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집에 가고 싶어
집에 가고 싶어
이즈음 선유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생각과 감정이 흩어져 버리지 않도록 짧은 글로라도 붙잡아 두고 싶었다. 희야와 함께한 순간들이 너무나 소중해 기억 속에 새겨두고 싶었다. 어느 날, 캠프를 앞두고 복잡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 선유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며칠을 희야와 함께 지내야 한다. 소영이가 떠올랐다. 집에서 지내지 않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처음부터 딱 달라붙었던 소영이와 희야는 전혀 다르다. 마치 서로 멀리 떨어진 행성에서 온 아이들 같았다. 소영이보다 희야와 지내는 일이 더 자신이 없다. 캠프는 프로그램대로 진행될 테니 그나마 걱정이 덜하다. 그래도 하루는 집에서 재워야 한다. 혹시 소영이처럼 자다가 깨서 울면 어떡하지. 데려다 줄 수도 없을 텐데 걱정이다. 수줍음이 심한 아이라 캠프에서 낯선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 위축될 수도 있다. 우리 부부가 희야에게 든든하게 느껴질까. 도중에 소망원에 가고 싶다고 하면 난감할 것이다. 부디 잘 지내 주기를...
희야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희야와 며칠 지낼 생각을 하니 설레고 기대된다. 희야 옆에서 같이 잠을 자다니. 희야가 잠든 얼굴을 볼 수 있다니. 과연 희야는 어떻게 행동할까. 며칠 함께 지내면 우리에게 조금은 더 친숙함을 느낄까. 왠지 이번 캠프가 입양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희야를 입양하는 것이 잘하는 건지 확실히 알 수 있게 해주세요. 우리가 이 아이의 부모가 되는 게 맞는 걸까요?
두 주 후 목요일이었다. 희야가 호진의 손을 잡고 동네의 홈플러스에 들어서자, 얼굴 가득 웃음을 담은 선유가 손을 흔들었다. 희야는 수줍게 미소를 짓고는 다시 표정을 굳혔다.
“희야, 아저씨랑 오는 거 괜찮았어?”
호진은 퇴근 후 소망원에 들러 희야를 데리고 기차를 타고 오는 길이었다. 버스에 기차, 또 버스. 복잡한 여정이었다. 희야는 이제는 습관처럼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기차 처음 타봤어?”
“네.”
희야의 목소리는 낮고 흐릿했다. 지쳤을 법도 했다. ‘차가 없으니, 아이가 고생이야. 앞으로 계속 그럴 텐데 걱정이네.’ 차 문제는 입양이 확정될 때까지는 해결해야만 했다.
“데리고 올 때 별일 없었어?”
선유가 호진 쪽으로 다가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괜찮던데. 잘 따라왔어.”
“서로 얘기는 안 했어?”
“별로”
큰 문제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호진과 둘이 오느라 얼마나 어색했을까.’ 아무 싫은 내색 없이 따라온 희야가 기특하기만 했다.
그 사이 희야의 머리가 자라 어깨를 살짝 덮고 있었다. ‘단발이 잘 어울린다.’ 선유는 빙그레 미소 지으며 생각했다. 벌써 엄마라도 된 듯 희야의 외모에 신경이 쓰이는 게 우스웠다. 선유는 부드러운 감촉이 손가락 사이를 타고 흐르는 희야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사고 싶은 거 있어?”라고 물었다. 희야의 몸이 굳어졌다.
“분홍색 뚜껑 있는 물통이요.”
희야가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희야는 파란 바탕에 빨간색 꽃무늬가 있는 티와 다리에 달라붙는 남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선유는 지난번 희야의 옷차림이 기억나 조심스레 희야를 살펴보았다. 바지는 괜찮은데 상의가 좀 촌스러웠다. ‘하나 사 입혀야겠어.’ 하지만 이층을 몇 번 돌아도 마음에 드는 옷이 없었다. 물통만 사고 다음 날 다시 오기로 했다.
