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지는 아이

12장 입양이 뭔지 알아?

by 별지킴이


입양이 뭔지 알아?


‘이제 캠프랑 입양에 대해 말해야 하는데’. 빨리 선물을 열어보고 싶어 봉투를 만지작거리는 희야를 내려다보는 선유의 마음은 착잡했다. 임 소장은 입양 얘기를 하지 말라고 했지만, 국장은 달랐다. 조심스럽게 입양이 뭔지 설명해 보라고 권했다. 선유는 국장의 말을 따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희야의 반응을 빨리 확인하고 싶었다. 희야를 잘 아는 건 국장이니까 더 신뢰가 갔다.

“희야야, 아이스크림 먹을까?”

선유의 말에 희야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스크림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방금 ‘엄마’라고 불렀던 걸 잊어버렸나 봐. 다시 공손한 존댓말로 돌아가는 걸 보니.

아이스크림을 파는 매장은 구석에 자리해 있었다.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도 갖춰있어서 대화하기 딱 좋은 장소라고 선유는 생각했다.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주문해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희야는 초코아이스크림, 호진은 딸기, 선유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희야는 아이스크림을 받자마자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이스크림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온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이야.’ 잠시 희야를 바라보는 동안 침묵 속에 긴장이 감돌았다. 어떤 회담도 이처럼 난감하지는 않으리라. 어떻게 시작하지?

“희야야, 아줌마가 할 얘기가 있는데 들을래?”

희야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선유는 에두르지 않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에라, 모르겠다.

“희야...‘입양’이라는 말 들어봤어?”

‘입양’이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 선유는 그 단어가 마치 사전에 없기라도 하듯 낯설게만 느껴졌다. 희야는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그럴 테지...

“처음 들어보는구나...근데 아까 희야가 아줌마보고 엄마라고 불렀지? 희야는 우리가 희야 엄마, 아빠가 됐으면 좋겠어?”

침이 꼴깍 넘어갔다. 싫다고 하면 어떡하지. 일 초 사이 까마귀 떼같이 무수한 상념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당연히 싫다고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희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정말? 이렇게 쉽게?’ 선유는 믿을 수가 없었다. 선물과 아이스크림이 마법을 부린 걸까? 슬쩍 호진 쪽을 쳐다보니 호진도 어깨를 으쓱하며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선유는 어안이 벙벙해서 무슨 말을 이어야 할지 잠시 숨을 골랐다.

“희야야, 아줌마랑 아저씨는 희야 엄마, 아빠가 되고 싶어서 찾아왔어. 아줌마가 희야를 낳은 건 아니지만, 우리는 가족이 돼서 함께 살 수 있어. 그걸 입양이라고 해. 무슨 말인지 알겠니?”

희야는 또 끄덕였다. 정말 알아듣는 걸까? 선유는 희야의 마음을 확인해 볼 도리가 없었다. 이 이상 더 복잡하게 설명해서는 안 된다는 직감만 들었다. 희야에게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는 걸 선유는 아직 몰랐다. 일곱 살이면 당연히 가족이 뭔지 알 거라 여겼다. 입양만이 어려운 말이라고 생각했을 뿐. 그런데 희야가 정말 이해한 걸까.

“그럼, 희야는 우리가 가족이 돼서 같이 살면 좋겠어?”

다시 질문해도 역시 끄덕끄덕했다. ‘신기해. 고작 두 번째 만남에 마음이 열리다니.’ 선유는 감격에 겨워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입양이 쉬울지도 몰라. 오늘은 이 정도로 충분해.’ 기차처럼 마음은 전속력으로 앞으로 내달렸다. 벌써 세 사람이 가족이 되어 함께 웃고 떠드는 모습이 상상 속에 펼쳐졌다. 선유의 마음에 마법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희야의 마음에는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희야는 가끔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초연 언니 엄마처럼 예쁜 휴대폰도 사 주고 전화도 자주 하고 간식도 시켜주는 그런 엄마. 그러면 언니처럼 얼굴이 반짝거리고 아이들 앞에서 우쭐댈 수도 있을 거야. ‘내 엄마는 언제 올까? 왜 안 올까?’ 희야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마를 늘 기다렸다. 후원자가 가족 이야기를 꺼냈을 때, 희야는 엄마, 아빠가 생긴다는 게 좋았다. 그러면 좋은 일들이 생기겠지. 갖고 싶었던 장난감을 마음껏 사고 맛있는 간식도 매일 먹을 수 있겠지. 그러면 아이들이 부러워할 거야. 그 정도만 생각했다. 입양이라는 단어는 어려워서 듣자마자 잊어 버렸다. 소망원을 떠나야 한다는 것, 친구들, 언니들, 이모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선유가 희야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아줌마, 아저씨랑 캠프에 갈래? 같이 밥도 먹고 잠도 자고 놀기도 하는 데야. 거기 가면 친구들이 많아.”

“네.”

희야는 짙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캠프가 뭔지 처음 들어보았지만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기분이 좋아서 뭐든 좋다는 말이 나왔다.

“그럼 두 주 있다가 같이 가는 거야. 전날에 아줌마, 아저씨 집에 와서 하루 자고 다음 날 캠프에 갈 거야. 괜찮아?”

