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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지킴이 Jun 03. 2024

입양소설. 너에게 가 닿기까지

1부. 6장

 소영이와의 짧은 동거가 시작되었다. 선유는 닷새 동안 소영이가 심심해하지 않도록 하루하루 계획을 짜 두었다. 아침을 먹으면 무조건 밖으로 데리고 나가고 오후 다섯 시쯤 돌아와 저녁을 먹고 일찌감치 재우기로 했다. 잠은 안방 침대 아래에 자리를 깔아주고 같이 자기로 했다. 뭘 해 먹어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는데, 소영이는 의외로 해주는 대로 가리지 않고 음식을 먹었다. 

  그새 아파트 단지 안에는 벚꽃이 만개했다. 연분홍 벚꽃잎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모여있는 단지 내 뜰에서 소영이의 사진을 찍어줬다. 소영이는 한쪽 볼에 보조개가 있었다. 쏙 들어간 보조개에 검지를 대고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소영이는 활짝 웃지 않았다. 뭔가 수줍은 듯, 쭈뼛거리는 듯 어색한 소영의 표정에 선유의 마음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놀이터는 소영이의 무대였다. 소영이는 밧줄을 잡고 경사가 45도가 넘는 나무 구조물을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올라갔다. 선유가 붙잡아주려고 하자 “괜찮아요, 이모. 저 혼자 할 수 있어요.” 하더니 어느새 꼭대기에 올라가서 의기양양한 얼굴로 선유를 내려다보았다. “이모, 여기 봐요.” 선유가 미소를 지어주자, 소영은 쑥스러우면서도 신이 난 모양이었다. 소영은 곧 정글짐으로 옮아갔다. 더 나이 많은 아이들보다 빠른 몸놀림으로 출렁이는 징검다리를 건넜다. 자칫 발을 헛디디면 어쩌나 선유는 소영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았다. 소영은 선유의 눈길을 의식하는지 자꾸만 선유 쪽을 쳐다보며 씩 웃거나 앞으로 내달리고 손을 흔들면서 “이모, 저 여기 있어요”, “이모, 빨리 와요.”를 연발했다. 함께 놀아줄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소영은 혼자 놀이터를 탐험하며 두 시간 이상을 보냈다. 그동안 선유 쪽을 바라보며 눈길이 마주친 것이 수십 번은 족히 되었다. ‘에너지가 엄청난 아이야. 혼자 저렇게 잘 노는데 왜 집에서 힘들어할까?’ 선유의 의문은 얼마 가지 않아 풀렸다.

  오후 다섯 시쯤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아파트 입구에 거의 다다랐을 때 갑자기 소영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소영아, 왜 그래? 집에 들어가자.” 선유는 소영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소영은 입을 꾹 다물고 선유의 손을 뿌리쳤다. 그러더니 이내 닭똥 같은 눈물을 펑펑 쏟기 시작했다. 엉엉 소리도 내지 않고 어깨를 들썩거릴 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소영을 보고 선유는 당황했다. “소영아, 왜 울어? 기분이 안 좋아? 엄마 생각 나?” 무슨 말로 달래야 할지 난감해진 선유는 이런저런 말을 해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소영은 마치 어딘가 딴 세상에 가 있는 듯했다. ‘이거 어떡하지?’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선유는 그냥 옆에서 소영이가 울음을 멈추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조금도 미동하지 않고 땅에 발이 척 달라붙어 삼십 분 이상을 울던 소영은 저절로 울음을 멈췄다. “이제 갈까?” 선유가 다가가 손을 잡았더니 발걸음을 떼었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지만, 언제 울었냐는 듯 다시 활달해진 소영을 보며 선유는 또 한 번 가슴이 뭉클해졌다.