홈플러스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가는 길에 세 사람은 공원으로 들어섰다. 가벼운 어둠이 내리깔렸지만, 공원은 노란 가로등이 밝혀져 어둡지 않았다. 사람들이 빠른 걸음으로 트랙을 돌거나 곳곳에 설치된 운동 기구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놀이터에서 무더기로 모여 술래잡기나 배드민턴, 공놀이하는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로 공원은 활기와 생명력으로 가득했다. 어디선가 옅은 라일락 향기가 날아왔다. 공기는 훈훈했고 살짝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여기 놀이터 좋지? 앞으로 희야가 자주 와서 놀게 될 거야.”
선유는 얼마 후 그곳에서 뛰어다닐 희야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잠시 상념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아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는지 종알거리는 희야 목소리가 들렸었다. 선유는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손을 잡은 희야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선유는 그녀의 키가 작은데도 자기 어깨에도 오지 못하는 희야를 내려다보면서 ‘정말 작은 아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손안에 들어온 희야의 작고 통통하고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손과 작은 체구가 보호해 주고 싶은 본능을 불러일으켰다. 옆에서 말없이 걷던 희야가 고개를 들어 선유를 올려다보았다. 눈에서 뭔가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이번에는 호진이 희야에게 뭔가 말을 걸었다. 희야는 고개를 더 위로 젖혀서 호진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어, 희야 울어?”
호진의 말에 선유는 화들짝 놀라 희야를 자세히 쳐다보았다. 희야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희야야, 왜 그래?”
선유는 희야를 멈춰 세우고 물었다.
“집에...가고 싶어요.”
희야의 목소리가 떨렸다. 쏟아지려는 눈물을 애써 삼키는 듯했다. 선유는 ‘아차’하고 깨달았다. 저녁이 되니 소망원 생각이 날 법했다. ‘희야에게는 거기가 집이니 당연한 일이지. 이 시간에 밖에 나오지 말아야 했어.’ 선유는 속으로 되뇌었다.
“소망원 생각이 나는구나.”
선유는 희야의 등을 토닥거려주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호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없이 뒤에서 따라왔다.
희야는 진한 갈색 가죽 소파에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힘들었다. 거실 창밖은 캄캄했지만, 맞은편 아파트에서 층층이 불빛이 새어 나왔다. 이 시간 소망원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을 것이다. 이곳의 희미한 어둠이 소망원의 깊은 어둠보다 더 낯설고 쓸쓸했다. 지금쯤 아이들은 함께 샤워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깔깔거리며 서로 비누를 묻혀 주고 샴푸를 손에 짜서 거품을 내 장난을 칠 것이다. 그렇게 놀다가 휘리릭 몸에 물을 뿌리고 나서 한 명씩 이모 앞으로 가면, 이모는 커다란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주고 머리를 말려주겠지.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저절로 몸에서 물기가 마르기도 할 것이다. 희야는 드라이어의 뜨거운 바람은 싫었지만, 이모의 손이 머리칼에 닿는 촉감이 좋았다. 누군가 안으려고 하면 몸을 움츠리곤 했지만, 머리를 쓰다듬거나 만져주면 기분이 좋아졌다.
희야의 귀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런데 지금 여기는 어디지. 희야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늘 함께 있던 아이들은 아무도 없고 후원자 어른 둘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깥 어둠보다 더 짙은 어둠이 희야의 마음 바닥에 내려앉았다. 얼굴 근육이 굳어지고 입이 꾹 다물어졌다. 희야는 고개를 푹 수그렸다.
선유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희야의 기분이 나아질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언니들이 보고 싶어?”
무심코 던진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희야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떨어졌다.
“아이들이 보고 싶어요...집에 데려다주세요.”
희야는 간신히 참아왔던 울음을 토해내며 말했다. 걱정했던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선유는 희야가 가엾었다. 당장이라도 소망원에 데려다주고 싶었다. ‘낯선 어른들과 처음 하룻밤을 보내려니 얼마나 어색하고 불안하겠어? 캠프는 무슨 캠프! 데려다줘야지.’ 그런데 이 시간에 어떻게? 속이 탔다.
