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지는 아이

10장 남다른 아이

by 별지킴이

남다른 아이

제법 넓은 방 안에는 가구라고는 낡은 피아노 한 대와 작은 책상 몇 개, 크레파스 자국으로 지저분해진 서랍장, 그리고 책장 하나가 전부였다. 모두 오래되고 투박한 것들이었다. 빛바랜 하늘색 벽지는 낙서로 더럽혀 있었다. 방 한쪽 벽에 창고 같은 공간이 있었는데, 그 안에 이불과 아이들의 가방, 학용품, 장난감 정리함이 뒤섞인 채 들어차 있었다. 선유는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선유와 호진이 아이들의 차지가 되어 있는 동안 희야는 방구석 피아노 앞에서 언니들과 조용히 놀았다. 폰을 달라고도 업어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과의 사이에 홍해라도 갈라진 듯 한 방이었지만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았다. 선유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위축되어 보이는 희야에게 더 마음이 끌렸다. 쉽게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 아이. 더 매력이 있었다.

선유는 다시 찬찬히 희야의 모습을 관찰했다. 비뚤비뚤한 앞머리 밑으로 넓고 시원한 이마가 드러나 있었다. 눈썹은 얇고 듬성듬성했으며, 눈은 꼬리 쪽으로 갈수록 가늘어져 잣을 연상시켰다. ‘눈이 순해 보여.’라고 선유는 생각했다. 선유는 그 눈에 담긴 막연하면서도 강한 그리움을 읽었다. ‘희야는 엄마를 원하고 있어.’ 선유는 확신했다. 그 그리움을 그녀의 존재가 해소할 줄 수 있다는 것도. 희야의 코는 오뚝하지도, 뭉툭하지도 않고 콧구멍 쪽이 약간 넓었는데 선유에게는 그게 특히 매력적으로 보였다. 이국적인 코였다. 입술은 작고 도톰했고 웃을 때는 입술을 꾹 깨물거나 살짝 입을 벌려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선유는 희야가 눈을 피하거나 입술이 살며시 떨릴 때마다 아이가 얼마나 쑥스러움을 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희야는 진한 분홍색 티에 회색 운동복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날 선유가 찍은 사진 속에는 무릎을 비스듬히 꿇은 채 두 손을 뺨에 대고 있는 시골 아이가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릴 때 얼굴이 까맣고 촌스러웠던 선유는 그런 희야가 정겨웠다. ‘뭔지 모르게 사람을 끄는 아이야. 좀 신비로운 느낌이 들기도 해.’ 어쩌면 선유는 그동안 꿈꿨던,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아이를 보았는지도 몰랐다.

희야는 아이들이 선유와 호진에게 달라붙어 있는 동안 그들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선유와 호진은 희야의 차지가 될 수 없어 보였다. 내 후원자랬는데...희야는 약하지 않았지만, 자기보다 센 언니들과 오빠들에게는 언제나 모든 걸 양보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체념한 채 언니들과 놀며 방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사이 선유의 시선이 자꾸만 창문 사이로 비쳐 드는 햇살처럼 얼굴에 닿았다. 피부가 간질거리듯 거북했지만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나만을 바라보는 어른이라니. 낯설고 짜릿했다. 선유는 호진이 아이들을 업어주는 사이 슬그머니 희야 쪽으로 다가왔다. 선유가 하는 이런저런 질문에 희야는 짧은 대답을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희야는 평소에 말이 많은 편이었지만, 낯선 사람 앞이라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희야야, 노래 한번 불러 볼까?”

언제 방에 들어왔는지 희정 이모가 어색한 분위기를 의식한 듯 희야를 부추겼다. 희야를 바라보는 선유의 눈에는 잔뜩 기대가 담겨 있었다. 희정 이모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희야는 벌떡 일어났다. 물건이 어지러이 정리된 창고 같은 곳에서 책을 한 권 집어 들더니 희정 이모 옆으로 왔다. 노래책이었다. 아이들이 희야 곁으로 모여 둥그렇게 앉았다.

