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안토니우스의 가르침

2. 교훈

by 별지킴이

71. 사람은 불필요한 여분의 것을 얻을 필요가 없으며 또 얻지도 말아야 합니다. 본질상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이 썩어질 것이고, 빼앗기고 잃어버리고 파괴된다는 것을 확실히 믿는다면, 그러한 일이 실제로 여러분에게 일어났을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72. 육신의 병은 썩어질 물질적인 몸의 당연한 특징이라는 것을 아십시오. 그러므로 몸이 병들었을 때 선을 배운 영혼이라면 왜 몸을 만드셨냐고 하느님을 원망하지 말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담대함과 인내를 보여야 합니다.

73. 올림픽 경기에 임하는 사람은 한 사람이나 두 사람 혹은 또 다른 사람을 이겼을 때가 아니라 그와 함께 경기에 참여한 모든 사람을 이겼을 때 상을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에게서 상을 받기 원하는 모든 사람은 육신의 정욕뿐 아니라 욕심, 남의 것에 대한 탐심, 질투, 음욕, 허세, 비난, 죽음의 위험 및 그와 유사한 유혹을 받을 때도 자신의 영혼을 순결하게 지켜야 합니다.

74. 다른 사람에게 칭찬받기 위해 선하고 경건한 삶을 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영혼의 구원을 위해 선을 행하는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눈앞에 매일 죽음이 보일 것입니다. 모든 인간적인 것은 믿을만하지 않습니다.

75. 정결하게 사는 것은 우리의 권한 아래 있지만, 부자가 되는 것은 우리의 권한 아래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에게 가질 권한이 없는 순간적으로 반짝거리는 환영과 같은 부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우리의 영혼이 죄를 지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아! 부를 추구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게 행하는지요? 모든 정욕 위에 탐식과 세상의 복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정욕이 있듯이, 모든 미덕 위에 온유와 겸손이 있는 것을 우리는 실제로 모르고 있습니다.

76. 분별이 있는 사람은 우리가 이생에서는 그리 크지 않은 일시적인 수고를 하지만, 죽음 이후에는 가장 큰 위로와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임을 끊임없이 기억해야 합니다. 정욕과 싸우면서 하느님에게서 상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혹 넘어지더라도 자신에게 실망하지 말고 낙심하거나 넘어진 채로 머물러 있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다시 싸울 수 있도록 쓰러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마지막 호흡이 다할 때까지 상을 받도록 애써야 합니다. 육체의 수고는 미덕을 행하는 이들의 유익한 도구이며 영혼을 구원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77. 용감한 이들이나 전투에 임하는 이들이 삶의 안락함을 잃어버리는 것은 그들을 하느님에게서 상을 받기에 합당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이생에서 삶의 안락함을 위한 자신의 모든 수단과 방법을 없애야 합니다. 왜냐하면, 죽은 자는 이미 세상적인 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78. 지혜로운 영혼과 수행하는 자는 슬픈 일이 일어났을 때 소심함 때문에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화려함에 빠진 영혼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벗어납니다. 영혼의 미덕은 우리를 영원한 축복을 받기에 합당한 자로 만들지만, 사람이 자의적으로 짓는 죄는 영원한 고통의 원인이 됩니다.

79. 지혜로운 사람은 분별력이 있는 피조물의 육체적인 감각을 통해서 들어오는 영혼의 정욕에 맞서 싸웁니다. 육체적 감각에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모두 다섯 개의 감각이 있습니다. 가련한 영혼은 이 다섯 개의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네 개의 정욕 곧, 허세, 쾌락에 대한 갈망, 분노, 두려움에 굴복하여 포로가 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지혜롭고 분별력 있게 잘 싸워서 정욕을 극복하여 이길 때, 그는 더 이상 싸우지 않으며 마음이 평안하게 되어 승리자로서 하느님께 상을 받게 됩니다.

80. 여관에 머무는 사람 중에 어떤 이는 이부자리를 받지만, 어떤 이는 이부자리를 받지 못하고 마루에 누워서 곤히 잠을 잡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면 모두 똑같이 이부자리를 남겨두고 자신의 소지품만을 가지고 여관을 나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인생길을 가는 이들, 곧 죽을 운명을 지닌 채 살아가는 이들은 영광과 부 가운데 살아간다 해도 삶의 쾌락과 부 그 어느 것도 가지지 못한 채 여관을 나가듯 이생을 떠나가게 됩니다. 선한 행위이든, 악한 행위이든 이생에서 그들이 행한 행위만을 가지고 떠나게 됩니다.

