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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뤼미쌤 Jan 08. 2022

상담교사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상담교사 QnA>


 우연한 기회로 상담교사라는 직업을 꿈꾸는 학생의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해주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학교에서 일하는 전문상담교사를 뽑아 배치하고 위클래스라는 학교상담실을 구축하기 시작한지 약 10년이 지나는 시점이 되자, 이제 상담교사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학생도 생기는구나 싶어 새삼스럽게 신기하기도 했다. 상담교사라는 직업의 미래와 전망이 어떨지 상담교사인 나조차도 알지 못하지만, 이 직업을 고려하고 꿈꾸는 학생이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학교 상담을 경험해봤거나 상담교사로부터 유의미한 영향과 도움을 받은 학생이 있다는 것일테니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학생으로부터 질문을 사전에 받았는데, 궁금해하는 부분들이 꽤나 현실적이라서 한 번 더 놀랐다. 단순히 상담교사는 어떻게 되는지, 상담교사의 보람은 무엇인지 등을 물어볼 것이라 예상했는데 질문들은 상당히 예리했고 진지했다. 나의 답변 내용을 주제별로 정리하여 공유하고자 한다.



<상담교사의 자질>

 상담교사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을 대자면 수없이 많을 것 같다. 상담서적에서도 상담자 자질의 넘버링이 10번을 넘어가기도 할테니. 이론과 서적에서 본 자질명을 최대한 떠올리지 않고, 이 질문을 받고 나의 경험을 되돌려 생각하며 답변을 하려고 노력해보았다. 그럼에도 8개가 떠올랐다. 이 자질들을 처음부터 다 갖추고 상담교사가 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이렇게 여러개의 자질을 작성하는 이유는 여러가지 측면에 비추어 나에게 맞는 직업일지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주기 위함이다.

 1번. 사람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 상담교사는 사람을 계속해서 마주하는 직업이다. 내담자라는 사람에 대해 근본적으로 또 진심으로 궁금해야 라포가 형성되며 또 상담을 지속할 수 있다. 그에 대해 알아가는 것과 그가 스스로 그에 대해 알아가도록 돕는 일을 하려면 사람에 대해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2번. 감정에 대한 민감성. 상담자는 감정을 민감하고 섬세하게 포착하고 알아차리며 표현하고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이 감정은 내담자나 학생의 감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전에 나의 감정부터 알아차리고 표현하고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 다음에 내담자의 감정을 더욱 제대로 이해하고 정확히 공감할 수 있다. 이 능력은 계속해서 연마하고 수련해야 하는 능력이며, 나 역시도 여전히 고군분투하는 분야이다.

 3번. 윤리성과 도덕의식/카리스마와 단호함. 상담교사는 특히 아직 미성숙한 혹은 교육의 과정에 있는 미성년자, 아동과 청소년을 주로 만난다. 단순히 상담을 한다기 보다도, 상담과 교육을 함께 해야 하는 자리이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의식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필요하다면 옳지 않은 행동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교육할 수 있어야 한다.  

 4번. 끊임없이 배우는 자세. 상담을 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상담이론과 기법에 대해, 내가 만나는 아동과 청소년의 발달과정과 기제에 대해, 나라는 상담자의 역동에 대해, 변하는 빠른 시대에 대해 등등. 상담교사는 심리적으로 학생과 내밀한 소통을 하기에, 배우지 않으면 학생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자리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상담교사로서 유능함을 느끼고 성장하기 위해서도 배워야 한다.

 5번. 예측불가능성과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심. 교사의 업무는 막연히 안정적이고 지루할 것 같은 느낌이 있다.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업무를 쳇바퀴 돌듯이 할 것이라는 어떤 인상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같은 것은 장소와 시간일 뿐(심지어 장소도 5년마다 전보로 바뀐다), 만나는 사람이 매번 바뀌기에 매번 새롭다. 매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돌발상황도 참 많다. 특히 상담교사는 어떤 학생을 어떤 타이밍에 어떤 일로 만나게 될지 준비하고 예상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매우 다채로운 동시에 다르게 말하자면 불안정하고 예측불가하다. 그 누구보다 변화무쌍한 상황에 잘 적응할 수 있어야 하고 새로움을 반길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6번. 변화에 대한 인내심. 인내심이 뭐 이리도 많이 필요할까 싶지만, 상담은 살아 숨쉬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기에 필연적으로 인내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상담은 성과와 긍정적 피드백(인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작업이다. 내가 변화의 씨앗을 뿌리지만, 이 씨앗이 과연 싹은 틀지 언제 싹이 틀지 어떤 모양으로 자라날지 나는 보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가장 어두울 때 만나서 그 어두움을 버텨주고 씨앗을 심는 일이기 때문에, 조급한 마음으로 내담자(학생)가 변화하도록 강요하고나 재촉해서는 안 된다. 그저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정말 필요한 일이다.