“캠프에 안 가요. 여기 오지도 않을 거예요.”
희야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는 이런 낯설고 허전한 기분을 느끼지 않겠다고 결심한 듯이. 선유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제 집에 오지도 않겠다고? 큰일이었다.
“그래, 그래. 알았어, 희야야. 네가 힘들면 데려다줄게...그런데 지금은 시간이 너무 늦었어. 밖이 깜깜하지? 기차도 없어. 오늘 하루만 자고 내일 아침에 일찍 데려다줄게. 어때?”
그 말에 희야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당장 가고 싶어도, 밤에 나가는 게 무서울 것이다. 선유는 두 손으로 희야 얼굴에서 눈물 자국을 닦아 주었다. 축축한 눈물이 손등에 번졌다.
선유는 희야를 일찍 재우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저녁 여덟 시면 소망원에서도 잠잘 시간이었다.
“오늘은 일찍 자자. 내일 아침에도 캠프에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돼. 아줌마가 소망원에 데려다줄게.”
그 말에 희야는 울음을 멈췄다. ‘다행히 말귀가 통하는구나.’ 선유는 안도의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씻자”는 말에 희야는 욕실에 들어가 혼자 이를 닦고 세수했다. 선유는 입양이 확정되면 희야 방으로 꾸밀 요량으로 짐으로 들어찬 방을 깔끔하게 치워놓았다. 그 방에 이불을 깔아주었다. 희야는 눕자마자 몸을 옆으로 돌리고 웅크리더니 곧 잠이 들었다. 눈가에 촉촉한 눈물자국이 남아있었다. 선유는 비로소 안도했다.
거실로 나온 선유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호진과 마주 앉았다. 호진은 다시 평소의 평온한 얼굴로 돌아가 있었다.
“여보, 어떡하지? 희야 캠프에 못 갈 것 같아. 애가 너무 가여워. 괜히 데려왔나 봐. 입양도 쉽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
“그래도 소장님과 국장님이 해보라고 하셨잖아요? 소장님에게 전화 걸어서 물어보는 게 어때요?”
호진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선유도 비슷한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시간이 늦었지만,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임 소장이 휴대폰 번호를 알려준 게 이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선유는 임 소장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이를 캠프에 데려갈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장은 단호했다.
“꼭 데려오셔야 해요. 지금 아이 마음을 잡지 못하면 입양에 실패해요. 희야를 잘 다독여 데려와야 입양할 가능성이 생겨요.”
단지 캠프에 데려가는 것만이 아니라 입양이 걸린 문제였다.
“알겠습니다. 다시 잘 얘기해 볼게요. 하지만 내일 아침에도 간다고 하면 캠프에 데려가긴 힘들 것 같아요.”
선유는 처음부터 희야에게 부담을 주기 싫었다. 억지로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무슨 말로 희야를 설득하지. 이러다가 희야를 입양할 수 있을까.’ 그동안 품었던 희망이 물거품이 되어 공기 중으로 분해되는 것 같았다. 가슴에 돌덩이가 얹힌 듯 무거운 마음으로 잠을 청했지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희야는 태어난 지 이틀 만에 맡겨진 보육원에서 칠 년 동안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었다. 그런 희야를 그곳에서 옮겨오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희야를 가족이나 다름없는 아이들과 떨어뜨리는 것이 그 아이를 위한 일일까. 입양이 희야 같은 큰아이에게도 최선일까. 차라리 그곳에서 계속 사는 것이 희야를 위해 더 나은 길이 아닐까...아이에게 입양은 무조건 축복이고 행복이라고 믿었다.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선유의 마음에 자리 잡았다. ‘아이를 뿌리째 옮긴다는 건 잔인한 일이야. 희야가 기꺼이 오려고 할 때 입양할 거야. 그때가 오지 않는다면 포기하고 다른 아이를 찾을 거야.’ 선유는 그렇게 다짐하고 내일 어떻게 될지 순리에 맡기기로 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든 게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밤은 길고 고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