희야는 책을 펴고 천천히 일어섰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입을 열자 낯익은 유치원 노래가 흘러나왔다. 소리가 방안을 맴돌자 아이들이 흥에 겨워 따라 불렀다. 희야의 목소리는 작지만 힘찼고 볼은 귓불까지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작고 빠르게 뛰는 가슴이 날갯짓하는 새처럼 오르내렸다. 뚫어져라 자기를 응시하는 선유의 시선에 온몸이 살짝 떨렸다. 수줍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했다. 희야는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감추고 싶었다. 그런데 노래를 듣다 말고 선유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음치더라고”. 선유는 나중에 그 이유를 말해줬다. “열심히 부르는데 음정이 제멋대로였어.” 선유는 호진 쪽으로 고개를 기울여 귓속말로 뭔가를 속삭였다. 팔을 턱에 받치고 노래를 듣던 호진도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래를 가르쳐야겠다고 말했지. 아빠가 노래를 잘하니까 걱정 없었어.”

“야, 희야 목소리도 아주 멋지네.”

‘멋있다’는 말이 귀에 맴돌았다. 지금까지 누구도 자신의 목소리에 대해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이 없었다. ‘예쁘다’, ‘멋있다’는 말에 희야의 마음은 풍선처럼 둥둥 떠 올랐다. 그 말들이 믿기지 않았다. 나중에야 희야는 자기가 허스키한 음색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선유에게서 들었다.

“이제 아저씨 노래 들어볼래? 아저씨 노래 진짜 잘해.”

선유가 분위기를 띄웠다.

“네, 노래 불러 주세요.”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호진은 기대에 차서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아이들 앞에 서서 목을 킁킁 가다듬더니 오른손을 앞으로 쑥 내밀고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말로 이상한 노래를 불렀다. 아이들은 호진이 손을 들었다 내렸다 하고 눈을 부릅뜨고 입이 찢어질 듯 크게 벌려 노래하는 표정을 보며 손뼉을 치고 깔깔거렸다. 선유는 희야의 반응을 살피려는 듯 얼굴을 힐끗 훔쳐보았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는 희야는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호진의 노래가 끝나자 남자아이들은 펭귄 방으로 돌아갔다. 한바탕 넘실대던 파도 같은 흥분이 가라앉고 고요가 찾아왔다. 이제 선유와 호진이 돌아갈 시간이었는데, 먼저 다가서지 않던 희야가 살며시 선유 쪽으로 다가왔다.

“언제 가실 거예요?”

희야는 두 손을 모으고 몸을 약간 비틀면서 탁한 목소리로 물었다.

“응? 네 시쯤 가려고 하는데.”

놀란 선유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대답했다.

“저녁 먹고 가요.”

희야의 뜻밖의 말에 선유는 믿기지 않아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가 좀 더 머물길 바라는 걸까.’ 조용하던 희야가 그런 말을 하자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러자.”

희야와 시간을 더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그리고 먼저 말을 건네준 게 선유의 마음에 희망의 불씨를 피웠다. 그 후 이어진 말은 더 놀라웠다.

“다음에 언제 오실 거예요?”

흐릿했던 희야의 잣같이 생긴 눈이 처음으로 별처럼 반짝거렸다.

“두 주 지나고. 희야, 우리 기다릴 거야?”

희야는 어렴풋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언제예요?”

선유는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는 희야의 손을 잡고 벽에 걸린 달력 쪽으로 가서 손가락으로 날짜를 짚었다.

“오늘이 14일이거든. 두 주 지나면 28일이야. 이날! 알겠어?”

희야는 다시 끄덕끄덕했다.

“그날, 희야 뭐 하고 싶어?”

선유가 물었다.

“홈플러스에 가요.”

희야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홈플러스? 그래. 약속!”

선유와 희야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로 꾹 눌러 도장 찍는 시늉을 했다.

이른 저녁을 먹고 두 사람이 떠나려고 건물을 나서자 아이들이 배웅하러 한꺼번에 몰려나왔다.

“이거요.”

하루 종일 선유를 따라다녔던 영은이가 뿌듯한 표정으로 네 잎 클로버를 내밀었다. 희야보다 두 살 많고, 키가 크며 몸은 홀쭉하고 얼굴이 하얀 아이였다.

