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캠프가는 길
캠프 가는 길
밤새 잠을 설친 선유는 희야가 깨어나자마자 조심스럽게 “소망원에 가고 싶니?”라고 물었다. 심장이 가볍지만 빠르게 뛰었다. ‘아니요’라는 대답을 간절히 바랐다. 희야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네”라고 답했다. 선유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침 먹고 데려다줄게.”
그런데 아침을 먹고 나자, 갑자기 희야의 말수가 많아지기 시작했고 움직임이 부산해졌다. 선유는 어리둥절했다. 희야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 희야는 전날 밤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거실 책꽂이에 진열된 작은 장식품들을 눈여겨보았다. 고양이, 코끼리, 강아지 모양의 작은 도자기 동물들을 하나씩 들여다보고 만져보았다. 선유는 그런 희야의 행동을 눈치채지 않게 지켜보았다. 희야는 하얀색으로 칠해진 눈이 동그란 고양이 인형을 한참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손끝으로 살며시 만져보더니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선유에게 물었다.
“가져도 돼요?”
선유는 뜻밖의 질문에 놀랐다. 그 질문으로 희야가 선유에게 한 걸음 다가오는 것 같았다.
“응, 가져도 돼.”
선유는 대답하며 살며시 희야에게 다가갔다. 인형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희야가 배시시 웃었다.
“희야야, 캠프 갈래?”
희야가 기분이 좋아 보여서 살짝 마음을 떠보았다. 희야는 입을 꾹 다물더니 눈을 내리깔았다.
“아줌마는 가고 싶어. 부탁이야.”
선유는 ‘이래도 될까?’ 생각하면서도 용기를 냈다. 희야는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잠시 후 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야? 희야야, 고마워.”
선유는 기뻐서 자기도 모르게 소리 내 웃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잘한 걸까?’하는 의심이 스며들었다. 희야가 내키지 않았지만 마지못해 부탁을 들어준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임 소장이 “어떻게든 달래서 꼭 캠프에 데려오세요.”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렇게라도 데려가는 게 나아. 일단 가보는 거야.’ 먹구름이 빽빽했던 선유의 마음에 햇살이 비쳐 들었다. 선유는 호진에게 전화해서 저녁에 직접 캠프 장소로 오라고 말했다. 호진도 희야가 마음을 바꿨다는 소식에 놀라는 눈치였다.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거지?”
“나도 그게 궁금해.”
희야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어젯밤의 낯설고 무서운 기분은 사라져 버렸다. 눈물이 터졌던 일도 기억이 희미해져 있었다. 낯설고 쓸쓸했던 감정은 어둠 탓이었을까. 거실로 비쳐 드는 햇살은 널어놓은 빨랫감의 물기를 말리듯 희야의 우울한 기분을 거둬갔다. 희야는 어젯밤에 관심 없던 후원자의 집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집에는 아이가 쓸만한 물건은 하나도 없었지만, 거실 책장에 나란히 진열되어있는 앙증맞은 장식품들이 희야의 흥미를 끌었다. 선유가 하얀 도자기로 만든 고양이 인형을 가지라고 했을 때, 희야는 ‘친절한 후원자시다’라고 생각했다. 캠프에 가고 싶다는 선유의 말을 들었을 때, 희야는 그 진심이 느껴졌다. “부탁이야”라는 말에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두려움이 여전히 있었지만, 선유에게 실망을 안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만약 누군가 “왜 허락했어?”라고 묻는다면, 희야는 아마 “몰라요”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선유가 다시 희야를 홈플러스로 데려가자 희야는 기분이 한층 들떴다. 이 동네의 홈플러스는 소망원에서 다니는 홈플러스와 달랐다. 1층에 있는 미니 자동차가 희야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희야는 타 보고 싶다는 말을 꾹 참았다. 속에서 ‘너무 많은 걸 요구해서는 안 돼’라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희야는 ‘또 어떤 선물을 사 줄까?’ 기대했지만, 선유는 3층에 있는 옷 가게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이 옷, 저 옷을 집어 자기에게 맞춰보는 동안 뱃속에서 벌레가 꼼지락거리는 것 같았지만, 희야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선유는 판매대에 쌓여있는 옷 중에서 지퍼가 달린 연한 분홍색 후드 티 하나를 집었다.
“분홍색 운동화랑 잘 어울리네.”
그 말과 함께 희야는 마침내 옷을 입어 보는 고역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선유가 화장실에서 상의를 갈아입혔다. 소망원에서 이모들이 옷을 입혀주는 것에 익숙했던 희야는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따랐다.
홈플러스에서 피자를 먹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기 위해 아파트 단지 옆길을 꽤 걸었다. 긴 아파트 담장에는 굵은 가지에서 뻗어 나온 가느다란 빨간 장미 덩굴이 휘감겨 있었다. 평소 같으면 다리가 아프다고 투덜댔겠지만, 희야는 조용히 걷기만 했다.
“캠프 하는 데까지 가려면 많이 멀어요?”
희야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버스가 좀처럼 오지 않자 다시 물었다.
“버스 언제 와요?”
“희야, 심심해?”
“아니요.”
희야는 거짓말을 했다. 심심해 죽을 지경이었지만 티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선유 옆에 서서 버스가 오는지 두리번거렸다. 온순하고 얌전한 아이처럼.
“희야, 전에 아줌마가 입양 얘기한 거 생각나?”
