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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지킴이 Nov 28. 2023

1장 괴물 아버지. 강하지만 가엾은 어머니

강하지만 가엾은 어머니   

  

  나는 커가면서 어머니가 아버지와 이혼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표현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무리 남편이 집에서 횡포를 부려도 당시 이혼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나는 어머니가 우리 삼 남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생을 감수한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우리를 위해 산다는 말을 자주 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술을 마셨어도 어머니와의 사이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아버지의 술만 아니었다면 두 분은 그럭저럭 자식들 키우는 재미에 행복하게 지내셨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사랑하셨던 것 같다. 술 먹는 남편은 밉고 미래도 캄캄했겠지만. 어머니는 아버지를 극진하게 대우했다. 아버지가 퇴근하실 무렵이면 어머니는 내게 늘 뚜껑을 덮은 밥공기를 따뜻한 아랫목에 갖다 놓고 이불을 덮어 놓으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아버지가 먹을 밥이었다. 매일 아버지 발을 씻겼다는 이야기는 이미 했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 시절 시골에서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어머니의 정성은 좀 유별났다. 

  어머니는 절대 아버지에게 대들거나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늘 아버지를 달래고 비위를 맞추어 주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아버지에게서 우리를 보호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덜 시달리고 일찍 자게 하려고 아버지에게 호소했고, 아버지의 폭력이 나타날 조짐이 보이면 우리를 피신시켰다. 나는 아버지가 무서웠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있으면 든든했다. 어머니는 하늘을 뚫을 듯 사정없이 몰아치는 폭우를 막아주는 튼튼한 우산이었다. 어머니만 있으면 나는 어떤 일이 생겨도 괜찮다고 느꼈다. 당시 어머니의 나이가 삼십 대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디서 그런 강인함이 나왔을까 나는 커갈수록 늘 의아하고 놀라웠다. 

  아무리 강인해 보여도 어머니는 연약한 여자였다. 아버지가 술을 먹은 다음 날이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어머니를 찾아오곤 했다. 어머니는 전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눈물짓곤 했다. 그런 어머니를 볼 때마다 마음이 울적해졌다. 나도 어머니 목에 매달려 울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용기가 없었다. “에구, 술이 웬수야, 웬수. 그래도 좋은 날이 올 거야. 애들도 다 착하고 잘 크는데...허 선생이 언젠가 정신 차리겠지.” 이웃 아주머니의 위로에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그 희망으로 버티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가여웠다. 어머니가 우는 모습을 보면, 마음속에서 무언가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는 우리 앞에서는 어머니를 때리지 않았지만 나는 종종 어머니가 맞는 모습을 목격했다. 한번은 마루에서 아버지의 발에 걷어 채이며 저항도 하지 못하는 어머니를 마당에서 본 적이 있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버지를 말릴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는 나도 맞을 것 같아 너무나 무서웠다. 왜 우리 엄마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지? 엄마는 누가 보호해 주지? 답이 없는 질문을 하며 나는 그렁그렁 눈물만 흘렸다. 

  아버지를 상대하느라 어머니는 자식들의 감정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어젯밤 무서웠지? 힘들었지?”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 자신의 감정도 추스르기 힘든데 자식들의 감정을 보듬어 줄 여유가 어디 있었을까. 그때 어머니가 나의 감정을 좀 돌봐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 때마다 어머니 상황에서 그것이 가능했을까 싶다. 나 역시 어머니를 위로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나는 마음으로 어머니의 슬픔과 막막함을 함께 짊어졌다. 그리고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 드리고, 웃게 해 드리고 싶었다. 

  내가 어머니에 대한 연민으로 어머니와 나를 너무 동일시해서일까. 지금도 나는 누군가에게 연민의 감정이 들면 그 사람의 감정과 내 감정을 잘 분리하지 못한다. 그 사람의 아픔이 고스란히 나의 것으로 느껴지고 그 사람이 괜찮아질 때까지 연민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그 사람에게도, 나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이런 삶의 태도를 언제쯤이나 벗어버릴 수 있을까.     

  “엄마아~” 나는 가방을 어깨에서 풀어 내리면서 대문에서부터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는 마루나 마당에서 이불을 깁든지, 김치를 담그든지 뭔가 집안일을 하느라 항상 바빴다. 