 7. 자신의 한계를 알고 인정하는 능력. 이것도 정말 중요하다. 내가  소진되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학생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내가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구체적으로는  명까지 동시에 상담을 진행할  있는지, 하루에 몇시간을 해야 소진되지 않고 감당할  있는지, 특별히 내가 역전이가 심하게 일어나는 상담분야는 무엇인지 등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만나는 학생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도움을   있다. 그래서  한계를 넘는 경우를 민감히 알아차리고, 그에게  도움이 되고 맞을 자원을 연계해줄 수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연계로 인해 상처받지 않도록 자세히 설명하고 양해를 구할 줄도 알아야 한다.

 8번. 협업능력(소통능력). 상담교사는 학교에서 일하기 때문에 학생을 위하여 담임교사, 교과교사, 관리자, 보호자, 지역사회유관기관 담당자, 연계기관 의사나 상담사와 원활히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마치 컨트롤타워처럼 사례를 관리하고 연결하며 상황을 공유하고, 여러 조력자와 함께 협업하여 학생의 변화를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



<상담교사의 목표와 원동력>

 상담교사로서의 작은 목표는 내가 만난 학생들로부터 잊혀지는 것이다. 힘들 때 찾아와 필요한 도움과 지지를 받았지만, 학생이 스스로 해내고 이겨냈다는 자부심을 간직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 나아가기를 바란다. 상담자를 더이상 찾지 않아도 될만큼 잘 지내는 것. 그것이 궁극적인 학교상담의 목표이고 방향이다.

 나의 원동력은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과 계속해서 배우고 성장을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인 것 같다. 나는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계속 공부해야 하는 것이 매력적이고, 되돌아볼 때 성장해 나가는 내 모습이 좋다. 더 많이 배우고 수련할수록,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숙련되고 전문적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참 매력적이다.



<상담심리사와 달리 상담교사만이 지닌 장점>

 주요 업무가 상담이라는 것은 공통적이기에, 상담교사만의 장점은 상담심리사에 교사의 장점을 더한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두드러지는 장점은 경제적, 직업적 안정성이다. 상담의 업무를 하는 직업 중 가장 안정적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사설개인상담센터에서 상담비용이 비싸다는 것만으로 보수가 높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높은 보수에 정당한 전문상담을 제공하기까지 수많은 비용이 드는 교육과 수련의 과정이 필요하며, 직업적으로 불안정한 계약직에서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 상당히 길다. 상담교사는 그에 비해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을 수 있으며, 공무원이라는 특성상 직업적 안정성이 보장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 다음으로는 학교장면이어야만 가능한 종합적 개입과 그로 인한 상담효과 극대화를 장점으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학생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학교이며, 학교에서 학생을 만나는 상담교사는 학생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포괄적인 이해를 해볼 수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학생의 말, 보호자의 말, 담임교사의 말, 학생의 친구의 말까지 들을 수 있고 학교 안에서 오며 가며 내담 학생을 직접 관찰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보호자, 담임교사, 친구, 지역사회기관의 협조를 얻어 보다 종합적인 환경의 변화를 촉진해볼 수도 있다.



<상담심리사와는 달리 상담교사로서 어려운 점>

 우선 학교에 한 명이기에 생기는 어려움들이 있다. 교육과 학교현장에 대한 전문성이 있는 동료와 선배가 많고 이들로부터도 자문과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상담에 대한 전문성이 있는 동료나 선배로부터만 받을 수 있는 도움이 부재하다. 교육청이나 위센터 차원에서 상담교사 간의 연대나 프로젝트, 집단수퍼비전 등을 추진하기 시작하였지만 아직까지는 지원이 부족하며, 상담교사들은 업무과다로 인해 외부활동을 병행하기 어려워하는 것이 실상이다. 다시 말해, 함께 비밀을 보장하며 사례에 대해 연구하고 논의할 동료와 수퍼바이저가 학교에 없다. 이것은 업무 과잉을 초래하기도 하고, 근원적 외로움을 갖게 할 수도 있으며, 또 과한 책임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상담과 관련한 모든 행정 업무(상담이라는 글자만 들어가면 모두 상담교사에게 배당되어 버리기도 한다)를 총괄해야 하고, 위기 상황과 심각성 수준을 판단해야 하며, 자문을 통해 협력해야 하고, 상담일지를 남기고 관리해야 하며, 전교생을 대상으로 상담(개인, 집단)을 해야 한다. 업무분담이 구조적으로 어렵기에 비교과 교사 1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업무량은 계속해서 늘면 늘었지 조절하기 힘들다고 느낀다.


