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소망원
소망원
4월 둘째 주 토요일. 무궁화호 안. 선유는 색이 바래 파란빛이 어렴풋이 남은 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하늘색 블라우스에 짙은 남색 치마를 입고, 위에 걸친 빨간 트렌치코트 끝자락을 자꾸 만지작거렸다. 오른발로 바닥을 탁탁 두드리며 창밖을 바라봤다. T.S. 엘리엇이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 4월이 이렇게 찬란할 수 있다니. 유독 따뜻한 봄 날씨에 투명한 아지랑이가 어른대는 공기는 가벼운 춤을 추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호진은 청색 셔츠와 선유가 좋아하는 검은 사파리를 차려입었다. ‘흥분’이라는 단어를 모른다는 듯, 호진은 차분한 자세로 읽고 있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C 시의 작은 기차역은 한산했다. 역 앞에는 택시가 서 있지 않았다. 그들은 역을 빠져나와 길을 가로질러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가 언제 올지 알 수 없었다. 선유는 애가 탔다.
마침내 그들이 올라탄 버스는 시골길로 들어섰다. 작은 다리를 건너자 도로 양옆으로 논이 펼쳐졌고 곧 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가 떠나자 살짝 흙먼지가 일었다. 희야라는 아이가 이런 시골에 살고 있다니. 시골에서 나고 자란 선유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아이와 나눌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벌써 마음 한구석 화로에 불씨가 피어오르는 듯했다.
“저기인가 봐.”
그녀는 도로 맞은편 논 한 가운데 지어진 몇 채의 건물을 가리켰다.
“건물이 논 한 가운데 있네.”
눈앞에는 얼마 전 모내기를 해 물이 고여있는 논이 펼쳐져 있고, 좀 더 멀리 오른쪽으로 커다란 조립식 냉동창고가 보였다. 그 옆으로 음식점과 집들이 모여있는 작은 마을이 시야에 들어왔다. 논 한 가운데 선 건물은 마치 섬처럼 고립과 침묵을 품고 있었다.
도로 건너 주유소 아래로 좁은 내리막길이 이어졌고 그 끝에 건물이 있었다. 급한 걸음을 옮기면서도 선유는 철렁철렁한 물 위에 돋아난 벼 이파리를 스치듯 바라보았다. ‘예쁘게도 자라네. 역시 어디서 자라는지가 중요해.’ 건물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이곳에 오게 될 줄은 꿈도 못 꾸었는데. 한 달 동안 있었던 일들이 꿈결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길 끝에 ‘사회복지법인 소망원’이라는 글이 새겨진 네모난 돌기둥이 서 있었다. 검은색으로 칠해진 육중한 철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두 사람이 문을 통과하자 오른쪽에 하늘을 찌를 듯 높이 뻗은 소나무 몇 그루가 반가운 듯 그들을 맞았다. 족히 수십 년은 이곳에 터를 잡고 자란 것 같았다. 소나무 뒤로 보이는 작은 축구장에서 “야, 여기, 여기!”, “씨, 공 똑바로 차!” 하는 남자아이들의 고함이 들려왔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아이 키만큼이나 큰 돌들로 테두리를 잡은 화단 가운데 우뚝 서 있는 둥근 모양의 소나무가 뒤에 있는 건물을 가리고 있었다. 그 왼쪽에는 세월의 풍상을 맞은 듯 휘어진 소나무 한 그루가 “원훈.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자”는 글귀가 적힌 나무판자를 엄마가 아이를 어르듯이 감싸고 있었다. 그 돌무더기 화단을 빙 돌아가니 비로소 이층으로 된 본관이 나타났다. 본관 오른쪽에는 하늘색 페인트칠을 한 일 층짜리 건물이 서 있었다. 본관 건물을 돌아 입구 쪽으로 가니 꽤 넓은 마당이 나타났고 흩어져 있는 다른 건물들이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게 보였다. 아이들이 생활하는 건물들인 것 같았다.
“생각보다 규모가 꽤 큰데?”
선유가 여기저기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렇군.”
호진이 응수했다. 마당에는 십여 명의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뭔가 놀이에 열중하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놀이하다 말고 갑자기 나타난 손님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고, 어떤 남자아이는 흰 이를 내보이며 “안녕하세요?”하고 소리쳤다.
‘저 아이들 속에 희야가 있을까?’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준 후, 궁금증을 억누르며 선유는 본관 정문으로 들어섰다. 호진도 곧 따라 들어왔다. 사무실 문을 두드릴 때 선유는 손끝에서 미세한 떨림을 감지했다. 심장이 쿵쾅대는 소리가 귓속까지 울려왔다.
“어서 오세요.”
검은 투피스 차림의 오십 대 후반 정도, 안경 너머 눈매가 조금 날카롭게 보이는 여성이 미소를 띠며 다가왔다. 빠르게 사무실 안을 훑어보다가 선유의 시선은 벽에 걸린 사진 한 장에 머물렀다. 6.25 전쟁 이후 소망원을 설립한 미국 선교사의 흑백 사진이었다. 소망원의 긴 역사가 그 사진 한 장에 봉인되어 있었다. 홀트에 입양을 의뢰하기 전에는 이곳에서 직접 아이들을 입양 보냈다는 사실을 선유는 임 소장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아이가 여기를 떠나 입양되었을까?’
