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수요일 저녁부터 열이 오르더니 목요일에는 39도에 가까운 고열에 시달리며 갑작스레 병가를 쓰게 되었다. 코로나 염려증도 심해져서 신속항원검사도 삼일 연속으로 하고, 사나흘간 밥먹고 약먹고 자는 시간을 보냈다. 목이 부어 상담은 모두 취소했지만 그럼에도 금요일 오후에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기 위해 출근했었다. 많은 선생님들께서 진심으로 걱정해주시며 해주시는 말씀, “학교는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간다”는 그 말씀이 아주 옳지만, 천성적으로 책임감이 강하고 고작 2년차인 나는 나만 알고 있는 업무들과 외부 강사 선생님들과의 일정을 넘길 수 없어 학교에 나갔다.
학교에 1인뿐인 비교과 교사의 특성은 대체불가능성인 것 같다. 물론 모든 선생님들이 그렇지만, 부상담교사라든지 보강이라든지 내가 어쩔 수 없이 빠짐으로써 비어버린 공백을 매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냥 취소될 수 밖에.
“대체 불가한 인재가 되자!”
참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 구호는 대체불가능성의 무게감이 생략되어 외쳐지곤 하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나도 늘 대체불가한 특별한 능력이 있는 전문가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비록 완전한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더라도, 그런 자리를 맡고 나니 그제서야 비로소 대체불가능성의 이면이 느껴졌다. 그래서 전문성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집단에 소속되고 싶다는 바람이 자꾸 일어나는 것 같다. ‘교육’이라는 카테고리에서의 전문성을 나누고 배울 수 있는 만남과 나눔은 감사하게도 많이 있지만(이 또한 당연한 것은 아니기에), ‘상담’이라는 카테고리에서는 외롭기도 또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비록 상담은 상담자와 내담자 간의 1:1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하기에 대신 누구에게 부탁할 수 없는 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전교생이라는 잠재적 내담자를 한 명뿐인 상담자가 모두 접수해야 하고 ‘거부란 선택지에 없다’는 것은 상당히 다른 문제같다. 상담을 계속 공부하고 상담 일을 지속하더라도 내가 학교라는 공간에 평생토록 남아 있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찌어찌 삶의 흐름 속에서 정신없이 지내면서 교사라는 직위를 유지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교사라는 타이틀을 언젠가 중년에라도 내려놓는 선택을 할지도 모르겠다. 이 말은 당장 그만두겠다는 무책임한 생각이라기보다는, 언제든 내 전공을 살려서 프리랜서를 선언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희망사항에 가까운 것 같다.
경력이 부족한 초심 상담자에게 학교 상담교사는 꽤나 메리트있는 자리이다. 상담자 중 고용과 보수가 가장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기에. 그러나 동시에 초심 상담자에게 상당히 버거운 자리같기도 하다. 학교에서 상담전문가라는 사람이 나 한 명이라 내가 자문을 하기도 하는 입장이 되어야 하고, 모든 스펙트럼의 내담자를 불시에 포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상담소나 병원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으로 ‘가봐야겠다’라는 자발성과 필요성 인정이 전제되지만, 학교상담실은 내가 그 필터 자체가 되어야 한다. 상담이라는 경험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주는 가장 넓은 거름망이랄까. 무형의 일같다. 교육이라는 게 다 그렇긴 하겠지만, 학교상담은 실체가 없고 정신이 없다. 상담과 관련한 행정업무(상담일지 정리, 상담통계 작업 등) 외에 해야 하는 잡다한 행정업무들도 너무나 많다. 협력하고 소통하고 자문하고 안내해야 할 동료도 지나치게 많다. 선생님들마다 소통과 상담에 대한 이해나 익숙함 정도가 다르고 그에 맞추어 소통하고 협조를 구해야 하는데, 전보 때문에 학교 구성원도 계속 변동이 있어서 계속 새롭게 맞추어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가정을 해보자면, 학교상담자는 고경력의 성숙한 상담전문성이 있는 많은 나이의 특성을 가졌으면서 동시에 외향적이고 유연하며 적응성이 높은 젊은 나이의 특성도 가진 어떤 가상의 사람에게 적합한 것 같다. 그래서 경력이 많이 쌓이고 학교장면에 왔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수십번 하면서도 오히려 나이가 들어서 학교에 왔다면 변화무쌍하고 예측불가한 상황과 구성원들에 매번 적응하기는 더 힘들었겠다 싶기도 하다. 아, 참 모순적이다. 역시 완벽할 수는 없는거지 하면서도 완벽한 조합을 상상해보는 나는.. 생각이 참 많다.
나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요즘은 어차피 예상되지 않는 일정, 예상하지 않고 살아내는 중이다. 그냥 되는 대로, 마주하는 대로, 어찌저찌 하루하루를 헤치우고나서, 집에 가면 일은 까먹으려고 노력한다. 비록 하루하루는 이렇더라도 큰 미래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조금씩 고민하려고 노력한다. 지금 쓰는 글처럼. 그러다보면 머지 않은 언젠가는 상담을 더 공부하고 수련하고 싶은 마음과 에너지가 생길 것이라고 믿으면서.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것이라고, 은연 중에 그렇게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