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지는 아이

16화 우리가 가족이 될 수 있을까?

by 별지킴이

우리가 가족이 될 수 있을까?

다음 날 아침, 선유는 맞은 편 이층 침대 위에 올라가 있는 희야를 발견했다. 희야는 서른 살이 조금 넘어 보이는 여자 옆에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희야는 여자를 향해 쉴 새 없이 조잘거렸고, 자기보다 한참 어린 남자아이와도 히죽거리며 잘 어울려 놀았다.

“희야야.”

선유가 불렀지만, 희야는 힐끗 보기만 하고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들리지 않는 것처럼. 선유는 침대 기둥에 적힌 ‘영한이네 가족’이라고 쓰인 글자를 읽었다. 선유가 일어나 그 침대 곁으로 다가가자, 영한이 엄마가 먼저 “안녕하세요?”하고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희야가 일찍 깨서 혼자 두리번거리길래요. 그래서 제가 불렀어요. 영한이랑 놀게 하려고요. 얘기를 얼마나 재미있게 하는지 몰라요.”
영한이 엄마는 성격이 활달하고 에너지가 남달리 넘쳐 보였다. 웃음소리도 크고 선명했다. 큰 목소리로 희야에게 무언가를 말하면 희야는 손뼉까지 치며 깔깔 웃어댔다. 선유는 조용히 기다렸다. 하지만 희야는 선유가 곁에 있는지도 모르는 듯 영한 엄마를 졸졸 따라다녔다. 급기야 영한 엄마의 손을 잡기까지 했다. 묘한 질투가 불쑥 올라왔다. 자신에게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모습이라 어쩐지 낯설고 신경 쓰였다. ‘활달한 사람이 편한 걸까, 희야는’ 쉴 새 없이 말을 걸고 웃게 만드는 영한 엄마의 능력이 부러웠다. ‘나는 희야에게 어울리는 엄마일까.’ 의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훗날, 선유는 희야가 영한 엄마와 성향이 비슷해서 편하게 느꼈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산란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선유가 그 이야기를 하자, 호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랬어?”라고 말했다. 호진다운 반응이었다.

아침 식사가 끝난 후, 가족들이 체육관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쉰 가족이 넘는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에 넓은 체육관은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부모들은 정신없이 뛰노는 아이들을 붙잡아 자리에 앉히느라 분주했다. 젊은 남자 진행자가 마이크를 들고 “가족끼리 모여 앉아 주세요.”하고 소리쳤다. 자리가 정돈되자, 진행자가 흰색 티셔츠 몇 장씩을 나눠주며 말했다.

“가족이 함께 있는 모습, 또는 혼자 있는 모습을 그려주세요. 제일 잘 그린 가족에겐 선물도 있어요.”

아이들은 바닥에 주저앉거나 배를 깔고 누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선유는 검은 물감으로 희야의 얼굴선을 그리고 눈, 코, 입을 하나씩 채워 넣었다. 그림 아래 빈 여백엔 “희야야, 사랑해”라는 글씨를 썼다. 그리고 그 티셔츠를 희야에게 살며시 내밀었다. 희야는 선유를 올려다보며 수줍게 웃고는 다시 자신만의 그림에 몰두했다. 희야는 여자 어른과 남자 어른을 그려 넣더니 “허 선유 엄마, 이 호진 아빠”라고 또박또박 적었다. 그걸 본 선유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희야가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니 ‘게다가 엄마, 아빠라고 썼어.’ 엄마라는 단어는 홈플러스 이후 처음이었고, 아빠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여보, 희야가 아빠라고 썼어. 어때, 기분?”

선유는 호진의 옆구리를 툭 건드리며 물었다. 그림을 그리는 두 사람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호진이 “나쁘지 않은데?”라며 희야 곁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희야가 엄마. 아빠라고 썼잖아. 기분 좋다.”

선유가 말을 건네자 희야는 얼굴을 붉히며 배시시 웃었다.

“이제...엄마, 아빠라고 불러 줄래?”

희야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익숙한 고갯짓이 또렷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드디어...’ 아침까지만 해도 엄마가 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아주 미세하고 따뜻한 전류가 몸속 깊은 곳을 천천히 흘렀다. 희야의 끄덕임 하나가 혀끝에 닿은 달콤한 아카시아꿀처럼, 이제부터 무언가 달라질 거라는 예고로 선유 안에 잔잔히 스며들었다.

희야는 새 티셔츠 위에 빨간 물감으로 선유의 얼굴을 동그랗게 그렸다. 검은 물감으로 반달처럼 휘어진 눈과 입을 그리고, 머리카락은 양옆으로 뻗치게 그렸다.

“어, 삐삐 같네.”

