많이 보고 싶어."


아이들은 흔히 감정을 좋은 감정, 나쁜 감정으로 나누어버리곤 한다. 좋은 감정은 과장하고 없어도 있는 척하면서 표현하고 자랑하곤 하지만, 내 안의 나쁜 감정들은 애써 모른척하고 누르기 일쑤이다. 특히 또래관계에서 '좋은 친구'로 보이고 싶기 때문에, 부정적 감정(불안, 우울, 슬픔, 분노 등)이 아예 없는 척하거나 이를 억누르는 것이 내게 더 유익하다고 느끼는 듯 하다. 그래서 이런 아이들은 대부분 단조로운 톤으로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내 이야기를 사실 위주로 요약하여 말하기도 하며, 힘들다는 말을 하면서도 전혀 감정이 담기지 않은 표정과 말투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방어가 셀수록, 아이가 감정을 조금이라도 표현하고 표출했을 때 "반갑다"고 긍정적 사인을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다. 부정적 감정이 나쁜 것이 아니며, 부정적 감정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고 또 표현해야 좋은 것이라는 생각의 전환을 이끌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아이는 부인과 억압을 멈추고 쌓여있던 감정들을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으며, 감정의 정화(katharsis)를 경험하며 편안해질 수 있을 것이기에.



고궁미인과 누괜잘반을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말투로 잘 사용할 수 있다면 분명 상담과 대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우리의 소통은 언어적 표현뿐 아니라 비언어적 표현을 통해서도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 말을 하는 상담가의 표정이 무표정이고 냉담하고 차가운 말투라면, 이 말은 그 진정한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말과 표현은 공감과 경청, 그리고 따뜻하고 지지적인 태도 위에서 비로소 그 효과가 발휘된다. 이러한 상담가의 자질과 태도에 대해서는 다음에 논의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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