 “잘 다녀왔니?”

 “엄마, 나 상 받았어!” 

나는 가방에서 상장을 꺼내 자랑스럽게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어디 보자.”

어머니는 상장을 받아 들고 내용을 읽으면서 얼굴에 미소를 머금었다. 

 “이번에도 일등 했네. 잘했다.”

나는 어머니의 얼굴에 뿌듯한 웃음이 번져가는 모습이 좋았다. 어머니를 기쁘게 해줄 수 있어서 나 스스로가 그리 대견할 수가 없었다.

  나는 어머니의 자랑이었다. 내가 공부를 잘하는 줄 아는 사람들은 어머니를 부러워했다. “얼마나 좋아, 자식이 이렇게 공부를 잘해서. 나중에 고생 다 잊을 거야.”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어머니는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나는 커서 꼭 어머니가 고생한 보람을 느끼게 해 드리겠다는 결심을 했다. 

 “엄마, 난 커도 결혼하지 않을 거야.”

 “왜?”

 “커서 엄마하고 살 거야.”

 “그래, 그러렴.”

나는 그 방법도 모르면서 크기만 하면 어머니가 아버지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가끔 집에 도서 전집을 파는 사람들이 들렀다. 그들은 동화 전집이니 위인전집이니 역사책 전집 등 목록이 실린 커다란 종이를 마루에 펼쳐놓고 어머니에게 설명했다. 나는 옆에 앉아 책들이 찍힌 사진과 도서 목록을 살펴보면서 어머니가 어떤 전집을 사주시려나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전집의 가격은 당시 우리 집 살림으로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알뜰했던 어머니도 책 사주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 집 책꽂이에 25권짜리 세계문학전집, 50권짜리 위인전집이 꽂히자마자 나는 탐욕스러울 정도로 책을 읽어나갔다. 

  다음번에 그 책 장사가 다시 오면 어머니는 내가 벌써 그 전집을 다 읽었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어휴, 대견한 아이네요. 그 많은 책을 벌써 다 읽었다고요? 장하구나.” 그런 칭찬을 듣고 어머니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어머니의 고단한 삶을 내가 위로하는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가 현실을 견뎌낼 이유와 희망을 내가 주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말을 거역하거나 투정을 부려본 기억이 없다. 아주 일찌감치 나는 순종적인 딸이 되기를 선택했던 것 같다. 어머니의 엄격함도 한몫했겠지만 나 스스로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었을까. 기특하고 장한 딸, 어머니에게 정신적으로 힘이 되어주는 딸, 그것이 무의식적으로 내가 자신에게 부여한 역할이었다. 이런 아이를 흔히 가정에서 영웅의 역할을 하는 아이라고 말한다. 그런 아이는 보통 첫째가 많고 책임감이 강하고 부모를 돕는 역할을 한다. 공부를 잘하고 성취력이 높다. 나이보다 어른스럽게 행동하기도 한다. 남의 필요만 생각하고 자신의 필요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좀처럼 남에서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는다. 스스로 알아서 자기 일을 잘 해낸다. 이런 모든 영웅 아이의 특성이 내게 적용되었다. 지금도 나는 어머니가 나를 키우면서 힘든 게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런데 집안의 영웅 역할을 맡으며 칭찬을 많이 받은 것이 결국 내게 독이 되었다. 어머니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어야 했고 성취로 어머니의 삶을 보상해주어야 했던 나는 존재 자체로 인정받는다는 느낌이 뭔지 몰랐다. 지금도 나는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갈망한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충분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더구나 지금은 어릴 때, 학창 시절에 들었던 칭찬, 사람들의 인정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그 시절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곤 한다. 그때의 내가 더 나은 나였던 것 같고, 지금의 나는 형편없이 느껴질 때가 많다. 나를 자랑스럽게 여겼던 어머니는 내 안에 내재화되어 여전히 내게 뭔가 뛰어난 일을 성취하기를 바라는 것만 같다. 내 안에는 스스로 자랑스럽게 느끼고 싶은 욕구가 늘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내 삶은 늘 불만족스럽고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이 결코 어머니의 탓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성장 배경이 현재의 나를 어떻게 형성했는지를 설명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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