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하메네이는 1989년 루홀라 호메이니 사망 이후 이란 최고지도자(라흐바르)로 37년간 재임하며 이란 신정체제의 실질적 절대 권력자로 군림한 인물이다. 대통령·의회·사법부·군대를 모두 통솔하는 종신직 최고지도자는 그의 승인 없이는 어떤 결정도 집행되지 않는 초월적 권위를 갖고 있었다.
하메네이는 1939년 이란 북동부 마샤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이슬람 율법 공부를 시작했다. 1979년 이슬람 혁명에 참여해 호메이니의 측근으로 부상, 이란-이라크 전쟁 중인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제3대 대통령을 지냈다. 호메이니 사망 직후 이슬람 율법 전문가 회의에서 최고지도자로 선출됐으며, 정치적·종교적 권위를 동시에 쥐고 이란 내부를 철저히 장악했다.
이란 최고지도자로서 하메네이는 행정부·입법부·사법부·군대에 대한 직간접 통제권을 행사했다. 대통령·내각 임면, 사법부 수장 지명, 국영매체 경영진 임명, 군 총사령관, 선거 후보 심사(수호자 위원회 통제), 파트와(종교 칙령) 발표 등 모든 권한을 독점했다. 특히 혁명수비대(IRGC)와 쿠드스군을 직접 통솔하며 레바논 헤즈볼라·후티 반군 등 '저항의 축'을 지원하는 대외 정책의 핵심축을 담당했다.
국내적으로는 반대 세력 숙청과 강경 진압으로 악명이 높았다. 2009년 녹색혁명 시위, 2022년 마흐사 아미니 사망 사태 등 반정부 시위를 유혈 진압하며 여성·소수자 권리를 이슬람 율법으로 억압했다. 경제 민영화와 에너지 강국화, 과학기술 발전을 장려했으나 국제 제재와 내부 부패로 성과가 제한적이었다.
대외 정책에서는 반미·반이스라엘 노선을 고수하며 핵개발을 주도했다. 2003년 대량살상무기(WMD) 금지 파트와를 발표했으나, 2015년 JCPOA(이란 핵합의)에 회의적 태도를 보이다가 결국 이행을 용인했다. 최근 트럼프 2기 행정부와의 갈등 속에서 "쉬운 표적"이라는 발언에 맞서 강경 대응을 천명한 바 있다.
2026년 2월 이스라엘·미국 공습으로 폭사한 것으로 알려진 하메네이의 사망은 이란 권력 공백과 후계 구도 불확실성을 초래할 전망이다. 그는 최근 측근 알리 라리자니 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을 유고 대리인으로 지명했으나, 혁명수비대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와 내부 권력 투쟁이 예상된다. 하메네이는 이란을 현대판 신정 독재로 통치한 상징적 인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