“아이를 입양하시려는 동기를 여쭤봐도 될까요?”
잔잔한 꽃무늬가 새겨진 천으로 덮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국장은 부드러운 말투로 질문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질문이 떨어졌다. 선유는 침을 꼴깍 삼키고 그동안 무수히 생각하고 연습했던 말을 연극 대사를 읊듯 풀어냈다. 아이 없이 나이 들어가는 여자의 애환에 대해. 가족이 필요한 아이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은 소망에 대해. 국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이 웃었다.
“맞아요. 여자한테는 아이가 중요하죠. 아버님은 어떠세요?”
“저는 뭐, 아이 없이 지내도 괜찮은데. 아내가 간절히 원해서요.”
“어유, 아내가 원하신다고 따라주시는 거네요. 좋은 남편이시네요.”
호진은 부정하지 않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선유는 호진에게 강한 입양 동기가 없는 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지 국장의 표정을 살폈다. 국장은 더 이상 호진에게 질문을 하지 않고 다시 선유에게 말을 걸었다.
“희야는 여러 번 입양을 시도했는데, 쉽지 않았어요.”
“여러 번이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선유는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왜 희야는 아기였을 때 입양되지 못했던 것일까. 그 의문이 짙은 안개처럼 마음 깊은 곳에 깔려 있었다.
“글쎄 잘 모르겠어요. 아기 때도 보러 오신 분들이 있었는데 막상 입양하지는 않더군요. 건강에도 문제가 없었는데...”
국장의 얼굴에 잠시 안타까워하는 듯한 기색이 스쳤다. ‘희야를 일찌감치 입양 보내지 못한 책임감을 느끼는 걸까’. 선유는 궁금해졌다.
“작년에도 입양 갈 뻔했는데 결국 안됐죠. 그래서인지 희야에게 좀 상실감이 있는 듯 해요.”
상실감이라고? 뜻밖이었다. 분명 임 소장은 희야가 거절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희야가 상실감을 느낀다는 건 입양을 원했다는 말일까. 선유는 작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캐묻고 싶었지만, 초면에 실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꾹 참았다. ‘어차피 지난 일인데 따질 필요가 있을까.’ 국장은 계속 말을 이었다.
“희야가 아주 순하고 똑똑해요. 생활도 모범적이어서 가정으로 가면 잘 자랄 거예요. 여기 아이들이 모두 희야 같지는 않거든요.”
“혹시, 희야 말고도 입양 예정인 아이가 또 있나요?”
선유는 조심스레 물었다. 희야 말고도 다른 아이들이 있다면 보고 싶었다.
“희야와 동갑인 여자아이 한 명이 입양 절차 진행 중이고 그 외에는 없어요. 저희는 입양 보낼 아이를 심사숙고해서 결정합니다.”
선유는 국장의 말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마치 희야가 입양 대상 아동으로 특별히 선택되었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아이들은 왜 입양 대상이 되지 못한단 말인가. 그러나 첫 만남에 그런 질문 역시 실례라는 생각이 들어 선유는 그 궁금증을 담아 두었다. 희야가 가정에 가면 잘 자랄 아이라는 말이 희망의 씨앗처럼 마음의 화단에 떨어졌다.
“희야같이 이미 나이가 있는 아이는 금방 입양이 이뤄지지 않아요. 몇 개월 아이와 친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입양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렇군요...처음 들어보는 말이네요.”
선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 말에 더 안도감이 느껴졌다.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할 시간이 있다는 뜻이니까. 아이에게 선택할 수 있는 시간과 권리를 준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일단 오늘은 후원자라고 소개할게요. 입양 이야기는 차차 하시는 게 좋겠어요. 처음에는 여기 와서 만나시고 시간이 좀 지나면 하루 정도 집에 데려가서 지내보세요.”
“알겠습니다.”
처음 듣는 상세한 설명이 선유에게는 생소하면서도 신선했다. 이런 식으로 입양을 진행하는 거구나. 소영이는 부모를 만나고 며칠 뒤, 바로 집으로 데려갔다고 했다. 몇 달 뒤에야 입양 허가나 났다. 선유는 그것이 입양 전제 위탁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소영이는 더 어려서 빨리 보낸 것일까. 소영이도 천천히 진행했더라면 그 집에서 더 신중하게 결정하지 않았을까. 선유는 소영에 대해서도 묻고 싶었지만 공연한 참견인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희야 만나보셔야죠.”
“네. 그런데 희야가 몇 살인가요?”
“지금 일곱 살이에요.”
“일곱 살이요? 홀트 소장님은 다섯 살이라고 하셨는데요?”
“착각하셨나 보네요.”
국장은 살짝 미소 지으며 일어났다. 일곱 살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선유의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기이하리만치 꼭 맞물린 우연이었다.
“지금 희야 어디 있나요?”
“아마 마당에 있을 거예요.”
마당? 그렇다면 방금 그 아이들 가운데 희야가 있었다는 말인가. 선유의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운명적인 순간이라는 게 있다면 이런 느낌일 것이다. 호진을 처음 만났을 때조차 느껴보지 못했던 아주 낯선 감정이었다. 어쩌면 희야가 태어나기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순간일지도 몰랐다. 선유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