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엄마라고?
엄마라고?
선유의 세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입양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연기가 공중으로 사라지듯 엷어졌다. 선유의 눈길이 교복 입은 여자 청소년들에게 자꾸 머물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장 두려웠던 건 아이의 사춘기였다. 다른 아이들도 힘든 사춘기를 입양아는 어떻게 겪어낼까. 아이가 정체성 혼란으로 심각한 일탈 행동을 한다면 과연 대처할 수 있을까. 가출하거나 비행 청소년이 되면? 진짜 부모가 아니라고 반항하면? 그래서 왜 입양했냐고 원망하고 따진다면?
하지만 이제 사춘기 또래 여자아이들을 보고 7, 8년 후의 희야 모습을 상상하면서 선유의 얼굴에는 절로 뿌듯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지금은 시골스러운 정감 있는 작은 소녀가 저 나이가 되면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까. 선유는 마치 피그말리온처럼 희야를 자신만의 작품으로 키워낼 생각에 설레었다. ‘희야의 표정에 드리워진 그늘과 그리움이 걷히고 밝고 활기찬 아이가 되게 키울 거야’. 두려움 대신 자신감이 가득 차올랐다. 자신이 환상 속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며칠 후 임 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예의 그 활달한 목소리로.
“희야가 어떻던가요?”
“정이 가는 아이였어요. 계속 만나보고 싶어요.”
“그럼, 이렇게 해보세요. 5월 초에 홀트 입양 가족 캠프가 있는데 거기 희야
데리고 참석해 보세요.”
선유의 가슴이 덜컥했다. 이제 막 만났는데 캠프라니. 임 소장이 주는 임무는 매번 버거웠다.
“희야가 가려고 할까요?”
“일단 입양에 대해서는 말하지 마시고, 그냥 재미있는 캠프가 있으니 같이 가자고 설득해 보세요.”
“네...”
선유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나를 또 시험해 보시려는 거야. 어떻게 이야기하지? 희야가 부담스러워하면 어떡하지? 수줍음이 많은 아이가 낯선 곳에 가려고 할까.’ 선유는 희야가 싫다고 하면 억지로 데려가지는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시간이 책장을 넘기듯 순식간에 지나갔다. 두 주 후 약속한 토요일이 다가왔다. 그새 벚꽃잎이 투명한 비누 조각처럼 살포시 땅을 덮었다. 4월이 끝나가고 있었다.
희야는 홈플러스에 간다는 기대에 들떠서 아침부터 준비를 마치고 오전 내내 마당에서 시간을 보냈다. 준비라고는 옷을 입은 것뿐이었지만. 호진과 선유가 정문에 나타나자 희야는 하늘색 벽 건물 앞에서 얌전히 기다렸다. 큰엄마와 희정 이모가 희야의 양쪽에 서서 무슨 얘기인지 나누고 있었다. 선유가 처음 희야를 보았을 때 손을 잡고 있었던 진주 언니, 선유에게 네 잎 클로버를 선물로 주었던 영은 언니도 옆에 서 있었다. 진주 언니와 영은 언니가 “나도 같이 가면 안 돼, 희야야? 네? 큰엄마?”라고 물으며 희야와 큰엄마를 연달아 사정하듯이 쳐다보았다. 큰엄마가 “오늘은 희야만 외출하는 거라 안 돼.”라고 말하자 언니들은 뾰로통하니 입을 삐죽 내밀었지만, 이내 체념하고 다물었다. 이곳 아이들은 모두 외출하는 기회를 손꼽아 기다리고 누군가 외출하면 부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그건 희야도 마찬가지였다. 그날은 희야가 그 특권을 차지한 날이었다. 언니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희야, 머리 잘랐구나. 선생님이 잘라주셨어?”
희야를 보자마자 선유가 급히 다가오며 물었다. 그 사이 희정 이모가 희야의 긴 머리를 단발로 잘라주었다. 희야는 엷은 미소를 짓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첫날과 달리 선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머리를 숙였다. 자기를 위해 후원자가 다시 찾아왔다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았다.
“앞머리가 더 짧아졌네.”
