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지는 아이

9장 첫만남

by 별지킴이


첫 만남


국장과 함께 걸어가면서 선유는 마당 전체를 빠른 눈길로 빙 둘러보았다. 미끄럼틀, 시이소오, 그네 등 놀이기구가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었고, 한 가운데 높이 뻗은 버드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놓았다. 마당 한 구석에 만들어놓은 닭장에서 닭 몇 마리가 종종걸음을 치는 모습이 보였다. 힘찬 “꼬끼오” 소리가 대낮의 고요함을 깨뜨렸다. 보육원 담장 너머 이웃집에서 소를 키우는지 소똥 냄새가 바람에 실려 왔다.

아이들은 마당 곳곳에 흩어져 놀기에 바빴다. 어디에 일곱 살짜리 여자아이가 있는 거지? 선유는 희야를 단박에 알아보고 싶었다. 호진도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모양새가 희야를 찾으려는 것같이 보였다. 몇 걸음을 떼기도 전에 두 명의 여자아이가 손을 붙잡고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카메라 앵글에 잡히듯이 선유의 눈에 들어왔다. ‘둘 중 하나구나.’ 선유는 직감했다. 오른쪽에 있는 키가 더 큰 여자아이는 숱이 많은 곱슬머리에 입술이 두툼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선유와 호진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옆에 있는 아이는 조금 긴 머리를 뒤로 묶었고 고르지 않게 잘린 앞머리가 눈썹 위로 드리워있었다. 두 아이 다 촌스러운 시골 아이 인상이었다. 선유는 그녀를 뚫어져라 노려보는 큰아이보다 겁먹기라도 한 것처럼 언니의 손을 꼭 붙잡고 무엇에라도 홀린 듯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아이에게 눈길이 갔다. ‘저 아이였으면 좋겠다.’ 국장은 바로 그 아이를 향해 함박웃음을 지으며 “희야야, 후원자님 오셨어.”라고 말했다. 저 아이가 맞구나! 선유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희야 쪽으로 다가갔다.

“네가 희야구나!”

낯선 아줌마가 입을 크게 벌리고 웃으면서 희야에게 손을 내밀었다. 작은 키에 빨간 옷을 입고 있었다. ‘후원자?’ 희야는 큰엄마(소망원 아이들은 국장을 큰엄마라고 불렀다.)의 말에 흠칫 놀랐다. 작년 이후로 희야에게 후원자가 나타난 적은 없었다. 기대하지 않고 있을 때 후원자가 오다니 희야는 어리둥절했다. 정말 나를 보러 온 것일까. 그 아줌마 옆에는 훨씬 키가 큰 아저씨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희야를 바라보고 있었다.

“희야, 예쁘네.”

그 아줌마가 건넨 말에 희야의 볼이 귀밑까지 빨개졌다. 희야는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어보지 못했다. 그 말은 희야와 동갑인 은아가 독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굴이 동그랗고 살결이 까무잡잡했어. 순박한 느낌을 주는 아이였지.” 선유는 나중에 그렇게 말하곤 했다. “첫눈에 바로 이 아이라는 확신이 들진 않았지만, 호감이 갔어. 그래서 계속 만나봐야겠다고 바로 결정했지.” 희야가 난생처음 듣는, 자신의 첫인상에 대한 말이었다.

희야의 심장이 흥분한 듯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얼떨떨할 뿐이었다. 선유와 호진이 양옆에서 희야의 손을 잡았을 때 희야는 어색했지만, 손을 빼지는 않았다. 호진의 묵직한 손은 약간 땀이 배어 있어 축축하면서 따뜻했고 선유의 작은 손은 차가웠다. 손끝에서 낯선 감각이 퍼져나갔다. 묘했지만 싫지는 않았다. 희야는 두 사람이 이끄는 대로 놀이기구가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희야가 친구들 소개해 줄래?”

선유의 말에 희야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유와 호진 사이에 선 희야를 보고 흩어져 있던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누구세요?”

“응, 희야 후원자야.”

“좋겠다!”

자신을 둘러싼 아이들 틈에서 희야의 어깨가 살짝 올라갔다가 굳어졌다. 쑥스러움과 으쓱함이 마음속에 잔잔한 물결처럼 섞여 들었다. 아이들은 희야 뒤를 따라다니다가 몇 명만 빼고 곧 다시 놀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희야는 은아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은아의 긴 곱슬머리가 햇볕에 반짝거렸다. 혼자 흙으로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던 은아는 짙은 쌍까풀과 큰 눈망울을 들어 선유와 호진을 바라봤다.

“희야 후원자님이세요?”

앞니가 빠진 입을 벌리고 활짝 웃었다.

“이름이 뭐야?”

선유가 물었다.

“은아요. 저 희야랑 같은 방 써요.”

“그렇구나. 참 예쁘게 생겼네.”

“은아는 아빠가 미국에 있어요. 얼마 있으면 떠나요.”

옆에 있던 진국이가 말했다.

“그래? 미국에 아빠가 계셔?”

“네. 오빠들도 다섯 명 있어요.”

선유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은아의 얼굴에는 자랑스러워하는 빛이 번져갔다.

“네가 입양 가는 아이구나. 입양이 뭔지 아니?”

“몰라요.”

