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빨래

구멍난 속옷을 입으면 불행한가요?

by 솜사탕수박라떼

어렸을 때, 나는 시골에 살아서 우리동네에는 동네슈퍼 이외에 커다란 마트가 없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엄마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시장에 갔다.


시장 초입에 들어가면

화장품 아줌마가 스킨하고 로션을 팔고 있었고

그 맞은 편에는 커다란 난전에 남자여자 속옷이랑 양말을 팔고 있었다.


엄마는 항상 그곳에서 속옷을 샀다.

그것도 제일 싼걸로.


BYC같은 상점 안에서 사는건 바라지도 않지만

그래도 좀 예쁜거 사지

엄마는 왜 맨날 저렇게 예쁘지도 않은 싸구려 속옷만 살까 속으로 생각을 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나마 그것도 멀쩡하게 입으면 다행인데

하도 오래 입다보니 빨아서 개다보면 옆에 조금맣게 구멍이 나있었다.


“엄마 이거 버려야 할거 같아. 구멍났어.”

“아 괜찮아. 더 입을 수 있어. 잘 개어놔.”


우리집이 넉넉하지 않은건 나도 알고 있었지만

구멍난 속옷을 입는 엄마를 보면 나는 속이 많이 상했다.


‘아니 좀 예쁜건 아니더라도 구멍난건 입지말라고!!’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엄마가 속상해 할거 같아서 참았다.


다 자라서도 가끔 그 때가 생각이 났다.

‘난 구멍난 속옷을 입어야만 하는 상태라면 비참한 느낌이 들거 같은데, 엄마 진짜 아무렇지도 않았나?

아니면 진짜 엄마는 힘들어도 참을 수 있는 건가? 휴. 알수가 없네‘ 라고 생각하며

나는 가끔 티비 홈쇼핑에 나오는 속옷 셋트를 엄마 집으로 보내곤 했다.


그리고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행복하지만 쉽지않은 육아와 워킹맘의 삶을 이어가며 한동안 정신없이 살았다.

그 사이 나에게는 마치 때를 놓친 사춘기 같은 것이 다가 왔고 때를 놓친 만큼 아주 삶을 격렬하게 흔들었다.

마흔을 앞두고 나와 세상 관계에 대해 치열한 자아탐구를 하며 내 가치관을 다시 재정립 하였다.


그렇게 폭풍이 잦아들고,

조금씩 마음의 평화가 다가 올때 쯤.

2025년 초겨울.


일과를 마치고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 입으려고 속옷서랍을 열었는데

내가 엄마와 시장갔을 때 난전에서 봤던 재미없게 생긴 속옷들이 들어 있었다.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났다.

‘음 이게 제일 편한거였네. 나도 똑같네.’

그리고 하나를 집어서 입는데 손가락이 푹!!! 속옷 옆에 손가락 하나가 쑥 들어갈 만큼 큰 구멍이 났다.

근데 무슨 이유 였을까.

깔깔깔깔 웃음이 났다.

“아 뭐야. 팬티 빵꾸났어.”

한참을 그자리에서 배가 찢어져라 웃었다.


그날 그 순간 내가 알았던 건.

구멍난 속옷을 입는다고 엄마가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는걸 알았다는 것이다.

이제 내가 엄마의 감정을 이해 할 수 있을 만큼 어른이 되어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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