희야는 선유가 자기 앞머리에 신경 쓰는 게 이상했다. 이런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어 어색하기만 했다. 몸이 뻣뻣이 굳어지는 것만 같았다. 희야는 호진과 선유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두 주 동안 그들보다는 홈플러스에 갈 생각에만 부풀어 있었다.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소나무도 추위를 타는 듯 잎새를 부르르 떨었다. 더 작은 나무는 상점 앞에서 춤을 추는 풍선 인형처럼 몸을 구부렸다 폈다. 희야는 회색 운동복 바지에 무대 의상처럼 번쩍거리는 금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점퍼는 아주 얇은 천으로 된 것이었지만 추위를 잘 타지 않는 희야는 무슨 옷을 입든 개의치 않았다.
“희야야, 춥지 않아? 얼굴이 빨갛잖아.”
선유는 살짝 이마를 찡그렸다. 희야는 선유가 ‘다른 옷을 입혀달라고 할까.’ 잠깐 고민하는 걸 알 턱이 없었다. 머리고 옷이고 빨리 홈플러스에 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호진과 선유는 큰엄마와 몇 마디 인사를 나눈 후 희야의 작고 통통한 손을 감싸 안았다.
“손이 따뜻하구나.”
선유가 말했다. 선유와 호진의 손에 양쪽 손이 붙들린 채 희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문을 씩씩하게 나섰다.
“차가 없어서 미안해, 희야야.”
희야는 후원자가 미안하다고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고 그게 중요하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택시를 타기 위해 논길을 걸어 큰 도로까지 나가면서 선유는 여러번 “춥지 않아?”라고 다시 물었다. 희야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희야는 한겨울에도 바닥이 차가운 방에서 양말을 신지 않고 지냈다.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낯선 두 어른의 손을 잡고 걸어가면서 ‘홈플러스에 가면 뭘 살까?’ 오로지 그 생각만 했다. 집안에만 갇혀 있다가 산책을 나온 강아지처럼 흥분해 조급해졌다. 금색 점퍼가 바람에 펄럭거리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바람이 차가워서인지 몰라도 선유의 눈에 물기가 고이는 걸 희야는 눈치채지 못했다.
택시는 금방 오지 않았다. 선유는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도로에서 왼쪽, 오른쪽으로 연신 고개를 돌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희야는 “언제 차가 와요?”라고 여러 차례 물었다. 오늘 홈플러스에 갈 수는 있는 걸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흰색 택시 한 대가 반대편으로 지나갈 때, 호진은 손을 크게 휘저었고 택시는 중앙선을 넘어서 멈춰 섰다. 선유는 빠른 손놀림으로 희야를 뒷좌석에 태우고 차에 올랐다.
택시 안에서 희야는 흥분에 휩싸였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는 선유의 질문을 받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마구 떠들어댔다.
“진주 언니가 이가 막 흔들렸어요. 그래서 병원에 갔다 왔어요. 이빨 빠진 게 너무 웃겨요. 봤어요?”
“영은 언니가 다연이랑 또 싸웠어요. 다연이가 영은 언니 얼굴을 할퀴었어요.”
희야는 다연이가 오른손으로 할퀴는 모습을 연기하듯이 보여줬다. 생생하게 그 장면을 그려내고 싶었다.
“다연이가? 언니한테?”
다연이는 희야와 동갑인 키가 작고 깡마른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두 살이나 많은 영은 언니와 싸워서 지지 않았다는 말에 선유는 눈을 크게 떴다.
“희야도 다연이랑 언니들이랑 싸워?”
“아니에요.”
희야는 몸을 앞으로 내밀면서 앞을 응시하고 입을 다물었다. 처음으로 후원자 앞에서 말을 많이 했다. 흥분하면 가끔 그러곤 했다. 하지만 가끔은 언니들한테 덤비기도 한다는 걸 후원자에게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이십 분가량 달려 도착한 홈플러스 정문을 들어서자, 희야는 선유의 손을 살며시 뿌리치고 혼자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빨라지며 마음이 몸보다 먼저 달려가는 것 같았다. ‘조급했나 봐.’ 희야의 작고 여린 등이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해 보였다. 사람들이 평범하지 않은 옷을 입은 희야와 그 뒤를 따라가는 두 어른을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걸 아랑곳하지 않았다. 선유는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우리를 부모라고 생각할 텐데 왜 저렇게 입혔냐고 생각하겠지.’ 선유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다음엔 옷차림에 더 신경 써야겠다.’