은아는 관심 없다는 듯 대답하고는 다시 흙장난에 몰두했다.

희야에게 ‘입양’은 아무 뜻이 없는 단어였기에 그 소리는 귀에 닿자마자 사라져 버렸다. 희야는 은아가 미국에 사는 한국 목사 아빠네 집으로 곧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입양이라는 사실은 몰랐다. 계절이 바뀌듯이 아이들은 때가 되면 떠나곤 했기에 희야는 친한 친구인 은아가 다시 못 볼 곳으로 가게 되었어도 서운한 마음조차 생기지 않았다. 정작 그날이 언제 올지도 예상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은아는 마치 함께 산 적이 없는 것처럼 떠나고 말 것이다.


선유는 얼굴에 흙을 묻힌 채 놀고 있는 은아를 상념에 잠겨 바라보았다. 입양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얼굴. 떠날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작은 손. ‘희야는...그렇게 떠나게 하지 말아야지.’ 선유는 단단히 다짐했다. ‘예고도 없이 아이를 옮긴다는 건 희야에게도, 남은 아이들에게도 잔인한 일이야. 준비할 시간을 충분히 줘야 해.’ 선유는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제 희야 방으로 가보자.”

선유의 말에 따라다니던 몇 명의 아이들이 벽을 하늘색 페인트로 칠한 건물 안으로 우르르 들어갔다. 희야가 생활하는 곳이었다. 신발장에는 운동화와 슬리퍼가 피아노 건반처럼 나란히 들어차 있었다. 바닥에도 신발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희야는 선유와 호진의 손을 놓고 쏜살같이 아이들과 오른쪽 복도로 내달렸다. 복도 오른쪽으로 난 문 위에는 ‘펭귄 방’, 왼쪽으로 난 문 위에는 ‘오리 방’이라고 쓰인 푯말이 걸려있었다. 문에는 커다란 펭귄과 오리 그림이, 벽에는 생활 계획표와 아이들의 이름, 생일이 적힌 종이가 나붙어있었다. 펭귄 방에서 놀고 있던 남자아이들이 “어, 후원자님이다!”라고 소리 지르며 오리 방으로 한꺼번에 몰려왔다.

선유는 벽에 붙은 종이를 눈여겨 살펴보았다. 여자아이들이 일곱 명, 남자아이들은 여덟 명. 여자아이들은 일곱 살 네 명, 여덟 살 두 명, 아홉 살 한 명이었다. 선유는 남자아이 중에서 눈에 익은 얼굴을 찾아냈다. 소영이의 앨범에서 보았던, 늘 소영이 옆에 있던 그 아이였다. 하얀 살결과 유난히 큰 눈 덕분에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마치 사진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다. 이름이 뭐였지?

“이름이 뭐야?”

“지운이요.”

“맞다, 지운이. 지운아, 소영이 알아?”

“몰라요.”

혀가 짧은 귀여운 목소리로 대답하고 나서 지운이는 천연덕스럽게 선유의 무릎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후원자들이 오면 늘 하던 습관 같았다.

“저희 소영이 알아요. 후원자님도 소영이 아세요?”

더 큰 남자아이들이 호기심에 찬 얼굴로 물었다.

“응, 얼마 전에 우리 집에 왔었거든.”

“왜요?”

“그냥 잠깐 놀러 왔었어.”

“다음에 소영이랑 놀러 오세요.”

지운이는 너무 어려서 소영이를 잊었지만, 다른 아이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선유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빙긋이 웃고 말았다. 소영이를 무슨 수로 데리고 온담? 지운이는 선유의 무릎에 앉아 일어날 생각을 안 하더니 느닷없이 선유를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엄마라고? 누군가 선유를 “엄마”라고 부른 건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선유는 묘한 감정이 출렁대는 것을 느끼며 지운이의 왕방울 같은 눈을 쳐다보았다. ‘이 아이는 왜 입양이 안 되는 걸까. 할 수만 있다면 이 아이도 입양하고 싶어. 나중에 국장님한테 물어봐야지’.

아이들이 앉아 있는 선유 주위를 빙 둘러쌌다. “어디서 오셨어요?”, “아이는 왜 안 데리고 오셨어요?”, “저도 후원자 있어요.”, “폰 보여주세요.” 시끌벅적 아이들의 요구가 팝콘처럼 쏟아졌다. 선유가 폰을 내어주자, 아이들은 폰을 먼저 차지한 지운이 옆에 바짝 다가앉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아이 옆에서 침을 삼키듯이 폰과 지운이를 쳐다보았다.

“이제 내 차례야.”

기다리던 민우라는 아이가 폰을 쟁탈하듯 낚아채자, 지운이 얼굴에 못내 아쉬운 표정이 떠올랐다. 폰을 기다리다 싫증이 났는지 아이들은 이번에는 호진에게 달라붙었다.

“업어주세요!”

호진은 아이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양쪽에서 손을 잡아끌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곧 한 아이씩 번쩍 들어 어깨 위에 태우고 방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나도요! 나도요!”

아이들이 손을 뻗치며 호진의 뒤를 따라다녔다. 선유는 아이들이 호진의 어깨 위에 올라타서 신나라 하는 모습을 보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호진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미래의 아빠가 된 모습을 상상하니 벅찬 감정이 파도처럼 심장 주변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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