  집으로 들어온 소영은 거실 한쪽에 놓아둔 앨범을 가지고 오더니 새우등을 하고 앉아 앨범을 넘기기 시작했다. “이모, 이거 봐요.” 소영은 선유를 보며 사진을 손짓했다. “누구야?” 선유는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소영이 옆에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가 웃고 있었다. “오빠예요.” 선유는 소영이에게 한 살 많은 오빠가 있다고 들은 것이 기억났다. 그 아이는 소영의 부모가 낳은 친생자였다. 소영이와는 닮지 않은 아이. 나이 차이가 별로 없어서 소영이 할머니가 더 소영이를 미워하는 것일까. 차라리 나이 차이가 많은 형제가 있는 가정에 입양되었더라면 나았을 텐데. 

“오빠 좋아?”

“네.”

소영은 오빠와 찍은 사진만 계속 보여줬다. 아빠, 엄마, 할머니와 찍은 사진은 없었다. 

  소영이가 보육원에서 찍은 사진들도 꽤 있었다. 그 사진 중에 희야라는 아이가 있을지도 몰랐다. 선유는 아이들 얼굴 하나하나를 마음에 담아두려고 온 신경을 집중했다. 소영이와 유독 사진을 많이 찍은 남자아이가 있었다. 뽀얀 살결에 눈이 동그랗고 큰아이. 소영이의 단짝이었던 모양이었다.

“얘는 누구야?”

“지운이.”

“친구야?‘

“네.”

“지금 어디 있어?”

“몰라요.”

소영은 입양 전에 어디서 살았는지 기억이 지워진 것 같았다. 선유는 소영에게 지운이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어서 오빠에게 애착을 갖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앨범을 자주 들여다보면서 단절된 과거에 다시 가 닿고 싶은 소영의 무의식적인 욕구가 드러나는 듯하여 선유는 다시 먹먹해졌다.

  호진이 돌아올 시간이 되자 소영은 현관 앞을 얼쩡거렸다. 

“이모부 언제 와요?”

“이제 곧 올 거야.”

선유는 본 지 얼마나 되었다고 소영이 호진을 기다리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호진이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모부, 다녀오셨어요?”하고 인사를 꾸벅했다. 그리고 신이 나는지 거실 안을 뱅글뱅글 돌며 뛰어다녔다. “여보, 소영이가 당신이 맘에 드나 봐.” 선유는 희야도 소영이처럼 호진을 좋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호진은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아이들은 호진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마 호진의 순수하고 어린애 같은 면을 아이들이 알아보는 모양이었다. 

  밤 열 시가 되어 자리를 깔아주자, 소영은 낮에 에너지를 충분히 발산한 탓인지 곧 잠이 들었다. 잠든 소영의 곱슬곱슬한 머리와 통통한 볼이 라파엘의 그림 속 천사를 연상시켰다. ‘예쁘지는 않지만 참 사랑스러운 아이야. 낮에 갑자기 울지만 않는다면 키우기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은데...’ 무사히 하루가 지나갔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선유도 평소보다 일찍 잠을 청했다. 아이와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서인지 온몸이 노곤해져 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엉..엉..엉” 잠귀가 밝은 선유는 곧 눈을 번쩍 떴다. 침대 아래를 내려다보니 소영이 몸부림을 치며 울고 있었다. 낮과 달리 이번에는 큰 소리로 서럽게 울었다. 손을 허공에 휘젓고 발을 버둥거렸다. ‘올 것이 왔구나.’ 소영이가 한밤중에 깨어나서 운다는 말을 선유는 잊지 않았다. 낮이고 밤이고 우는 것 때문에 소영의 할머니가 파양을 운운한다는 것도. 진영의 엄마가 당부한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선유는 우황청심환을 먹이지 않고 소영을 진정시키고 싶었다. 호진이 자고 있었기에 선유는 소영이를 데리고 거실로 나왔다. “소영아, 꿈꿨어?” 아무 대답이 없었다. 소영은 또 다른 세계에 가 있었다. 무엇이 이리도 서러운 것일까. 선유는 다섯 살짜리 아이가 자다가 깨어 이토록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우리 소영이가 슬픈가 보다.” 어떤 말도 소영이의 영혼에 가 닿지 않았다. 선유는 소영이의 등을 토닥여 주기도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그냥 울도록 내버려 두기도 했다. 그러나 한 시간이 지나도록 소영의 울음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 날이 샐 수도 있었다. 할 수 없이 선유는 진영 엄마가 건네준 우황청심환을 소영의 입에 넣어주었다. 소영은 거부하지 않고 약을 꿀꺽 삼켰다. 잠시 후 소영의 울음이 멈췄다. 선유는 다시 소영을 방으로 데리고 가 자리에 눕혔다. 지친 소영은 곧 잠이 들었다.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내려갔다 반복했다. ‘매일 이렇게 울면 얼마나 힘이 들까.’ 선유는 이제야 조금 소영의 부모와 할머니가 겪는 고충이 이해될 것 같았다. 소영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트라우마가 있기에 이렇게 서러운 울음을 쏟아내는지, 어떻게 하면 소영이의 마음을 안정시켜 줄 수 있을지 그 집 어른들이 이유도, 방법도 알지 못할 테니 얼마나 답답할까. 소영이는 언제나 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선유는 입양의 실체에 조금 다가선 느낌이 들었다. 

