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어제는 아빠의 기일이었다.
평소와 같으면 아빠를 지극정성으로 챙겼던 엄마와 함께 아빠를 찾아갔겠지만, 올해는 가지 않았다.
엄마는 늘 그랬듯 며칠 전 전화를 했고,
늘상 당일 오전이면 마치 짠것처럼 우리는 한차를 타고 갔겠지만
엄마가 토요일 오전에 일을 하는 터라
오전에 출발할 수 없기에 "오전에 일을해서 오후에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갈래?" 라고 물었다.
"아니 엄마. 우리 이번에는 각자가자. 난 따로 가고싶어."
"그래? 알았어."
엄마와 함께 가지 않겠다고 대답을 한건
사실 나의 엄청난 용기이었다.
매번 엄마가 섭섭할까 눈치를 보며 아침에 아이를 깨워 부산스럽게 준비하고 아빠가 계신곳으로 길을 나섰다.
우리 아이는 태어나서 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얼굴도 모르고 할아버지라는 단어가 상상속에 있을텐데, 돌아가시고 나서 할아버지한테 인사를 하라고 하니.
글쎄, 내가 우리 딸이었어도 "그게 뭔데?" 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빠는 어렸을 적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이었지만,
내 마음에 가장 많이 상처를 준 사람이기도 하다.
그 상처로 나는 많이 아팠고 시들어 있었다.
그래서 살기 위해 약 10여년 교류를 하지 않았다.
엄마에게는 방패막이 되어주지 못했고,
동생에게는 가족의 위기를 회피해버리는 겁쟁이로 낙인이 찍혔다.
하지만 정말 내가 살고 싶었기에
나는 그곳에 나를 방치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를 못잡아서 먹어서 난리던 아빠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매일 그 낮은 목소리로 죽여버리겠다고 협박을 하고, 툭하면 칼 들이대고,
유일한 가족의 작은 가게에 불을 지르겠다고 석유를 들이붓던 알콜냄새 나던 그 남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그냥 싸늘하게 세상을 하직했다.
아직 제대로 미워도, 원망도, 용서도 못했는데
아무 심판도 받지 않고
내 눈에는 나비처럼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 버렸다.
아빠가 떠나고 지난 몇년.
이상하리만큼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내곁을 떠나갔다.
죽고나면 모든것이 무의미해진다는 것을 30대 끝자락에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러면서 오만을 부렸던 것 같다.
적어도 나는 살아 있기에.
아빠에게 받은 상처를 덮어두고 용서한것 처럼, 이제는 괜찮은 것 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지독한 아홉수와 삼재 때문이었을까.
온갖 악재로 마음을 끓이고 온몸으로 부딪치고 깨지면서
매번 지독하게 아팠고 아침이면 눈뜨기 싫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매일 먹는 수면제 갯수들이 늘어갔지만
눈 뜨고 깨어 있는게 괴로울 때는 그냥 입에 털어 넣었다.
적어도 그러고 나면 오늘 밤은 지나가리라 생각하면서.
남편과의 사이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과의 말다툼 후
남편이 남긴 장문의 메시지를 읽으면서 깨달은 게 있었다.
내가 아직도 아빠가 준 상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
누가봐도 당당하고 아무렇지 않게 웃어보이지만
내 마음속에 아이는 아직 깜깜한 방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울고 있었다.
이젠 나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사람이 없고, 아빠는 하나뿐인 생을 잃었기에.
적어도 나는 아직 숨을 쉬고 아빠를 용서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에.
살아있을 때 용서도 빌지 못하고 가버린 아빠를 가엾게 여겨
나는 내가 아빠를 용서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건 나의 오만이었다.
이제 내가 아빠보다 생과 삶이라고 하는 귀한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내가 이런 호의? 선의?를 베풀어도 된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나를 아프게 했던 아빠는 떠났지만
아직 내 상처는 아물지도 딱쟁이가 지지도 않았더라.
마음속에 아이는 무섭다고 울부 짖었고 깜깜한 어둠이 무섭다며 몸부림 치고 있었다.
그걸 깨닫고 나는 더이상 '척'하지 않기로 했다.
괜찮은 '척', 용서한 '척', 너그러운 '척'
엄마와 동생에게도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든든한 맏이, 언니 노릇은 못했지만, 적어도 나는 나를 돌보아야했으니까.
나는 내 보호자이니까,
아직 제대로 크지도 못하고 깜깜한 방에서 훌쩍이는 나를 돌보기로 했다.
나는 안다.
나의 원가족에서 갈등이나 힘든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내쳐질 것이 '나'라는 것.
근데 그걸 알면서도 그냥 열심히 눈치를 보며 붙어 있었다.
난 사랑받고 싶었으니까.
아빠의 부족했던 사랑을 그렇게 나를 구겨넣으면서도 가족 옆에 있으면서 사랑받고 사랑하고 있다고
자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딸이 적어도 나처럼,
사랑을 갈구하여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는 걸 참아가며 웃는걸 원하지 않기에.
나는 울고 있는 마음속에 아이부터 꺼내주기로 했다.
아빠에게 다시 가는 날이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아이를 밝고 따뜻한곳으로 데리고 햇빛을 듬뿍주며 온기를 채워주려고 한다.
충분히 눈물이 마르고 마음이 따뜻해져 웃을 수 있을 때
그때. 만나러 가려고 한다.
재촉하지 않고 그 시간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