희야는 또 끄덕거렸다. 선유는 두 주 후가 5월 11일이라고 알려줬지만, 그 말은 희야의 귀에 닿지 않았다. 그저 빨리 소망원으로 돌아가 아이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소망원 마당에서 국장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희야야!”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에 희야는 과자가 든 큰 봉투를 품에 안고 쏜살같이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손님이 인사를 하고 떠난 후 선유는 홈플러스에서 있었던 일을 국장에게 그대로 전해주었다. 안경 너머로 국장님의 눈이 동그래졌다.

“정말 희야가 엄마라고 했어요? 어머나,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희야가 웬일일까?”

국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희야가 지금껏 엄마라고 부른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작년에 입양하려던 부부에게도 ‘엄마’, ‘아빠’ 소리를 끝까지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선유는 절로 어깨가 으쓱해졌다. ‘거봐, 나는 아이 마음을 얻을 수 있다니까.’ 한편으로는 누구도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던 희야 마음은 뭐였을까 싶어 먹먹해졌다. ‘정말 희야가 나를 엄마로 선택할 거라고 믿어도 되는 될까?’

“두 주 후 캠프에 데려가신다고요?”

놀라움이 지나가자 국장이 물었다.

“네. 목요일에 집으로 데려갔다가 토요일에 다시 데려올게요. 별일 없을지 걱정이네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해보세요. 희야가 마음을 연 것 같네요.”

“그럴까요?”

“네. 저도 놀랐어요. 희야가 그렇게 쉽게 간다고 할 줄 몰랐거든요.”

“다행이네요. 그런데 저...그 지운이 있잖아요.”

선유는 그날 내내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지운이요?”

국장은 갑자기 나온 지운이의 이름에 뜻밖이라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지운이는 입양 보낼 생각이 없으신가요?”

“지운이도 좋은 가정 있으면 입양 보내고 싶죠. 몇 번 시도했는데 잘 안되네요.”

“지운이한테도 관심이 가서요. 희야랑 같이 지운이도 사귀어 볼 수 없을까요?”

이 말을 하면서 선유는 가슴이 오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뭐라고 할까. 국장은 다시 한번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선유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저희는 한 가정에 두 아이를 동시에 진행하지는 않습니다. 한 애 입양하는 것도 얼마나 큰일인데요. 만약 관심이 있으시면 희야 먼저 입양하시고 적응한 후에 다시 생각하시는 게 나아요.”

“네...”

선유는 딱 부러진 국장의 대답에 속이 시원해졌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이 얼마나 들떠 있었고 비현실적이었는지 훤히 깨달았다.

“희야만 입양하는 게 마음에 걸려서 부담감 같은 것에 눌려 있었나 봐.”

돌아오는 길에 선유는 호진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지금은 희야에게 집중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지운이를 입양할 가정이 나타나면 좋겠는데.”

선유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지운이를 입양할 부부를 상상해 보았지만,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말했잖아.”

호진은 당연하다는 듯 말하면서도 내심 안심하는 듯했다. 국장이 “한번 해보세요.”라고 대답했더라면 선유는 당장 두 아이를 입양하겠다고 나섰을지도 몰랐다.

몇 주 후 소망원을 찾아갔을 때 지운이가 보이지 않았다. 펭귄 방 선생님이 말하기를 위탁 가정에서 데려갔다고 했다. 선유의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졌다. 그 위탁 가정에서 지운이를 입양했으면 좋겠다. 여러 위탁 가정을 전전하거나 다른 보육원으로 가는 건 지운이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그 후 지운이 소식은 들을 길이 없었다. 위탁 가정으로 간 아이가 소망원으로 돌아온 적은 없었다고 했다. ‘엄마’라고 처음 불러 준 지운이의 아기 같은 목소리와 왕방울 눈이 선유의 기억에 선명한 흔적으로 남았다.

선유, 호진이 밖에서 국장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희야는 과자와 젤리를 오리방, 펭귄방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희야 앞에 모여들어 목을 빼고 기다리는 아이들 앞에서 희야는 예상했던 대로 의기양양해졌다. 영은 언니는 “와, 목걸이 세트 예쁘다! 희야야, 나도 한번 해보면 안 돼?”라며 희야에게 바짝 달라붙었다. 희야는 이마에 주름을 살짝 잡으며 고개를 돌리고 물건을 보관하는 상자에 목걸이 세트를 깊숙이 숨겼다. 며칠 뒤 그것이 오리방 언니들 차지가 되어 버릴 게 뻔했지만.

선유, 호진과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 희야는 손을 흔들고 몸을 홱 돌려 쪼르르 언니들을 따라 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몇 시간 전에 선유를 엄마라고 했던 일, 입양 얘기를 나눴던 일은 꿈속이었던 듯 희미해졌다. 서운함이 선유의 표정에 잠시 그늘을 드리웠지만, 희야는 알아차릴 수 없었다. 희야는 몹시도 피곤했다. 내일 목걸이와 반지를 만들 꿈을 꾸면서 다른 아이들보다 먼저 이불에 몸을 파묻고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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