  이틀이 지나자 소영이의 표정이 한결 밝아지는 게 눈에 뜨일 정도였다. 처음에 눈치를 살피던 소영이가 응석을 부리기까지 했다. “이모, 업어주세요. 안아 주세요.” 선유는 최선을 다하고 싶어서 소영이가 해 달라는 대로 모든 요구에 응해주었다. 소영이는 혼자 세수하고 이빨을 닦았다. 빨아서 말린 양말을 쌓아놓으면 “이모, 제가 할 수 있어요.” 하며 양말을 반으로 접고 예쁘게 한쪽 구멍에 말아 넣었다. “어, 이모보다 더 잘하는데!” 칭찬하면 얼굴이 발그레해지고 입이 귀에 걸렸다. 저녁을 준비하면 “이모, 제가 도와 드릴게요.” 하며 옆에 와 통통하고 작은 손으로 채소 씻는 걸 도와주었다. 얘기하는 걸 어찌나 좋아하는지. 맥락이 없어서 내용을 연결하고 추리해야 했지만, 손을 휘저어가며 얘기하는 모습이 앙증맞았다. 호진과 둘이 지내는 조용한 저녁 시간에 익숙했던 선유는 집안에 아이로 인해 없던 활력이 생겨나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입양 후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아 가슴이 벅찼다. 

  “이모, 도둑 올 것 같아요.” 첫날에 곧 잠들었던 소영이는 자기 전에 불안해했다. 현관 쪽을 자꾸만 쳐다보며 도둑이 올까 봐 무서워했다. ‘왜 도둑이 올까 봐 무서워할까?’ 선유는 소영이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아냐, 도둑 오지 않아. 이모부가 있으니까 무서워하지 마.”라고 안심시켰다. 그래도 소영이는 몇 번을 확인하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세 시쯤에는 여지없이 깨어 전날과 똑같이 울었다. 선유는 진정시키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우황청심환을 바로 먹여 재웠다. 소영이가 일어나는 시간이 점점 늦춰졌다. 열 한 시가 다 되어서야 잠에서 깨었다. 하루가 짧아졌다. 점심을 먹고 밖에 나가 저녁 시간에 돌아오니 하루가 금방 가 버렸다. 선유는 소영이가 오후 다섯 시만 되면 자리에 멈춰 우는 모습에도 금방 익숙해졌다. 

  꿈같은 닷새가 훌쩍 지났다. 선유는 몸은 고되었지만, 하루하루 벅찬 감동을 느꼈다. 닷새 만에 소영이의 표정은 놀라울 정도로 변했다. 어색했던 표정이 풀리고 웃음이 감돌았다. 처음에는 고집을 부리던 소영이가 선유의 말에 반응해 말을 듣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아이를 돌봐준다면 소영이도 점점 변하지 않을까. 선유는 자신이 꽤 잘 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입양 후에 아이를 키우는 것에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다. 

