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입양 가족 속에
입양 가족 속에서
‘등록’이라는 큰 글자가 보이는 책상 앞으로 선유는 희야의 손을 꼭 쥔 채 다가갔다. 파란 티셔츠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이, 임 소장이 꼿꼿한 자세로 서서 그들에게 뭔가를 지시하고 있었다.
“희야 왔구나!”
임 소장의 얼굴에는 반가움이 번졌다. 희야가 오지 않으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던 눈치였다. 선유는 마치 어려운 임무를 완수한 장수처럼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임 소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임 소장을 처음 본 희야는 순간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수줍은 미소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인사하지 않고 몸을 반쯤 선유 뒤로 숨겼다. ‘다시 긴장되는구나.’ 선유는 희야의 표정만 보고도 마음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샛별이 엄마!”
임 소장이 큰 소리로 누군가를 부르자, 한 여성이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다가왔다. 아이는 새하얀 피부에 통통한 볼, 야무지게 다문 입술, 크고 반짝이는 눈, 그리고 두 갈래로 단정하게 땋은 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아역 배우라도 될 법한 예쁜 아이였다. 몸에 꼭 맞는 티와 짧은 치마, 스타킹, 구두까지 옷차림도 완벽했다. 선유는 문득 희야에게 더 예쁜 옷을 입혀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샛별이도 일곱 살이지요? 샛별아, 희야야. 너랑 동갑이야. 둘이 친구 하면 좋겠다.”
임 소장은 특유의 저돌적인 태도로 한순간에 샛별이라는 아이와 희야를 친구로 묶어주었다. 선유는 샛별이 엄마에게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했다. 샛별 엄마의 나이는 선유와 비슷해 보였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큰 키, 샛별이와 똑같이 양 갈래로 머리를 딴 모습이 여간 멋쟁이가 아니었다.
“처음 뵈어요. 입양 자녀세요?”
“아직 아니에요. 만난 지 얼마 안 됐어요. 샛별 엄마가 캠프 동안 좀 챙겨줘요.”
임 소장은 선유 대신 대답하고는 캠프의 진행 상황을 살피러 자리를 떴다.
그 순간 선유는 화들짝 놀랐다. 임 소장이 사라지자마자 샛별이의 눈에서 찌릿하고 전기가 튀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일 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 샛별이는 번개처럼 빠른 눈길로 머리끝부터 발까지 희야를 훑었다. ‘넌 누구야?’라고 묻는 듯한, 도도하면서 약간 경계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샛별이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희야는 바닥에 눈을 떨구었다. 선유는 코끝이 찡해졌다. 당당한 아이와 주눅 든 아이. 이게 엄마가 있는 아이와 없는 아이의 차이인 걸까. 시샘이 연기처럼 슬그머니 피어올랐다. ‘희야도 언젠가 저렇게 빛나는 아이가 될 수 있을까?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선유는 희야의 손을 더 꼭 쥐었다. ‘내가 네 곁에 있으니 기죽지 말라’는 신호였다. 동시에 불길한 예감이 뿌연 안개처럼 선유의 시야를 가렸다.
두 사람은 배정된 방에 들어섰다. 널찍한 공간에 이층 침대가 여섯 개쯤 놓여 있었다. 서너 살부터 초등학생까지 방 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고함에 사방이 시끌시끌했다. 자리를 잡고 짐을 정리하는 엄마들이 “아휴, 정신없어, 고만 좀 뛰어다녀!”라고 소리쳤다. 선유는 구석에 비어 있는 침대의 일 층을 차지했다.
“안녕하세요? 아이가 몇 살이에요?”
맞은편 침대에 걸터앉은 한 엄마가 말을 걸어왔다. 약한 충청도 억양이 배인 말투였다.
“일곱 살이에요.”
“우리 애보다 한 살 많네요. 언제 입양하셨어요?”
질문을 한 엄마 옆에는 통통한 몸집의 여자아이 둘이 놀고 있었다. 자매인 모양이었다. 언니가 희야보다 한 살 어리다는 뜻이었다. 입양 엄마들을 처음 만난 선유는 그들의 질문이 언제나 입양으로 시작한다는 것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왠지 낯선 세계에 발을 들인 기분이었다.
“아직 입양 전이에요. 알아가는 중이에요.”
“그렇구나. 희야? 희야가 꼭 입양되었으면 좋겠다.”
그 엄마는 희야의 이름표를 보고서 희야를 향해 얼굴 한가득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엄마가 생기면 얼마나 좋은데!”
