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안토니우스의 가르침

2. 교훈

by 별지킴이

31. 대화 중에 조금의 불손함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겸손과 지혜는 처녀를 아름답게 꾸며주지만, 지혜로운 이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줍니다. 태양이 몸을 비추듯이 영혼을 비추는 빛은 경건한 지혜입니다.

32. 영혼의 온갖 정욕이 자신을 대항해 일어날 때도 진실로 지혜로우며, 자신의 운명을 마땅하고 견고한 기초 가운데 두기를 원하는 사람은 썩어 없어질 부가 아닌 하늘에 있는 진정한 영광을 얻는 것이 자신에게 더 기쁜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바로 그것이 그를 복된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부는 도둑맞을 수도, 강한 자에게 빼앗길 수도 있지만 영혼의 미덕은 안전하게 얻어지며 탈취당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영혼의 미덕은 죽음의 때에 힘써 그것을 얻은 자를 구원합니다. 부와 쾌락의 환영 같은 반짝거림은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의 마음을 유혹하지 못합니다.

33. 변덕스럽고 무지한 자는 지혜로운 자를 시험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며 침묵하는 자, 혹은 말하더라도 조금만, 즉 꼭 필요한 말과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말을 하는 이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34. 선을 행하며 경건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은 영혼의 미덕이 마치 빼앗길 수 없는 소유물과 영원한 안식을 주는 재산인 듯 소중히 여기며 이를 열심히 추구합니다. 그들은 일시적인 것이 넉넉지 않아도 기뻐하고 온전히 감사하면서, 필요한 만큼 그리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만큼만 사용합니다. 풍성한 식탁은 물질적인 몸을 양육하지만, 하느님을 아는 것, 인내, 자비, 자선, 경건, 온유함은 영혼이 하느님을 닮도록 만듭니다.

35. 온당치 못하고 영혼에 해가 되는 일을 하도록 강요하는 권력자라고 해도 자율적인 존재로 창조된 영혼을 통치하지는 못합니다. 그들은 몸은 구속할 수 있지만 의지를 속박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권력과 강압과 힘보다 더 강하신 창조자의 은혜를 받은 지혜로운 사람이 그 의지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36. 돈이나 자녀, 종 혹은 다른 소유를 잃는 것이 불행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 하느님이 주신 것에 만족해야 하고, 그 후에는 그것을 잃거나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고 해서 자신을 슬픔으로 괴롭히지 말고 기꺼이 온유하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사용하고 다시 되돌려주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37. 무릇 성품이 좋은 사람이라 함은 비록 엄청난 부를 준다 해도 부를 얻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팔지 않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복은 꿈과 같고, 부는 환영과 같아서 믿을 수 없고 순간적으로만 반짝거릴 뿐이기 때문입니다.

38. 앞서 언급했듯이 진실로 인간적인 장점이 있는 사람은 경건하고 선을 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마치 흰 옷 위에 장식용으로 덧입은 작은 자주색 옷이 도드라져서 모든 이의 눈에 띄는 것처럼 그들의 선한 삶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빛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영혼의 덕에 대해 더욱 열성을 다하게 될 것입니다.

39. 경건한 지혜를 가진 사람은 자기 능력을 살피고 영혼 안에 있는 덕을 정비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이 그들에게 자연적으로 주신 영혼의 힘으로 그들을 공격하는 정욕에 맞설 준비가 늘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곧, 영적으로 해로운 아름다움과 온갖 정욕의 반대는 절제이며, 궁핍과 가난의 반대는 인내이며, 짜증과 분노의 반대는 온화함입니다.

40. 갑자기 선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진지한 토론, 훈련, 경험, 끊임없는 수행 그리고 무엇보다 미덕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진실로 하느님을 아는 선하고 경건한 사람은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을 항상 하면서 잠시도 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41. 선을 추구하는 성향을 타고 나지 않은 사람은 낙심하거나 자신에 대해 실망하지 말고 경건하고 선한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삶이 아무리 그들에게 이루어질 수 없고 실현 불가능한 것 같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비록 미덕의 정점이나 온전함까지는 다다를 수 없다고 해도 여러 방면으로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염려하기 때문에 더 나아질 수도 있고, 적어도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영혼에 적지 않은 유익이 됩니다.