  마지막 날이 되자 소영의 부모가 소영을 데리러 왔다. 소영이는 틈만 나면 엄마 얘기를 했다. 선유는 한번 소영의 엄마와 전화 통화를 하기도 했다. 소영의 엄마는 소영이와 시어머니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러나 선유는 소영 엄마의 목소리에서 소영에 대한 애정을 읽어냈다. 엄마를 보자마자 소영은 “엄마!”하고 달려갔다. 소영 아빠는 “소영이 표정이 달라졌네. 많이 밝아졌어.”라고 말했다. 선유는 자신의 노력이 인정받는 기분이 들어 뿌듯했다. 소영 아빠가 감사의 표시로 시내 식당으로 가 점심을 대접했다. ‘좋은 분들인 것 같은데 안타깝다.’ 선유는 소영이 할머니만 아니라면 이 부부가 얼마든지 소영이를 잘 키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영이 아빠는 “애가 울지만 않으면 괜찮은데”라고 말했다. 선유는 ‘사랑으로 잘 받아주시면 좋아질 수 있을 거예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주제넘은 참견일 테니까. 

  식사를 마치고 소영 아빠가 선유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이미 소영의 짐을 차에 실어서 선유만 차에서 내리면 되었다. 그런데 선유가 차에서 내리자 갑자기 소영이도 따라 내렸다. “소영아, 아니야. 집에 가야지.” 소영 아빠의 말이 떨어지자 소영이는 표정이 굳어지며 다시 차 안으로 들어갔다. 선유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소영이가 집에 가고 싶지 않은 걸까. 우리 집에 더 있고 싶은 걸까.’ “소영아, 잘 가. 안녕.” ‘또 보자’라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이대로 영영 소영을 다시는 볼 수 없는 걸까. 소영이는 엄마 옆에 똑바로 앉은 채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떠났다.

  선유는 집에 들어와 거실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내 폭포 같은 눈물이 쏟아졌다. 집 구석구석에 소영이의 자취가 배어 있었다. 닷새 만에 이렇게 정이 들 수 있을까. 마음이 텅 비어버린 느낌. 둥지 안에 있던 작은 새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날아가 버린 것만 같았다. 소영이가 잘 지낼 수 있을까 가여워 흐르는 눈물이기도 했다. 그 어린아이가 다시 눈치를 보며 그 집에서 살아내야 한다는 현실이 기가 막혔다. 선유는 할 수만 있다면 소영을 구해내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나중에 꼭 소영이를 다시 만나야지. 입양하고 나면 그 가정하고 교류할 수 있을 거야. 같은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이니까. 어쩌면 도와줄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선유는 애써 이런 생각으로 자신을 위로했다. 한 시간을 울다가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다음 날 임 소장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선유님, 소영이랑 지내는 거 어땠어요?” 선유는 간단하게 보고하듯 이야기했다. 그러자 임 소장은 “혹시 소영이 입양할 생각 없어요?”라고 다짜고짜 물었다. 

“네? 이미 가정이 있는데요.”

“그 집에서 못 키울 것 같아요. 선유님이 키우면 좋을 것 같은데...”

“아니에요. 전혀 그런 생각은 없어요.”

선유는 딱 잘라 거절했다. 어떻게든 소영이가 그 가정에 안착하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소영이가 가엾어도 파양한 아이를 키우는 건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그 상처까지는 감싸 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양된 경험이 있는 아이도 입양되어 잘 적응하는 경우가 있다는 걸 선유는 몰랐다. 알았다 해도 선유는 ‘나는 아니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몇 년이 지나 선유는 우연히 소영이가 결국 파양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가슴 한쪽이 진하게 아려왔다. 희야를 만나기 전에 입양의 세계로 선유를 들여보내 주었던 소영이. 이제는 그 아이를 결코 만날 수 없겠구나. 하루에도 수십 번 “이모, 이모” 선유를 불러댔던 소영이의 목소리가 허공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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