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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지킴이 May 17. 2024

네가 나에게 왔다

3장

  선유는 주변 사람들에게 입양 결심을 알렸다.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갈렸다. 듣자마자 “너무 잘 생각했어요. 축하해요.”하며 벌써 아이가 오기라도 한 듯 기뻐하는 사람들, 그리고 “음, 왜 입양하려고 하세요?”하면서 질문하는 사람들. 선유는 그녀 속에 잠재해있던 질문을 사람들이 끄집어내 주어서 고마웠다. 그들의 질문에 열심히 답하면서 ‘나는 왜 입양하려는 것일까? 그것도 일곱 살이나 된 큰아이를.’이라는 의문을 말끔히 해소하려고 애썼다.

  선유가 입양에 관심을 가진 건 우울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청소년이었을 때부터 막연하게 입양을 꿈꿨다. TV에서 해외입양인들이 한국에 돌아와 낳은 부모를 상봉하는 장면을 종종 보았다. 그때마다 설명할 수 없는 감격으로 가슴이 벅찼다. 그 입양인들은 해외에서 훌륭한 입양 부모를 만나 건강하게 성장해 있었다. 애초에 입양되지 않고 가난한 살림이라도 한국에서 자랐어야 한다는 생각은 어린 선유에게 떠오르지 않았다. 해외의 좋은 가정에 입양되었기에 한국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특별한 기회를 선물 받은 이들이라고 생각했다. 낳지 않았어도 아이를 입양해 키우는 것처럼 보람 있고 숭고한 일이 또 있을까. 그런 일이 내게도 일어난다면...격동의 이십 대를 지나고 미래가 불확실한 유학 생활을 하며 무의식의 검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그 꿈은 때가 되자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선유는 열네 살에 교통사고로 하루아침에 어머니를 잃었다. 그녀의 세상 전부였던 어머니의 상실은 인두로 지진 상처처럼 지울 수 없는 자국을 그녀의 가슴에 남겼다. 그 후로 그녀는 엄마가 없는 아이들을 그냥 보아넘길 수 없었다. 특히 엄마에 대한 기억이 있고 그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이들의 빈 마음을 채워주고 싶다는 갈망은 선유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는 무의식이 작동한 결과였다. ‘언젠가 그런 아이를 만난다면 그 마음을 보듬고 채워줄 수 있을 거야. 난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잘 아니까.’

  결혼 후 십사 년 동안 아이 없이 살면서 선유에게는 채무 의식 같은 것이 쌓여갔다. 불안 장애니, 우울증이니 하는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었지만, 선유는 몸의 질병이 없이 건강한 편이었다. 호진의 수입으로 두 사람이 생활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아이가 생긴다면 조금은 경제적으로 퍽퍽해질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신체가 멀쩡한 젊은 부부가 아이 없이 둘만 살아간다는 게 죄스러웠다. 부모 없는 아이들이 없다면 몰라도 버젓이 그런 아이들이 가정을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다.

  삼 년 전 선유의 아버지가 말기 암 판정을 받고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폐인이 되어 버린 아버지는 선유에게 늘 떼어낼 수 없는 무거운 짐이었다. 아버지가 떠나자 선유는 홀가분한 느낌이 들면서 더 이상 버거운 삶의 무게가 주어지지 않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짐을 짊어지는 게 익숙해서일까. 삼 년이 지나자 에너지를 쏟을 곳도, 몰두할 대상도 없는 삶이 허전하기만 했다. 매일 출근하는 직장도 없으니 시간이 남아돌았다. 강의하고 논문을 쓰고 번역하는 일이 다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선유에게는 가까이에서 관심과 돌봄의 욕구를 퍼부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온전히 그녀를 원하고 그녀에게 의존하는 대상. 그건 아이였다. 선유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부끄러웠지만 선유는 아이 없이 늙어가는 것이 무서웠다. 누구도 찾아와주지 않는 쓸쓸한 노년의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녀도 늙어서는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할 것이다. 경제적으로 자식에게 의존하는 시대는 끝났다 해도 늙은 부모는 정서적으로 자녀를 어느 정도 의존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늙은 아버지를 돌보고 죽어가는 아버지 옆에서 한 달을 지냈던 경험은 그런 선유의 생각을 더욱 견고하게 했다. 선유가 없었다면 아버지의 말년은 한없이 초라하고 비참했을 것이다. 선유는 자기 같은 자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부인할 수 없었다. 입양 외에는 길이 없었다.

  아이의 필요와 선유의 필요가 입양으로 만날 수 있었다. 어느 것이 우선인가는 물을 필요도 없었다. 선유는 당연히 아이의 필요가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필요를 우선시하는 건 입양하지 않는 죄스러움보다 더 큰 죄책감을 일으켰다. ‘내 욕구도 크지만, 아이의 필요가 훨씬 중요해. 내 욕구 때문에만 입양할 수는 없어.’ 선유는 자기 마음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스스로 떳떳해야만 한 걸음을 뗄 수 있었다. 사람들과 대화하고 자기 속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본 후에 선유는 마침내 정돈된 파일처럼 일목요연하게 입양의 동기를 설명할 수 있었다.

  이제 뭐부터 하면 되지. 현애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입양기관에 연락하라고 했다. 그러면 순리대로 풀린다고 했다. 선유는 호진을 힐끔 쳐다보았다. “여보, 홀트에 연락해 볼까?” 호진은 선유에게 알아보라고는 했지만, 막상 홀트라는 단어를 듣자 머뭇거렸다.

“아직 내가 확신이 들지 않아. 조금 더 기다려 줘.”

“알았어.”

선유는 서둘러서 좋을 건 없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단순한 편인데도 호진이 이렇게 고민할 정도라면 충분히 시간을 주어야 했다. 입양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호진에게 원망을 들어서는 안 되었다. 아이를 혼자 키울 수는 없는 일이다. 호진도 아빠가 될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선유와 호진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는 3월 한 달 동안 설교 시간에 세 번이나 ‘입양’이라는 단어를 말했다. 그 목사 자신도, 설교를 듣고 있는 사람들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오직 선유만이 알아차렸다. 선유는 그때마다 호진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호진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선유를 쳐다보면 선유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 “입양이라고 했어.”라고 속삭였다. 세 번째 그 단어를 들었을 때 선유는 말했다. “여보, 세 번째야. 이 정도면 충분한 것 아니야? 이거 하나님 뜻이야.” 호진은 반박하지 못했다. 한 번은 러시아 예배에서 젊은 전도사가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리라.”는 성경 말씀을 인용했다. 선유의 눈에서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를 대신해 너희가 나의 아이를 찾아가라.’는 신의 음성으로 들렸다. 예배 후 선유의 말을 들은 호진은 ‘더 이상 선유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겠구나.’라고 생각했다. “홀트에 연락해 봐.”라고 말했다. 신앙심이 좋은 호진은 거부할 수 없이 그를 압박해오는 신의 뜻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선유는 다음 날 홀트에 전화를 걸겠다고 했다. ‘드디어 일이 벌어지는구나.’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며 호진은 깊은 심호흡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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