“후원자님 드리려고 제가 찾아냈어요.”

“정말?”

선유는 네 잎 클로버가 상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받아 호진의 책에 끼워 넣었다. 손끝이 따뜻해져 왔다. 감동이 온몸을 휘감았다.

“또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희야도 아이들 틈에 끼어 현관까지 따라 나왔다. 무표정하던 얼굴에 편안한 웃음이 번졌다. 처음 크게 웃는 희야가 귀엽게 보였다. ‘우리가 떠나서 마음이 홀가분해진 걸까? 긴장했었나 봐.’ 선유와 호진이 손을 흔들자 희야는 빠른 몸짓으로 냉큼 뒤를 돌아 방 쪽으로 뛰어갔다.

노란 노을이 하늘을 물들였다. 쌀쌀해진 저녁 공기가 뺨을 간질였지만, 선유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선유의 마음은 한껏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금세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여보, 나 너무 행복해. 이런 기분 처음 느껴봐.”

선유는 호진을 향해 몸을 돌려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희야를 만난 게 그렇게 좋아?”

호진은 빙긋이 웃으며 물었다.

“희야를 만나서만이 아니야. 내가 오래전부터 보육원 아이들 후원자가 되고 싶었잖아? 이렇게 쉬운 걸 왜 그동안 망설이느라 시간을 허비했을까. 내 꿈이 이뤄졌어. 우리 나중에 큰 차 사서 아이들 데리고 놀러 다니자. 아이들 후원자 돼 주자.”

선유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냈다. 호진은 평소와 달리 들떠있는 선유를 빤히 바라보았다.

“우리 입양 때문에 온 거잖아.”

“맞아. 근데 나 아이들 후원도 하고 싶어. 한 아이만 입양하고 나머지는 모른 척할 순 없잖아?”

“...”

호진의 시선이 당혹스러움과 혼란으로 흔들렸다. 선유는 그 눈빛을 마주한 순간, 자신이 감정에 휩쓸려 의미 없는 말을 쏟아내는 사람이라도 된 것 같았다.

“여보, 난 희야가 마음에 들어. 당신은 어땠어?”

선유가 희야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글쎄, 난 모르겠는데. 아직 별 느낌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럴 줄 알았어. 괜찮아, 시간 충분해.”

호진은 선유가 로봇이라고 말할 정도로 지나치게 이성적이어서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발적으로 솟아나는 감정도 억누르기 일쑤였다. 이렇게 중요한 결정 앞에서는 더욱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했다. 그런 호진의 성향을 잘 알기에 선유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늘 그랬듯 선유가 앞서 가면 호진은 결국 따라올 것이다.

“근데 여보, 그 지운이란 아이 있잖아. 걔한테도 마음이 가. 한꺼번에 둘을 입양하면 서로 의지하고 좋지 않을까?”

선유는 희야 말고도 내내 그녀 옆을 떠나지 않았던 지운이를 계속 지켜봤었다.

“그건 좀 갑작스러운 것 같아. 우선 희야부터 알아가자.”

호진은 곧바로 ‘싫다’고 말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선유의 들뜬 표정을 살피고 말을 돌렸다.

“그래도 다음에 국장님한테 물어봐도 되지?”

“물어보는 거야...”

호진은 예상치 못했던 선유의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희야 하나만으로도 벅찬데 또 다른 아이라니. 선유가 지금 흥분에 휩싸여 판단력을 잃은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호진은 행복에 취해있는 선유의 기분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다. 설마 두 아이를 입양하게 되진 않을 거라고 스스로 다독였다.

“예쁘다. 여보, 이거 봐.”

선유는 오르막길에 흩뿌려진 듯 피어있는 야생화를 가리켰다. 노란색, 분홍색, 보라색, 파란색, 온갖 색깔이 어우러져 있었다. 선유는 그 꽃들이 방금 만난 아이들같이 느껴졌다. 보살핌 없이도 길가에 꿋꿋이 피어난 강한 생명력을 지닌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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