 학교에서 일을 하기에 생기는 어려움들도 있다. 우선,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은 상담에 대해 비자발적인 경우 많다. 어떤 검사로 인해 불려진 경우, 담임교사 의뢰로 보내진 경우 등등. 자발적인 의지와 변화에 대한 기대를 갖고 상담을 시작해도 어려운데, 불신과 경계를 안고 상담실에 오니 신뢰관계를 형성하기까지만도 많은 노력과 시간이 걸린다.

 또한 물리적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은 만큼 상담량을 조절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언제든 방문할 수 있고, 언제든 상담을 신청할 수 있으나 상담교사는 1명이기에 자발적&비자발적 내담자를 모두 감당하기 버거운 것이 사실이며, 번아웃에 더욱 취약하다고 느낀다.

 심리적 어려움을 곡선으로 표현했을 때 신경증(neurosis)과 정신증(psychosis)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학교에 있는 수백명의 학생들은 다양한 곡선에 위치해 있다. 약물치료나 장기적 심리치료가 필요한 경우부터 단회기 상담으로도 충분한 경우까지 심리적 어려움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으며, 어떤 도움이 필요할지 판단하고 또 그 도움을 연결해주는 것까지도 상담교사의 일이다. 단순히 상담센터에 온 내담자를 상담하고 우리 상담센터를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로로든 상담실에 방문하거나 보내진 학생들의 사례를 접수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도움이 무엇인지 판단하고, 그 도움을 내가 제공하거나 내 역량 밖의 전문적 도움이 필요할 경우 구체적인 기관을 찾아 연결해주고, 필요하다면 경제적으로 지원하기까지가 모두 상담교사의 일이다.

 학교에서 일하기 때문에, 학교의 다른 구성원과도 긴밀하게 협력하고 소통해야 한다. 학생의 담임교사나 교과교사와도 소통해야 하고, 소속부서의 부장교사와 관리자(교감/교장)에게 보고해야 하고, 학생의 보호자와도 소통해야 한다.



<상담자의 소진 관리>

 정말 중요한 일이다. 요즘의 내 가장 큰 화두이기도 하고 아직도 나만의 방법을 완전히 갖추지 못하였지만, 그럼에도 요즘 내가 깨달은 바가 있어 조금 나누어보려 한다. 정말 객관적으로 누가 이 상황에 있어도 소진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건 사실 존재하기 어렵다. 특별히 유난히 내가 소진감을 자주 또 크게 느끼는 나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 한계를 모르고 한계를 넘어서서 일을 받는다든지, 완벽주의가 있어서 지나치게 꼼꼼하여 스스로를 채찍질한다든지, 상담 초기에 구조화를 잘하지 못해서 돌발상황과 상담취소 및 상담신청이 매우 불규칙적이라든지 등등. 상담자가 상담자로부터 개인상담을 받는 것을 교육분석이라고 부른다. 교육분석을 통해 그 이유를 우선 찾는 것이 필요하다. 소진감을 초래하는 나의 요인이 무엇인지, 그 이유를 알고 그 이유를 조절하는 것부터가 시작이지 싶다.

 그 외로는 소진을 예방하기 위해 업무 외의 취미와 여가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상담하는 사람은 사람을 많이 또 깊이 만나기 때문에 사람과 만나지 않는 어떤 취미를 갖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것이 운동이 될 수도, 그리고 만드는 것이 될 수도, 보고 쓰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최대한 다양한 감각을 사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리고 업무에 대해 잊은 채 그 취미와 여가에 온전히 '몰입'하는 경험이 회복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상담교사라는 진로를 생각하는 누구에게든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의 생각을 브런치에도 공유한다. 답변을 하면서 나의 경험을 되돌아보고 정리해볼 수 있어 나에게도 유익한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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