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지킴이 Nov 28. 2023

1장 괴물 아버지. 어머니의 두 모습

어머니의 두 모습     


  지난밤 일은 전혀 입에 올리지 않고 아버지에게 바로 지어낸 아침상을 내오고 옷을 내주며 잘 다녀오라고 배웅하는 어머니도 신기했다. 우리에게도 잠은 잘 잤느냐, 어제 무섭지 않았냐 아무런 말씀이 없었다. 우리는 어머니가 차려주는 아침밥을 먹고 역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학교를 향해 집을 나섰다. (정서적 돌봄의 결여)

  누구나 어린 시절에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어머니가 집에 없으면 온 세상이 텅 비어버린 것 같이 느껴지는 경험 말이다. 나 역시 그랬다. 종종 어머니는 미리 이야기해 주지 않고 집을 비우곤 했다. 그런 날이면 어머니가 돌아올 때까지 내 마음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밖에 나가서 놀아도 마음이 허전하기만 했다. 어머니는 내게 세상 그 자체였다. 

  우리 집 부엌은 마루와 연결되어 있었다. 마루 끝에 문이 달려 있었고 그 문을 열고 댓돌을 하나 내려가면 부엌 바닥이 있었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할 때면 나는 부엌문 옆 마루에 배를 깔고 누워서 어머니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종알종알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때로는 말없이, 때로는 대꾸도 하면서 내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그 시간이 내게는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5학년 어느 날이었다. 학교에 다녀왔는데 어머니가 집에 없었다. 그런데 처음 보는 낯선 할머니가 우리 집에 와 있는 것이었다. 하얀 한복을 차려입고 머리에 비녀를 꽂은 그 할머니는 아주 늙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 할머니는 어머니의 먼 친척이라고 하시며 어머니가 어디 가면서 며칠 집에 돌아오지 못하니 살림을 대신 봐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며칠이나요?”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다.”

내 가슴은 무섭게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집을 나갔다. 이런 일은 전에 한 번도 없었다. 전날까지 어머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떤 암시도 주지 않고 어머니가 며칠씩이나 집을 비운다는 게 나는 믿어지지 않았다. 금세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어디 가셨는데요?”

“그것도 잘 모른단다.”

야속하게도 할머니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무심히 대답했다. 나에게는 하늘이 노래지고 갑자기 땅이 쑥 꺼져버리는 것 같았는데 말이다. 어머니가 어디로 갔는지, 얼마나 지나면 돌아올지도 알 수 없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아버지는 뭔가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겁이 나서 아버지에게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정말 그날 밤 어머니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 할머니가 저녁을 해주셨는데 밥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눈물을 삼키면서 꾸역꾸역 몇 숟갈 먹다 말았다. ‘엄마가 아빠 때문에 힘들어서 도망친 걸까. 정말 그런 거면 나는 이제 어떡하지?’ 너무나 무서워서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아침이 되었는데도 매일 들리던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어머니의 기척도 없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출근했다. 

  내게는 지옥이 시작되었다. 며칠 있으면 돌아온다던 어머니는 일주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 나는 학교에 가도 즐겁지 않았다. 세상은 내게 캄캄한 어둠으로 변해 버렸다. 어떤 빛 한줄기도 비추지 않는 어두운 날들이 계속되었다. 가슴 속에 큰 구멍이 나버려서 어디를 가도, 무엇을 해도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앨범에서 어머니 사진을 하나 찾아냈다. 사진 속의 어머니는 빙긋이 미소 짓고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가슴 속에 집어넣었다. 사진이 몸에 닿는 것이 매 순간 느껴졌다. 그 감각이 없으면 나는 이 세상 어딘가에 어머니가 있고 곧 돌아올 거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저녁이 되면 나는 장독대로 올라가 가슴 속에서 사진을 꺼냈다. 웃고 있는 어머니 얼굴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엄마, 언제 와? 언제 와?” 한길을 내다보며 사진 속의 어머니에게 나는 대답 없는 질문을 해댔다. 행여나 오늘은 올까 하는 기대는 매일 무너졌다. 이러다 영영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열 시쯤 되었을까. 할머니가 나에게 “엄마 오셨다. 너 혼자만 밖에 나가봐라.”하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가 듣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꿈꾸는 기분이 들었다. 마당을 가로질러 뛰어가 대문을 열었더니 거기 어머니가 있었다. 얼마나 기다렸던 어머니인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가. 그런데도 나는 엄마에게 달려가 안기지 못했다. 보고 싶었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그날 어머니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엄숙하게 굳어있던 어머니의 얼굴과 어머니가 했던 말만이 기억난다. 내가 울려고 하자 어머니는 울지 말라고 했다. 