희야는 무빙워크에 올라타서는 이층의 장난감 진열대로 직진했다. 호진과 선유는 그저 뒤를 따라가며 희야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런데 희야의 무릎이 마주 닿아야 할 자리에 길게 휜 오자 모양이 파여 있는 게 선유의 눈에 띄었다. 왜 이제야 눈치챘을까.
“희야 다리가 좀 심하게 오자야. 나중에 교정해야겠다. 근데 신기하네. 당신도 약간 오자잖아.”
선유는 희야에게 들리지 않도록 낮은 목소리로 호진에게 말했다.
“내가?”
호진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몰랐어? 당신, 어머니, 고모 다 다리가 오자인 거.”
“난 몰랐는데.”
호진은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희야의 다리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선유는 소영이의 사시 눈이 생각났다. ‘사시건, 음치건, 다리가 오자건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특별히 아픈 데가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이야. 크면서 나아질 테니.’ 선유는 입양을 고민하면서 장애나 선천적인 질병이 있는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아이를 입양하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이들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냐.’ 입양은 평범하지만, 약간은 무모한 용기만이 필요한 도전이었다.
선유는 거침없이 걸어가는 희야의 뒷모습을 보면서 ‘소극적인 것 같지만, 얼마나 힘찬 아이인가.’라고 생각했다. ‘에너지가 넘쳐나 보여. 그것도 맘에 들어.’ 선유는 아직 희야 안에 담겨 있는 에너지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희야는 진열대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망설이는 듯 손을 뻗었다가 거두기를 반복했다. 장난감이 너무 많아 고르기 어려운 눈치였다. 선유는 희야가 물건을 고를 때까지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희야가 결국 뭔가를 집어 들었다.
“뭘 골랐어?”
희야는 쑥스러운 듯 고른 물건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머리띠와 목걸이, 팔찌를 조립할 수 있는 알록달록한 구슬이 들어있는 장난감 세트.
“요즘 이거 유행이야?”
희야는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또 사고 싶은 거 있어?”
선유가 물었다.
“아이들 과자요.”
희야의 말에 선유는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음에는 꼭 챙겨야지.’ 희야의 마음이 기특했다. 소망원에서는 외출을 나가는 아이가 반드시 먹을 것을 사 가는 게 암묵적인 약속이라는 걸 선유는 몰랐다. 그 덕분에 모든 아이의 관심을 받고, 우쭐댈 수 있다는 것도, 희야가 그 상상에 설레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얼마 전 다연이 엄마가 다연이에게 장난감 화장품 세트를 생일 선물로 보냈는데, 다연이가 얼마나 우쭐댔던지. 희야는 며칠 동안 다연이가 절대 장난감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통에 안달이 났었다. 함께 먹으라고 다연이 엄마가 피자를 주문해 보냈는데, 다연이는 마치 여왕이라도 된 것처럼 아이들 앞에서 으스댔다. 이 모든 사실은 나중에 희야가 이야기해줘서야 알게 되었다.
희야는 과자를 파는 진열대에 가서는 빠른 손놀림으로 척척 과자와 사탕을 집어 들었다.
“젤리도 사요. 언니들이 좋아해요.”
“응, 많이 골라.”
희야의 작은 손이 가득 차 더 이상 물건을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앞에 가던 희야가 갑자기 고개를 뒤로 휙 돌렸다. 그리고 선유에게 방금 산 과자와 사탕을 불쑥 내밀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엄마, 이거 들어.”
선유는 귀를 의심했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꿈결에서처럼 작은 손이 눈앞에 내밀어져 있었다. 순간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엄마라고? 그리고 반말까지.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아?’ 선유는 터질듯한 가슴을 진정시키며 얼떨결에 과자를 받아 들고는 호진에게 눈길을 보냈다.
“당신 들었어? 나 보고 엄마래.”
호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영문을 모르기는 호진도 마찬가지였다. 선유는 기분이 묘했다. 갑자기 몸이 공중으로 둥실 떠오르는 것 같았다. 당황스럽고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지운이가 엄마라고 불렀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벌써 희야의 엄마가 된 듯 뿌듯하고 흐뭇한 기분이 온몸에 소용돌이쳤다. 정작 희야는 그 말을 하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당당한 걸음으로 저만치 앞장서서 걸었다. 나중에 선유가 이날의 일을 물어보았을 때 희야의 기억은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그 말은 선유에게 꿈처럼, 환상처럼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