그 엄마는 희야의 마음에 닿을 말을 해주고 싶은 듯했다. 선유는 그 말이 고맙고 든든했다. 마치 먼저 결승선을 통과한 같은 팀 선수의 응원을 받는 기분이었다. ‘큰아이를 입양하는 게 어려운 일인지 다 알고 있구나.’
속속 새로운 가족들이 도착했다. 아이들은 건물 일, 이층을 오가며 뛰어다니고 소리를 질러댔다. 물 만난 고기 떼 같았다. 선유 눈에 아이들은 서로 친하고 거리낌이 없이 당당해 보였다. 그런 아이들 틈에서 희야는 웃음과 말을 잃고 평소보다 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선유의 손만 꼭 잡고 어디든 따라다녔다. 선유의 눈길은 자연스레 여자아이들에게 머물렀다. 모두가 해맑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부러움이 차올랐다.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희야에게도 저런 웃음이 찾아올까?’ 선유는 돌처럼 얼어붙은 희야가 안쓰럽기만 했다. ‘어떻게 긴장을 풀어주지?’ 난감했다. ‘입양만 하면 폭포 같은 사랑을 퍼부어줘야지. 희야에게서 기쁨의 샘이 터져 나오게 할 거야. 누구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아이로 변화시키고 싶어.’ 막상 입양 가정을 만나니 그런 기적을 꼭 이뤄내고 싶은 조바심이 났다.
저녁 식사 전에 호진이 도착했다. 식사 후 부모들은 강당으로 갔고 아이들은 다른 방에 모였다. 희야는 선유와 떨어져서 선생님을 따라가면서 여전히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 풀리지 않았다. 무슨 영화를 틀어주고 만들기를 했는데 희야의 머릿속은 텅 비어버렸다. 온통 모르는 어른들과 아이들 틈에서 마치 숲 한가운데서 길을 잃은 듯 두려웠다. 그나마 조금 익숙해진 선유, 호진한테 빨리 가고 싶었다.
프로그램이 끝나자 문 앞에서 기다리던 어른들이 아이들을 맞이했다. “엄마”, “아빠”를 부르며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달려가는 동안 희야는 불안한 눈으로 호진과 선유를 찾느라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하나둘씩 어른 손을 잡고 간식이 기다리는 식당을 향해 뛰어갔다. 희야는 덜컥 겁이 났다. 왜 후원자들이 오지 않는 거지?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 나를 내버려 두고 어디 갔을까? 두려움에 몸이 뻣뻣해졌다.
“선생님이랑 같이 식당에 가자. 거기 가 있으면 부모님이 곧 오실 거야.”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여자 선생님이 우두커니 서 있는 희야의 손을 잡고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식당 안은 식판이 덜거덕거리는 소리,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어른들이 대화하는 소리로 귓속이 멍멍할 지경이었다. 고소한 치킨과 피자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지만, 희야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자신을 데려와 놓고 혼자 내버려 둔 후원자가 야속했다. 그때 누군가 “희야야!”하고 부르며 옆으로 다가왔다. 처음 보는 아줌마였다. 키가 큰 그 아줌마 옆에는 얼굴이 하얗고 눈이 커다란 남자아이가 장난감 총을 들고 서 있었다.
“희야야, 나 모르지? 난 진영 엄마야. 옛날에 희야랑 진영이랑 같이 소망원에 살았어. 아줌마는 거기서 일해서 어렸을 때부터 희야를 잘 알아. 근데 엄마는 어디 계셔?”
그 질문에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희야는 ‘모른다’는 대답 대신 고개만 가로저었다.
“에구, 아빠, 엄마가 좀 늦으시나 보다. 기다리면 오실 거야. 진영이랑 앉아 있어. 아줌마가 간식 가져올게.”
희야는 진영 엄마가 가져온 치킨과 피자를 먹는 데는 관심이 없고 언제 후원자가 나타날지 식당 문 쪽만 계속 주시했다.
“희야야!”
식당 문에 모습을 드러낸 선유와 호진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희야를 향해 바삐 걸어왔다.
“많이 기다렸지? 너무 늦어서 정말 미안해. 우리 희야 울었구나...”
선유는 희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언니, 어디 갔다가 이제 와요?”
진영 엄마가 선유에게 물었다.
“급한 전화가 와서요. 고마워요. 진영 엄마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근데 언제 온 거예요?”
“저도 좀 늦었어요. 와 보니 희야가 혼자 있지 뭐예요?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네 살 때 보고 못 본 것 같아요. 그새 많이 컸네요.”
“희야야, 선생님 생각나?”