42. 사람은 이성을 통해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의 능력과 접촉하지만, 몸은 동물과 유사합니다. 그들 가운데 소수만이 즉, 진정 지혜로운 사람만이 하느님과 구원자에 대해 생각하고 그분을 닮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것은 선을 행하는 삶과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영혼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불멸하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제쳐둔 채, 죽을 운명에 속한 것, 곧 가련하고 유한한 몸과 같은 것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그들은 말 못 하는 짐승처럼 육체적인 것에만 신경을 쓰고 정욕에 불타서 자신을 하느님에게서 분리하고 영혼을 하늘에서 정욕의 나락으로 끌어내리려 합니다.

43. 지혜로운 사람은 하느님과 함께 거하는 것과 하느님과의 교제에 대해서만 생각합니다. 그는 절대로 세속적이고 저급한 것에 엮이지 않고 도리어 자신의 지혜가 하늘의 영원한 것을 향하도록 합니다. 그는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느님의 뜻이 사람에게 모든 선의 근원이며 영원한 복의 원천임을 알고 있습니다.

44. 만일 여러분이 논쟁을 좋아하며 진리와 확실한 것에 반대하여 싸움을 거는 사람을 만나거든 논쟁하기를 멈추고 마음이 완전히 굳어진 그 사람을 피하십시오. 더러운 물이 훌륭한 포도주를 아무 쓸모 없는 것으로 만들듯이, 악한 대화는 삶과 성품이 선한 사람을 타락시킵니다.

45. 우리가 육신의 죽음을 피하려고 모든 노력과 수단을 강구하는 것처럼 더욱더 영혼의 죽음을 피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구원받기를 바란다면 영혼의 태만과 게으름 이외에는 어떤 방해물도 없을 것입니다.

46. 자신에게 무엇이 유익한지, 무엇을 읽어야 좋은지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좋은 건강 상태에 있지 못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진리에 대해 알고 난 이후에도 진리에 반대하며 논쟁을 일삼는 사람은 분별력이 죽은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짐승의 마음이 되어 하느님을 알지 못하며 그들의 영혼은 더 이상 빛에 의해 밝아지지 않습니다.

47.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여러 종류의 동물을 말씀으로 지으셨습니다. 어떤 동물은 양식으로 사용하도록, 어떤 동물은 사람을 섬기라고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하시는 일의 목격자가 되고, 감사드리며 해석하는 자가 되도록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사람은 하느님과 그분이 하시는 일을 보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말 못하는 짐승처럼 죽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사람은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누구도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느님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원하신 모든 것을 무에서 창조하셨듯이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행하십니다.

48. 하늘의 존재는 불멸하며 그들 안에는 완전한 선이 존재하지만, 지상의 존재는 자신 가운데 있는 자의적인 악으로 죽게 됩니다. 분별력이 없는 자 속에 있는 악은 게으름과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 배가 됩니다.

49. 죽음은 죽음을 이해하는 이들에게는 영생이지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한 자들에게는 말 그대로 죽음입니다. 이 죽음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의 멸망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것은 영혼에게 끔찍한 일입니다.

50. 죄는 물질적인 것 속에서 자신의 발판을 찾고 자신의 거처를 몸에서 찾습니다. 지혜로운 영혼은 이것을 알기 때문에 물질적인 것의 짐을 벗어버립니다. 그리고 이 짐에서 벗어난 후에는 모든 일에서 하느님을 인정하면서 마치 적이나 반대편을 믿지 못하여 주시하듯 자기 몸을 주시합니다. 그렇게 악한 정욕과 물질을 이긴 영혼은 하느님에게서 면류관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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