81. 여러분이 큰 권력을 가지게 되거든 그 누구도 죽음으로 위협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자신도 죽음에 처하게 될 것이며, 모든 영혼은 마치 마지막 옷을 벗듯이 자기 몸을 벗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명심하고 온유하며, 선한 일을 행하며, 항상 하느님께 감사하십시오. 자비하지 못한 사람은 그 안에 미덕이 없습니다.

82. 죽음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또한 피할 방법도 없습니다. 이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려는 생각으로 선을 행하기 위해 자신을 단련하기 때문에 탄식과 두려움과 눈물 없이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는 한편으로 죽음은 피할 수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 죽음이 이생을 살며 겪게 되는 악으로부터 자신을 건져준다고 생각합니다.

83. 선하고 경건한 삶을 잊어버린 사람, 올바르고 경건한 가르침에 따라 살지 않고 유식한 체하는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가 분별력이 부족하고 마음과 이성이 눈먼 자라고 생각하며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는 선 대신 악을 받아들이면서 무지로 인해 멸망합니다. 그의 영혼은 저주받고 미련하여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84. 경건과 선한 삶에 대해 아무하고나 대화하지 마십시오. 질투심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분별력 없는 이들 앞에서 그러한 대화를 하는 것이 우스꽝스러워 보일 것 같기 때문입니다. 서로 비슷한 사람끼리는 공감하지만, 그런 대화를 귀담아들으려 하는 자는 그리 많지 않으며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매우 드뭅니다. 그러므로 차라리 말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사람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께서 이것을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85. 영혼은 몸을 불쌍히 여기지만, 몸은 영혼을 동정하지 않습니다. 몸이 상처를 입을 때 몸과 함께 영혼도 고통을 받으며, 몸이 튼튼하고 건강할 때 몸과 함께 영혼의 감정도 함께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영혼이 깊은 생각을 할 때 몸은 영혼과 함께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 자체로 머물면서 뒤에 남습니다. 깊이 생각하는 것, 곧, 회개는 영혼의 아픈 감정입니다. 무지, 자만, 불신, 탐욕, 미움, 분노, 비겁, 허세, 영광을 사랑함, 불화, 선에 대한 무감각, 그리고 이와 유사한 죄들을 영혼이 저지르듯이, 회개도 영혼으로 인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86. 하느님에 대해 생각하면서 경건하고 질투하지 말고, 선하고 순결하며 온유하십시오. 힘이 있어도 너그러우며 친절하고 논쟁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행하며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은 빼앗기지 않을 영혼의 부요함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무도 판단하지 말고 그 누구에 대해서도 그가 좋다거나 죄를 지었다거나 말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자신의 나쁜 행위를 살피고 자신의 삶이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다른 이들의 행위가 좋지 않다고 한들 도대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입니까?

87. 참된 사람은 경건해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자신에게 낯선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경건한 사람입니다. 사람에게는 모든 피조물이 낯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형상을 가졌으니 모든 것에 마음을 두지 마십시오. 올바르고 경건하게 살 때 사람은 하느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온갖 정욕을 버리지 않으면서 하느님의 형상을 지니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지혜가 있는 사람은 영혼의 구원에 도움이 되는 모든 일과 자신에게 요구되는 모든 경건에 능숙합니다. 경건한 사람은 다른 이를 비난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죄를 짓는 일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구원받고 있는 영혼의 표시입니다.

88. 찰나적인 재물을 얻으려고 힘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은 죽음이나 자기 영혼의 멸망에 대해서는 잊은 채, 악한 정욕을 사랑하고 정작 자신이 구원받는 일에 대해서는 망각하고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이 불쌍한 사람은 죽을 때에 자신의 악함 때문에 겪게 될 일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89. 하느님은 악에 대해 아무런 잘못이 없으십니다. 하느님은 사람에게 이성과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자율성을 주셨는데, 사람의 태만과 안일함으로 인해 악한 정욕이 생겨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일에 아무런 잘못이 없으십니다. 대부분의 사람처럼 사탄의 의지 역시 자유로운 선택으로 악하게 된 것입니다.

90. 경건하게 사는 사람은 악이 영혼 안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영혼 속에 악이 없을 때 영혼은 위험하지도 해롭지도 않습니다. 악한 사탄도 그런 영혼에게는 권세를 부릴 기회를 갖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이 악을 피하도록 도우시므로 그들은 하느님을 닮은 자로서 해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받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칭찬하면 그는 자신을 칭찬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욕할 때는 비방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지 않고 그들이 자신을 비난한다 하여 분노하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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