희야는 고개를 저었다. 진영이도, 진영 엄마도 기억나지 않았다.
“이 년 전인데도 잊어버렸구나.”
진영 엄마는 뭔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소영이는 알아?”
선유의 질문에 희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에 소망원을 떠났던 소영이. 얼마 전에 잠깐 돌아왔다가 다시 가 버린 아이였다.
“소영이가 진영이네 집에 있다가 우리 집에도 있었어.”
희야는 선유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왜 소영이가 진영이라는 아이 집에 있다가 후원자 집에 갔다는 걸까.
선유가 눈물을 닦아주고 나서야 희야는 간신히 진정됐다. 좋아하는 치킨과 피자, 콜라가 식탁에 놓여 있었지만, 입맛이 없었다.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자꾸 시선이 다른 식탁으로 갔다. 엄마가 아이에게 밥을 먹여주는 모습, 아빠, 엄마와 함께 아이들이 재잘대는 모습을 빤히 쳐다봤다. 그 아이들은 뭔가 달라 보였는데,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왠지 가슴이 시려왔다. 저런 게 가족이라는 건가. 희야의 머릿속에는 모호하고 흐릿한 인상만이 형성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인상과 가족이라는 단어가 연결되지 않았다. 나는 여기 왜 와 있는 거지. 여기서 경험하는 모든 게 뭐가 뭔지 몰라 답답했다. 희야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었다. 혼자 내버려 두고 나타나지 않았던 후원자가 원망스러웠지만, 투정할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산자락 아래 있는 건물 주위를 푸르스름한 어둠이 둘러쌌다. 산은 검푸른 하늘 도화지에 까만 선만 드러냈고 운동장은 텅텅 비었다. 숙소로 사용되는 방마다 노란 불빛이 켜졌다. 호진은 이층 남자들 숙소로 올라갔다. 선유는 이 밤이 걱정스러웠다. 벌써 아이를 울렸는데 희야가 다시 울음을 터뜨리면 어떡한담. 겁이 났다.
희야는 침대에 누웠지만 곧바로 잠들지 않았다. 식당에서 했던 것처럼 다른 침대 위 아이들을 유심히 바라봤다. 아이의 옷을 갈아입혀 주는 엄마, 엄마에게 떼를 쓰는 아이, 토닥토닥 등을 두드리며 아이를 재우는 엄마, 아직 잠들기 싫어 이 침대 저 침대 사이를 오락가락 돌아다니는 아이. 이런 모습들이 희야에게는 신기한 듯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희야의 표정이 왠지 밝아 보였다. 선유는 희야의 감정을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울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야’라고만 생각했다.
“소망원에서 선생님이 재워주셔?”
선유가 물었다.
“아니요. 우리가 떠들면 ‘빨리 자야지’ 해요. 솔이 언니는 머리를 막 이렇게 흔들면서 자요.”
희야는 머리를 양옆으로 흔드는 시늉을 했다.
“영은이 언니는 다른 애들을 발로 걷어차요.”
희야는 킥킥 웃으며 한 다리를 허공에 대고 흔들었다. 선유도 따라 웃었다. 들뜬 희야는 다시 선유에게 소망원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누가 다쳤고, 누구는 소망원에서 키우는 개한테 물렸고, 누구는 그림을 잘 그려 상을 받았고, 누구는 성을 바꿨고.
“그랬어? 그런 일이 있었구나.”
선유는 희야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소망원의 생활이 다시 선유의 상상 속으로 들어왔다.
한참을 떠들다가 어느덧 희야는 결국 잠이 들었다. 언제나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마치 초음파 화면 속 태아처럼 어깨와 두 다리를 꼭 끌어안은 채. 어떻게 이런 자세로 잠을 잘까? 선유는 다시 가슴이 아렸다. 가장 편안했던 자궁 속 그 순간에 희야의 시간이 멈춘 듯했다. 선유는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잠투정하는 아이들, 자다가 깨어 우는 아이들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낮에 말을 걸어주었던 희진 엄마는 둘째 딸인 유진이의 잠투정에 애를 먹고 있었다. 아이가 예민한지 울다 깨다 반복했다. ‘오늘은 너무 미숙했어. 이런 실수를 다시 하지 말아야지. 그래도 큰 탈 없이 무사히 지나가서 다행이야. 내일만 잘 넘기면 좋을 텐데.’ 과연 내일은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좀 더 능숙하게, 든든하게 희야를 지켜주고 싶었다. ‘내년에는 정말 엄마가 되어 이곳에 돌아오자.’ 그렇게 조용히 마음으로 다짐하는 사이 새벽이 밀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