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안토니우스의 가르침

2. 교훈

by 별지킴이

51. 죄는 영혼에 의해 인지되고 나면 심한 악취가 나는 짐승처럼 영혼의 미움을 받습니다. 그러나 영혼이 미처 인식하지 못하면 죄는 알아채지 못한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자신을 사랑하는 자를 노예로 만들어 포로로 사로잡습니다. 그러면 불행하고 가련한 그 사람은 무엇이 그의 구원에 도움이 되는지도 모른 채, 죄가 자신을 아름답게 해주고 기쁘게 해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52. 정결한 영혼은 그 선함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에 의해 밝고 빛나게 됩니다. 그러면 이성은 선에 대해 생각하고 하느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의지와 행위를 낳습니다. 그러나 영혼이 죄로 인해 더럽혀질 때 하느님께서는 그로부터 돌아서십니다. 더 맞는 표현은 영혼 스스로 자신을 하느님으로부터 분리합니다. 그리고 그의 생각 속으로 들어온 악한 사탄은 영혼 속에 책망받아 마땅한 행위 곧, 간음, 살인, 도둑질, 그리고 이와 유사한 행위를 하도록 악한 생각을 불어 넣습니다.

53. 하느님을 아는 사람은 온갖 복된 생각으로 가득 차 있고 하늘의 것을 갈망하면서 세상의 것을 멸시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러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생각이 없는 많은 사람에 의해 미움을 받을 뿐 아니라 비난도 받습니다. 하느님을 아는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는 악인 것이 자신에게는 선인 것을 알기에 극도의 가난을 기꺼이 견뎌냅니다. 하늘의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믿으며 모든 창조물이 하느님의 의지의 산물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하늘의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이 하느님의 작품이라는 것과 사람의 구원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54. 죄를 범한 자와 무지에 빠진 이는 하느님을 모르며, 그들의 마음은 깨어있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이성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깨어있는 이성으로만 인식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보이지 않지만, 마치 몸에 거하는 영혼처럼 보이는 것 속에서 분명히 나타나십니다. 몸이 영혼 없이 살 수 없듯이, 모든 보이는 것과 존재하는 것은 하느님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55. 사람은 무엇을 위해 지어졌습니까? 하느님이 지으신 피조물을 인식하고, 하느님을 바라보며 자신을 위해 피조물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찬양하기 위함입니다. 사랑으로 하느님께 붙어 있고자 하는 지혜, 곧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자 가운데 있는 지혜는 선한 삶을 통하여 하느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들에게 내려주신 보이지 않는 복입니다.

56. 달콤한 것, 곧 감각적인 만족의 종이 되지 않고 분별력과 정숙함이 몸을 지배하도록 하며, 비록 주신 것이 자기에게 꼭 맞지 않는다 해도 하느님께서 주신 것으로 온전히 만족하는 사람은 자유롭습니다. 영혼과 하느님을 사랑하는 지혜가 서로 일치할 때 몸은 온순해지고 육신대로 행하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영혼은 지혜의 활동을 통해 육체적인 모든 움직임을 소멸시키기 때문입니다.

57.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욕망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정욕에 복종시키게 됩니다. 이 정욕은 영혼으로 들어가 영혼을 불안하게 만들고 점점 더 죄악된 생각과 갈망을 집어넣어 결국은 모든 것이 흡족하지 않으니 더 새롭고 나은 것을 얻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필요 이상으로 긴 옷이 여행자의 걸음을 방해하듯이, 필요 이상의 재산을 갖고자 하는 욕망은 영혼이 수행하고 구원받는 것을 방해합니다.

58. 만일 사람이 어딘가 부자유 속에서 마지못해 있으면 그것은 그에게 감옥이자 형벌입니다. 여러분이 있는 곳에 만족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그러한 상황을 견뎌내는 동안 감사하지 않고 불만을 가진 채 자기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기 자신에게 폭군이 될 것입니다. 폭군이 되는 길은 하나인데 그것은 삶의 축복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59. 무엇이 희고 무엇이 검은지 눈에 보이는 것을 식별하는 시력을 하느님께 받은 것처럼, 어떤 것이 영혼에 유익하고 어떤 것이 영혼에 해로운지 분별하는 이성 역시 하느님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정욕은 분별력을 거부하고 감각적 만족에 대한 집착을 낳아 영혼이 구원받지 못하게 하고 하느님과의 교제에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60. 본성의 법칙을 좇는 것이 죄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나쁜 짓을 범하는 것이 죄입니다. 음식을 먹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감사함과 경건함, 절제 없이 먹는 것은 죄입니다. 단순히 보기만 하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질투심으로 거만하게 혹은 탐욕스럽게 보는 것은 죄입니다. 온유함으로 듣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분노를 품은 채 듣는 것은 죄입니다. 팔이 자선을 베푸느라 수고하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빼앗고 살인하는 것은 죄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자유 의지로 선한 행위 대신 하느님의 의지에 대적하는 행위를 할 때 각각의 지체는 죄를 짓게 됩니다.