“조금 있으면 엄마 돌아올 거야. 그때까지 동생들 잘 보살피고 있어.” 

  야속한 어머니! 어디에 있는지, 언제 돌아오는지 정확히 얘기해주지도 않고 그 말만 했다. 나는 “엄마, 지금 어디 있어? 언제 올 거야?” 너무나 묻고 싶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내게 이야기하면 아버지가 알게 될 수도 있어서 말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묻지 않았다.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도 말하고 싶었다. 다시 가지 말라고 붙잡고 울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딱딱하게 굳은 어머니 표정에 혼날 것만 같아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어머니는 어둠 속으로 다시 사라졌다. 어머니를 따라 뛰어가고 싶었지만, 나를 데려가 달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내 발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멀어지는 어머니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소리 죽여 울기만 했다. 그날의 일은 어머니가 내게 했던 가장 잔인한 일이었다. 

  정확히 한 달이 지나 어머니가 돌아왔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어머니가 기적처럼 집에 있었다. 마치 그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나는 여전히 어머니가 돌아온 기쁨을 표현하지 못했다. 온갖 감정을 뼛속 깊이 느끼면서도 나는 말로 감정을 표현할 줄 몰랐다. 나의 감정을 어머니에게 표현하면 그것이 어머니에게 또 다른 짐이 될 것만 같아서였을까. 어디서 무엇을 하다 왔는지도 묻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그 일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아무도 그때 어머니의 행적에 대해 밝혀준 사람이 없었다. 친척들에게 그 일을 물어보면 “네 엄마가 집을 나간 적이 있었니?”라는 대답만 돌아온다. 그때 어머니는 한 달 동안이나 어디에 가 있었던 걸까. 

  어머니가 집에 돌아왔으니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나의 눈물은 말랐고 사진은 다시 앨범 속에 넣었다. 그때는 굳이 어머니에게 물을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코아의 특징이라는 것을. 내 감정을 받아줄 사람이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였다는 것을. 어머니가 부재했던 그 한 달은 내게 큰 트라우마가 되었다. 누군가 소중한 사람이 나를 떠난다는 느낌, 그것이 주는 공포가 나의 영혼 어딘가에 깊숙이 박혀버렸다.      

  나에게 어머니는 그리 자애로운 분으로 기억되지는 않는다. 강하고 엄격하고 생활력이 강하셨던 분. 자식에게 더할 나위 없이 헌신적이었지만 어머니에게 자상하거나 부드러운 모성은 별로 느끼지 못했다. 어머니가 가출했던 사건은 그런 어머니의 이미지를 더 강화했다. 그렇지만 몇 가지 작은 사건은 자애롭고 따뜻한 어머니의 이미지를 내 기억에 뚜렷하게 각인시켰다. 

  6학년 때였다. 다른 반이었지만 친했던 현주라는 아이가 있었다. 나이에 비해 키도 크고 정신적으로 성숙한 느낌을 주었던 아이였다. 얼굴도 예쁘장했고 리더십이 있어서 줄곧 반장을 했던 아이였다. 늘 밝고 웃는 얼굴을 하고 당당한 그 아이가 좋았다. 한 반인 적이 없었는데도 누가 먼저 다가갔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꽤 친해졌다. 

  어느 날 학교에 갔는데, “현주가 죽었대.”라는 말을 아이들이 하는 걸 들었다. 

“간밤에 연탄가스를 마셔서 죽었대.”

“벌써 장례식을 치렀대.” 

나는 아이들의 말이 거짓말처럼 들렸다. 그런데 정말 현주네 반에 가 보니 현주가 없었다. 뭔지 모를 침통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하루 종일 누구와도 현주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수업이 다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수업이 끝난 후 현주네 집을 찾아갔다. 현주네 집은 학교에서 멀지 않았다. 차가 다니는 큰 길가에 늘어선 작은 집 중 하나였다. 현주네 집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던 나는 그 작고 초라한 집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마당도 없고 마루도 없고 부엌과 방만 있는 집이었다. “계세요?” 개미 같은 목소리로 불러 보았으나 아무 기척도 나지 않았다. 살짝 방문을 열어보았더니 열렸다. 작은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장례식에 간 모양이었다. 현주가 죽었다는 게 비로소 실감 났다. 정적이 감도는 집은 지난밤 현주가 죽었다는 걸 확인시켜 주는 듯했다. 나는 오싹하는 느낌이 들면서 동시에 마음 깊은 곳에서 진한 아픔이 느껴졌다.

  집에 돌아오면서 내내 울었다. 어제도 보았는데 오늘 현주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니 어머니가 마루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다. 

