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함 섬세함

가진 능력

by 자유미

예민함은 약점이 아니라 감각이다


우리는 자주 이런 말을 듣는다.

“너는 너무 예민해.”


그 말 속에는 대체로 이런 뜻이 숨어 있다.

그만 좀 느끼라,

그만 좀 신경 쓰라,

그냥 넘어가라.


하지만 정말 예민함은 줄여야 할 성질일까.


예민하다는 건

남들이 지나치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고,

남들이 못 본 표정을 읽는 사람이고,

말하지 않은 분위기를 알아채는 사람이다.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에

하루 종일 마음이 머무는 사람.

카페에서 스쳐 지나간 시선 하나에도

그 사람의 기분을 짐작해보는 사람.

공기의 온도가 조금만 달라져도

관계의 변화를 느끼는 사람.


그게 예민함이다.



예민함은 날카로움이 아니다.

오히려 감각의 폭이 넓은 상태에 가깝다.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이 아니라

작은 소리까지 들리는 것이고,

빛이 눈부신 것이 아니라

미세한 색의 차이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예민한 사람은 자주 지친다.

남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말의 뉘앙스, 숨의 길이, 눈의 흔들림,

그 모든 것이 데이터처럼 쌓인다.


하지만 그만큼

깊이 사랑할 수 있고,

섬세하게 배려할 수 있고,

누군가의 아픔을 먼저 알아볼 수 있다.



섬세함은 예민함이 다듬어진 상태다.


예민함이 “아, 뭔가 이상해”라면

섬세함은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까지 가는 힘이다.


예민함이 감지라면

섬세함은 선택이다.


상대의 말투가 달라졌다는 걸 느끼고

모른 척하지 않고 물어봐주는 것.

기분이 상했다는 걸 알아차리고

날 세우지 않고 표현하는 것.

“나는 지금 이런 마음이라 속상해.”라고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


좋다, 싫다, 짜증난다로 뭉뚱그리지 않고

“나는 네가 그 말을 웃으면서 했지만

그 안에 진심이 아닌 것 같아서 서운했어.”라고

자기 마음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


그게 섬세함이다.



세상은 둔감한 사람을 편하게 여긴다.

무던한 사람이 강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짜 강함은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느끼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예민함을 없애려 하지 말자.

대신 다루는 법을 배우면 된다.


모든 신호에 반응하지 않아도 되고,

모든 감정을 책임지지 않아도 되고,

모든 분위기를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


내 감각을 인정하되

거기에 휩쓸리지 않는 연습.


그게 예민함이 섬세함이 되는 순간이다.



예민한 사람은 상처도 깊게 받지만

기쁨도 깊게 느낀다.


꽃의 향을 오래 맡고,

노을의 색을 오래 바라보고,

사람의 마음을 오래 기억한다.


그래서 나는

예민한 사람이 좋다.


세상을 대충 보지 않는 사람들이니까.

관계를 가볍게 소비하지 않는 사람들이니까.

마음을 함부로 쓰지 않는 사람들이니까.


예민함은 결함이 아니라

세상을 더 진하게 느끼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 능력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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