61. 만약에 여러분의 모든 일을 하느님께서 보고 계시다는 사실이 의심된다면, 한낱 사람이며 티끌에 불과한 여러분이 마음속으로 여러분이 알고 있는 모든 장소를 동시에 둘러보고 상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십시오. 그렇다면 자기 뜻에 따라 생명을 주시고 먹이시는 하느님께서 겨자씨를 보듯 모든 것을 보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62. 여러분이 자신의 거처에 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 있을 때,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명하여 보내신 천사, 곧 그리스인들이 집의 정령이라고 불렀던 바로 그 천사가 여러분과 함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그는 졸지도 않고 항상 여러분과 함께 있으며 모든 것을 봅니다. 그를 속일 수도 없고 어떤 어두움도 그로부터 여러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천사뿐만 아니라 모든 곳에 계신 하느님을 의식하십시오. 하느님이 계시지 않은 장소나 물질세계는 없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이보다 크시며 자기 손에 모든 것을 쥐고 계시는 분입니다.

63. 만일 군인이 자신에게 식량을 공급해주기 때문에 왕에게 신의를 지킨다면, 우리는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지으신 하느님께 얼마나 더 쉬지 않고 감사하며, 그분을 끊임없이 기쁘게 해드려야 하겠습니까?

64.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선한 삶은 사람이 하느님께 드리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열매입니다. 땅의 열매가 한순간에 익지 않고 시간과 비와 돌봄을 필요로 하듯, 사람의 열매도 그 광채가 나타날 때까지는 수행과 결단과 기다림의 시간과 절제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혹시 여러분이 그 열매로 인해 때때로 누군가에게 경건한 사람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육신에 거하는 동안에는 자기 자신을 믿지 말고, 자신이 하느님을 충분히 기쁘게 해드리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사람이 순전함을 끝까지 간직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65. 사람에게 말보다 더 솔직한 것은 없습니다. 말은 너무나 중요해서 우리는 말로 하느님께 감사하며 경배합니다. 사람은 무익하고 수치스러운 말로 자신의 영혼이 방탕한 것을 나타냅니다. 무지한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나쁜 말을 하고 악한 일을 행하면서 정작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는 자신의 출생을 원망하고, 타인을 탓합니다.

66. 우리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비웃지 않도록 우리가 육신의 병을 고치려고 노력한다면, 이보다 더욱 영혼의 병을 고치기 위해 염려하면서 애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얼굴 앞에서 심판받을 때 수치스럽거나 조롱받지 않도록 말입니다. 우리는 자기 의지를 따라 행할 능력이 있으므로 원한다면 나쁜 행동을 갈망할 때조차도 그렇게 행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며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능력 안에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원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어떤 나쁜 짓을 하라고 우리를 강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성을 다해 하늘에 있는 천사들처럼 하느님께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67. 여러분이 원한다면 여러분은 정욕의 노예가 될 수 있고, 정욕의 굴레 아래 굴복하지 않고 자유롭게 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자율적인 존재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정욕을 이기는 자는 썩지 않을 것으로 보상받을 것입니다. 만일 정욕이 없었다면 미덕도 없고 하느님께서 합당한 자에게 주시는 면류관도 없을 것입니다.

68. 무엇이 자신에게 유익한지 보지 못하는 이들과 무엇이 선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영혼이 눈먼 자들이며 분별력 역시 없는 자들입니다. 어쩔 수 없이 얽매이거나 눈이 먼 사람처럼 앞을 못 보는 일이 없도록 그들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69. 죄를 지은 자에게 분노를 표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그의 행위가 벌 받아 마땅하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의(義) 자체를 위해서 죄지은 자를 진리의 길로 돌이키고, 필요하다면 스스로 혹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벌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분노를 표하거나 화를 내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분노는 정욕에 의해 행하는 것이며 심판과 의를 따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호의적인 이들을 용납해서는 안 되지만, 악한 자들을 벌하는 것도 분노를 일으키는 정욕을 위해서가 아니라 선과 의를 위해 해야 합니다.

70. 오직 영혼이 획득한 것만이 안전하며 빼앗기지 않습니다. 영혼이 획득한 것이란 선하고 경건한 삶이며 선한 행실을 알고 행하는 것입니다. 부는 눈먼 인도자이며 미련한 충고자입니다. 부를 오직 자신의 만족만을 위해 나쁘게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의 죽어가는 영혼을 파멸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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