“엄마~” 나는 울면서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순간 마음속 깊이 꾹꾹 눌러두었던 마지막 슬픔이 터져 나왔다.

“왜? 선화야, 무슨 일 있어?”

심상치 않은 일이 있다는 걸 감지한 어머니가 눈을 크게 뜨고 근심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현주가... 죽었어.”

“뭐라고?”

어머니는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밤에 연탄가스를 마셨대.”

“...세상에...어떻게...”

어머니는 나를 감싸 안았다. 나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 

“우리 선화랑 그렇게 친했는데...네가 아주 슬프겠구나.”

어머니도 눈물을 지으면서 나를 안은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마당에는 해가 기울어 키가 큰 꽃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시간이 지나니 거짓말처럼 슬픔이 사라졌다. 나는 어머니의 품속에서 친구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했다. 어머니가 말없이 나의 슬픔을 공감해주었던 그 순간은 가장 따뜻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내게 남겨 주었다. 

  해마다 방학이 되면 나는 서울에 있는 외삼촌 댁에 놀러 가곤 했다. 어머니가 가출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여름 방학이 되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외사촌 여동생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나는 그 아이가 돌아갈 때 함께 서울로 가서 남은 방학을 보내다 오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어머니가 서울에 오셔서 나를 데려오기로 했다. 어머니는 나와 외사촌 여동생을 평택역으로 데려다주었다. 나는 아버지를 떠나 한동안 평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겠다는 해방감에 몹시 들떠 있었다. 

  기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서울에서는 영등포역에서 외숙모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실 터였다. 그래도 어머니는 초등학교 여자아이 둘만 서울로 보내는 게 못내 걱정스러웠나 보다. 이런저런 당부를 하며 우리를 기차에 올려보냈다. 나는 기차가 떠날 때까지 기차 문 쪽에서 어머니와 짧은 작별 인사를 나눴다. 한편으로 신이 나기도 했지만, 혼자 서울에 가는 게 처음이라 두렵기도 했다. 왠지 집을 멀리 떠나는 느낌이 들었다. 

“잘 지내고 있거라.”

평소와는 다르게 어머니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리고 어머니가 나를 쳐다보는 눈에는 걱정과 안쓰러움이 가득 묻어났다. 그런 어머니의 표정을 나는 처음 보았다. 기차가 출발할 때까지 어머니는 내 얼굴을 올려보며 플랫폼에 서 있었다. 연민과 슬픔 같은 것이 어머니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기차가 출발하자 나는 멀어지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폭음이 이어지던 상황이어서 어머니를 두고 혼자 도망치는 것 같아 미안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기차에 앉은 나는 서울에 가서 지낼 생각에 다시 흥분했다. 어머니의 그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한 걸 보면 나는 일찌감치 어머니와의 작별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기억. 6학년 때였다. 어머니 생일은 음력이었는데 그해는 2월이었다. 그 전해까지 어머니 생일에 선물을 한 기억이 없다. 용돈을 따로 받은 적도 없어서 뭔가를 사 선물을 할 수가 없었다. 6학년이 되어 용돈을 받기 시작했는지 일찌감치 나는 돈을 모아두었다. 돼지저금통을 깨 보았더니 십 원짜리, 오십 원짜리, 백 원짜리 동전이 쏟아져 나왔다. 세어 보니 몇천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이걸로 무엇을 살 수 있을까. 

  추운 2월이었다. 나는 학교 근처 시장으로 갔다. 시장을 몇 바퀴 뱅글뱅글 돌았다. 손이 시려 호호 불면서 돌아다녔지만, 어머니 선물을 산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추운 줄도 몰랐다. 그러다가 양말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양말을 사 신은 적이 거의 없었다. 아버지가 신던 양말에 구멍이 나면 그것을 기워서 어머니가 신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형형 색깔의 예쁜 여자 양말을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돈을 탈탈 털어서 색깔이 다른 양말 몇 켤레를 샀다. 포장도 하지 않고 검은 봉지에 넣어 오면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내가 모은 돈으로 처음 해보는 어머니 생일 선물이었다. 

  선물을 받아 든 어머니는 봉투를 열어서 양말을 꺼내면서 “양말이네.”하며 환히 웃었다. “우리 선화가 벌써 다 컸네. 엄마에게 생일 선물을 다 하고. 양말 선물은 처음 받아 보네. 우리 선화가 효녀야.” 함박웃음을 지으며 기뻐하는 어머니 모습에 마음이 뿌듯해졌다. 추위에 떨면서 돌아다닌 나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그것이 내가 어머니에게 해주는 처음이자 마지막 생일 선물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모른 채.

매거진의 이전글 1장 괴물 아버지. 책과 학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