전혀 기억나지 않았지만, 희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생각해 볼 거야?”
또 끄덕였다. 선유는 엷은 미소를 띤 채 희야의 손을 꼭 쥐었다. 선유의 손끝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하지만 간질간질해서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었다. 그래도 꾹 참고 손을 빼지 않았다.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 오르자 희야는 재빨리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휴대폰 갖고 놀아도 돼요?”
선유는 “그럼”하고 부드럽게 말한 뒤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희야에게 건넸다.
“원하는 걸 말해줘서 고마워. 아줌마, 기분이 좋아.”
소망원에서는 다른 아이들의 차지였던 휴대폰. 이제는 온전히 희야의 것이었다. 그 사실이 짜릿했다. 처음으로 내 것이 생긴 기분이었다. 희야는 창밖을 내다보며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었다. 상점 간판, 길을 걷는 사람들, 도로 표지판까지. 특히 강아지를 보면 잽싸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눈에 들어오는 것마다 사진 속에 담겼다. 이렇게 오래 버스를 타 본 건 처음이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 하나하나가 새로웠다.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사진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던 반짝임이 가득 담겨 있었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사진을 찍고만 싶었다.
선유는 사진찍기에 열중한 희야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아침 내내 이어졌던 긴장이 사라졌다. 희야가 인형을 갖고 싶다고 한 것, 폰을 달라고 한 건 좋은 신호였다. 욕구를 표현한다는 건 그만큼 편해졌다는 뜻일 테니까. ‘바깥세상이 신기한가 봐.’ 희야에게 이 넓은 세상을 조금이라도 보여주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이건 세상의 작은 조각일 뿐인데.’ 희야가 앞으로 마주할 다채로운 경험을 상상하자 선유의 심장은 벅차올랐다.
갑자기 희야가 손을 내밀며 휴대폰을 선유에게 건넸다.
“다 찍었어요.”
얼굴에는 실컷 놀았다는 만족감이 피어올랐다. 그러더니 곧 목소리를 높여 소망원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닭들이 아침에 ‘꼬꼬댁’하고 울어요. 진짜 시끄러워요. 그 소리에 다 잠이 깨요.”
희야의 볼이 발그레해지며 생기가 돌았다. 선유는 희야의 이야기 속에 펼쳐지는 소망원 생활을 그려보려고 귀를 기울였다.
“아줌마도 봤어. 닭이 몇 마리더라?”
“네 마리요. 하얀색 닭이 제일 커요. 걔가 제일 시끄럽게 울어요. 다른 닭들은 그 닭을 피해 다녀요. 왜 그런 거예요?”
“그 닭이 대장인가 보네.”
“유비 오빠처럼요?”
희야는 신이 난 듯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개들도 ‘멍멍’ 짖으면 이웃집 소가 ‘음메’하고 울어요. 얘기하는 것 같아요.”
희야가 짐승 소리를 흉내 내자 선유는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선유가 끔찍이 싫어하는 뱀 이야기도 나왔다.
“뱀 봤어? 무섭지 않았어?”
“아니요.”
“와, 희야 정말 용감하다. 아줌마는 뱀만 보면 소름이 끼치는데. 그럼 뱀은 어떻게 했어?”
“유비 오빠가 잡으려고 했는데, 너무 커서 못 잡았어요.”
“그래서?”
“남자 선생님이 와서 막대기로 때려서 잡았어요.”
희야는 손에 막대기를 쥐고 휘두르는 시늉을 했다.
“그래서 뱀이 죽었어?‘
“아니요. 선생님이 논에다 던졌어요. 우리도 따라가서 봤어요.”
선유는 자신이 희야 나이였을 때 시골 마을에서 보았던 뱀을 떠올렸다. 어느 날 뒷산에서 놀고 있을 때, 갑자기 구불구불 기어가는 큰 초록 뱀을 보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뱀이 사라진 뒤에야 몸을 부들부들 떨며 산을 뛰어 내려왔다. 동네 어귀 좁은 길목에선 형형색색의 구렁이들을 잡아 큰 유리병에 넣어 처마 밑에 매달아 놓곤 했다. 그 집 앞을 지날 때면 선유는 온몸에 전기가 오르는 듯 공포에 질렸다. 눈을 질끈 감고서 간신히 길목을 지나갔다. 그 이후로 선유에게는 뱀 공포증이 생겼다. ‘희야는 나랑 많이 달라.’ 뱀을 무서워하지 않는 아이라니. 40년의 나이 차이가 있지만 희야와 시골에서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희야는 메뚜기와 개구리도 잡아먹어 봤다고 했다. ‘세월이 흘렀어도 시골은 크게 변하지 않았구나.’
택시 안에서 처음 희야의 말문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자기 터졌다. 지금도 그때와 비슷했다. 긴장을 풀어보려는 건지, 긴장이 누그러져서인지 선유는 알 수 없었다. 이유야 어쨌든 희야가 이야기를 시작할 때마다 점점 더 친근감이 쌓여가는 기분이 들었다. 옆자리에 앉아 조잘거리는 이 아이가 언젠가 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선유는 감격에 겨웠다. 매일 집에서 희야와 이야기를 나누는 상상을 하며 행복한 상념에 젖어 들었다. ‘정말 그런 날이 올까. 이렇게 친해지다 보면 가능할지도 몰라. 캠프를 다녀오면 그 가능성이 커질까.’ 선유는 침을 삼키며 시계를 들여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