선유가 웃음을 터뜨렸다. 희야는 쑥스러운 듯 몸을 옆으로 살짝 비틀었다. 초록색 옷 위, 가슴 한가운데 파란 하트를 그려 넣었다. ‘생각 없이 그린 걸까, 마음을 표현한 걸까?’ 선유는 설렘으로 두근거리며 희야가 오른쪽 공간에 노란색 나비 한 마리를 채워 넣는 걸 지켜봤다.

“희야, 그림 너무 잘 그렸네. 엄마보다 훨씬 낫다.”

선유의 칭찬에 희야의 귀 끝이 빨개졌다. 웃음소리와 고함으로 떠들썩한 체육관 안, 조용한 아이는 희야뿐이었다. 선유는 이 시끌벅적한 가족들이 부러웠다. ‘우리도...언젠가 저렇게 될 수 있겠지.’ 선유는 속으로 되뇌며 작은 숨을 들이켰다.

그림 그리기가 끝나고 곧바로 미니 체육대회가 시작됐다. 운동엔 영 자신 없는 선유는 체육관 한쪽 의자에 앉았다.

“희야야, 아빠랑 같이해, 화이팅!”

아이들은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풍선을 터뜨리고 줄을 잡아당기며 정신없이 놀았다.

“희야야, 달려, 달려!”

선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팔을 흔들며 힘껏 외쳤다. 희야는 선유를 힐끗 바라봤다. 하지만 그대로 멈춘 채 움직이지 않았다. 호진도 희야 옆에 멀뚱히 서 있기만 했다. ‘운동을 안 좋아하나 봐. 우리랑 비슷하네...’ 그때 선유는 희야가 얼마나 운동신경이 좋은 아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뛰고 싶은 욕구를 얼마나 억누르고 있는지도.

“언니, 희야는 어때요?”

어느새 진영 엄마가 옆에 다가와 있었다.

“아직 많이 어색해해요. 괜히 데리고 왔나 싶기도 하고요.”

“그죠, 당연히 어색하죠...근데 언니, 희야 입양하고 싶으세요?”

“네, 마음은 커졌는데...결국 희야가 원해야죠.”

선유는 아침에 희야가 영한이 엄마 손을 잡고 졸졸 따르던 모습을 떠올리며 자신 없이 대답했다.

“희야가 쉬운 아이는 아니죠. 그래도 시간이랑 정성을 들이면 되지 않겠어요?”

“그럴까요?...그런데 진영이는 어떻게 입양하게 되셨어요?”

선유는 이전부터 궁금했던 질문을 드디어 꺼냈다.

“진영이는 소망원에서 아기 때부터 제가 봤어요. 유독 저한테서 떨어지질 않더라고요. 저도 애가 너무 예뻐서 네 살쯤 됐을 때 그냥...이건 운명이다 싶었죠. 일도 그만뒀어요. 다들 말렸는데 귀에 안 들어왔어요.”

“키우는 거...힘들진 않았어요?”

“아이구, 언니. 지금도 힘들어요. 애가 멀쩡하고 잘 생겨 보이죠? 그런데 엄청 힘들어요.”

“어떻게요?”

“아휴, 떼쓰고 말 안 듣고 자기 뜻대로 안 되면 난리예요. 오늘도 일등상 못 타면 어떡하냐고 아침부터 얼마나 들볶았는지 몰라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진영 엄마는 땀흘리면서 뛰는 진영이를 눈으로 따라가고 있었다.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선유는 그 눈빛에서 진영에 대한 깊은 애정을 읽었다. 선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이들이란 다 그런 거 아닌가.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선유에게 양육이란, 아직 제대로 발을 디뎌본 적 없는 미지의 땅이었다.


티셔츠를 그리고 난 뒤 희야는 캠프에 대한 흥미를 다 잃었다. 아이들의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뛰어노는 아이들 사이에서 홀로 멀리 떨어져 있는 듯 울적하기만 했다. 소망원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토요일이라 아이들은 마당에 나와 놀이기구를 타며 떠들고 있을 텐데. 왜 나 혼자만 여기에 있는 걸까.

돌아가기 전에 주최 측에서 가족별로 기념사진을 찍어주었다. 낮은 산자락을 배경으로 자세를 취했다. 희야는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목에 건 이름표만 만지작거렸다. 입만 살짝 벌어질 뿐 표정이 제대로 지어지지 않았다. 카메라를 응시하는 게 불편해 눈동자가 멍하니 흐려졌다. 양쪽에 호진과 선유가 무릎을 꿇고 앉아 희야의 팔을 살짝 잡았다. 호진은 앉았어도 희야보다 훨씬 컸다. 선유의 오른쪽 볼이 희야의 어깨에 닿았다. 낯설면서도 부드러운 감촉. 희야는 잠시 몸이 굳었다가 힘을 빼고 그 따스함을 받아들였다. 찰칵. 어른들과 이렇게 사진을 찍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어떤 아줌마가 소망원까지 차를 태워주겠다고 했다. 모르는 사람의 차를 타서 희야는 긴장해 몸을 똑바로 세운 채 앉았다. 차가 움직이자 그 긴장이 서서히 풀려갔다. 잠시 후 희야는 어두워지는 창밖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스르르 잠이 들었다. 선유는 희야의 머리를 부드럽게 기울여 어깨에 기대게 했다. 희야의 가벼운 머리가 선유의 좁은 어깨에 툭 떨어졌다. 희야는 이틀 동안 새로운 곳에서 자신이 원치 않는 일들을 겪으며 지쳤다는 걸 전혀 몰랐다. 선유가 가여운 눈빛으로 자신을 내내 바라보며 미안해하고 있다는 것도 희야에게는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한 시간쯤 달려 소망원에 도착했다. 희야는 잠에서 깨자마자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식당 건물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냄새가 열린 문틈 사이로 새어 나왔다. 마당에서는 아이들 노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희야는 쌩하니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선유와 호진에게 인사하는 것조차 잊은 채. 머릿속엔 오직 언니들과 친구들을 찾아 마당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캠프에서 있었던 기억은 꿈처럼 순식간에 희미해졌다.


아이들이 희야를 맞이하러 나오자, 선유는 금세 희야의 낯빛이 달라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캠프에서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그래, 이곳이 희야의 집이지. 여기만큼 편안한 곳이 없을 거야.’ 이박삼일을 함께 보냈지만, 정이 들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희야와 함께 한 시간의 여운이 진하게 남아있던 선유는 서운하기만 했다.

선유와 호진은 희야를 눈으로 배웅한 뒤 사무실로 들어갔다.

“잘 다녀오셨어요? 희야는 어땠나요?”

웃는 얼굴로 두 사람을 맞이한 국장에게 선유는 간단히 캠프에서 있었던 일을 전했다. 선유의 말을 주의 깊게 들은 국장은 난처한 표정을 짓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 정도면 잘 지내고 온 거네요. 그런데...새로운 변수가 생겼습니다.”

“무슨 일이죠?”

“희야를 입양하고 싶다는 가정이 또 나타났습니다.”

“네?”

태연한 척 물었지만, 선유는 철로를 벗어난 열차처럼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여기서 멀지 않은 데 사는 젊은 부부입니다. 막 돌이 된 남자아이가 있는데, 그분들이 희야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어요. 아이의 누나를 입양하고 싶다고 하시네요.”

선유는 국장이 야속했다. 희야를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다른 부부에게 소개하다니. 하지만 아직 입양을 결정하지 못한 상황이라 항의할 수도 없었다.

“두 분이 결정하시면 거절의 뜻을 그쪽에 전하겠습니다. 결정은 하셨나요?”

“아직요...만약 그분들이 먼저 희야를 입양하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겠죠.”

선유는 묻는 눈빛으로 호진을 바라보았다. 호진의 마음만 확실하다면, 지금이라도 확답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호진만 탓할 수도 없었다. ‘과연 우리가 희야에게 적합한 부모일까?’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시간을 달라고, 그 부부와 희야가 만나지 않도록 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하지만 무슨 권리로 그런 부탁을 할 수 있을까?

“일단 두 가정을 동시에 희야와 만나게 할 예정입니다. 먼저 결정하는 쪽으로 희야를 보내야 합니다.”

“네...”

소망원 정문을 나서며 선유는 희야가 있는 방 쪽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 부부를 만나면 희야는 어떤 생각을 할까. 혼란스러워하지 않을까. 이런 방식이 과연 옳은 걸까. 하지만 곧 선유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어차피 희야가 가야 갈 가정은 이미 정해져 있어. 그게 우리라면 희야는 우리에게 올 거야. 아니면 그 가정으로 가는 게 맞아.’ 희야를 두고 그 부부와 경쟁하겠지만, 확신 없이 서두를 순 없었다. ‘역시 입양은 사람 뜻으로 되는 게 아닌가 봐. 부모와 자식의 인연을 맺는 일인데 그렇게 쉬울 리가 없지. 희야에게 가장 좋은 게 중요해. 만약 우리가 아니라면 다른 아이를 찾으면 돼.’

선유는 희야를 믿어보기로 했다. 삶에서 이토록 중요한 일 앞에서 희야가 자신에게 가장 좋은 선택을 할 것이라고. 아무리 아이라 해도 누가 부모가 되어야 할지 희야가 알 수 있을 거라고 선유는 스스로 다독였다. ‘우리가 아니어도 괜찮아.’ 희야가 행복하기를 빌며 선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두 눈은 어느새 촉촉이 젖어있었다. 연한 하늘색 창공은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햇빛에 붉게 물든 구름은 산맥처럼 끝없이 이어졌다. 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선유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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