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소영이
소영이
소영이와의 짧은 동거가 시작되었다. 선유는 닷새 동안 소영이가 심심해하지 않게 매일의 계획을 미리 짜 두었다. 아침을 먹으면 무조건 밖으로 데리고 나가고 오후 다섯 시쯤 돌아와 저녁을 먹고 일찌감치 재우기로 했다. 잠은 침대 아래에 자리를 깔아주고 같은 방에서 자기로 했다. 뭘 해 먹여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는데 다행히 소영이는 가리지 않고 음식을 먹었다.
아파트 단지에서 도로 쪽으로 조성한 작은 공원에 벚꽃이 만개했다. 벚나무들이 바람결에 잎사귀를 흔들며 춤을 추었다. 은은한 벚꽃 향이 퍼져나갔다. 선유는 소영이의 머리를 두 갈래로 묶어주고 소영이가 직접 고른 소매 없는 보라색 원피스에 흰 티를 입힌 후 공원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매화 가지 두 개를 손에 들려준 뒤 브이 자를 그리는 소영이의 사진을 찍어줬다. 소영이는 한쪽 볼에 보조개가 쏙 들어가게 웃었지만, 수줍은 듯 쭈뼛거렸다. 그 어색한 표정에 선유의 가슴 깊은 곳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놀이터는 소영이의 무대였다. 소영이는 밧줄을 잡고 경사가 60도쯤 되어 보이는 나무 구조물을 원숭이처럼 재빠르게 올라갔다.
“이모, 여기 봐요.”
카랑카랑한 소영이 목소리가 들렸다. 선유가 미소를 지어주자, 소영은 쑥스러워하면서도 신이 난 듯 씩 하고 웃었다. 소영은 곧 정글짐으로 옮아갔다. 더 나이 많은 아이들보다 빠른 몸놀림으로 출렁이는 징검다리를 건넜다. 잠시 후에는 반원형으로 만든 철제 구조물로 달려가더니 몸을 숙이고 한발 한발 난간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해 보여 붙잡아주려고 선유가 달려갔다.
“괜찮아요, 이모. 저 혼자 할 수 있어요.”
소영이는 어느새 선유 키보다 높은 꼭대기에 올라가서 의기양양한 얼굴로 그녀를 내려보았다.
“와, 소영이 대단하다. 이모는 무서워서 못 올라가는데.”
소영이는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사시가 아닌 한쪽 눈동자만 둥그런 활모양으로 변했다. 소영이는 선유의 눈길을 의식한 듯 자꾸만 그녀 쪽을 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이모, 저 여기 있어요”, “이모, 빨리 와요.”를 연발했다. 소영이의 눈은 선유의 시선을 좇아 끊임없이 움직였다. 그렇게 놀이터를 탐험하며 두 시간 이상을 보냈다. ‘에너지가 엄청난 아이야. 혼자 저렇게 잘 노는데 왜 할머니와 부모가 힘들어할까?’
선유의 의문은 얼마 가지 않아 풀렸다. 오후 다섯 시쯤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아파트 입구에 거의 다다랐을 때 갑자기 소영이가 무엇에 홀린 듯 멈춰 섰다.
“소영아, 왜? 집에 들어가자.”
선유는 소영이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소영이는 입을 꾹 다물고 선유의 손을 뿌리쳤다. 이내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쏟아졌다. 엉엉 소리도 내지 않고 어깨를 들썩거릴 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선유는 당황했다.
“소영아, 왜 울어? 기분이 안 좋아? 집 생각나?”
난감해진 선유가 하는 이런저런 말들은 소영이를 움직이는 데 아무 소용이 없었다. 소영은 마치 어딘가 딴 세상에 가 있는 듯했다. ‘이거 어떡하지? 이런 얘기는 해주지 않았는데.’ 선유는 그냥 몇 발치 떨어져서 소영이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자석처럼 땅에 발이 척 달라붙은 듯 삼십 분 이상을 울던 소영은 저절로 울음을 멈췄다.
“이제 갈까?”
선유가 다가가 말을 걸었더니 발걸음을 떼었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소영이는 다시 깡충거리며 뛰어갔다. 그 뒷모습이 낯설고 아련했다.
집으로 들어온 소영은 거실 한쪽에서 자기 몸통의 반은 됨직한 큰 앨범을 낑낑거리며 가지고 왔다. 새우등을 하고 앉아서 한 장씩 넘기기 시작했다.
“이모, 이거 봐요.”
소영은 선유를 보며 사진을 손짓했다.
“누구야?”
선유는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소영이 옆에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가 웃고 있었다.
“오빠예요.”
선유는 소영이에게 한 살 많은 오빠가 있다고 들은 것이 기억났다. 소영이의 양부모가 낳은 친생자였다. 소영이와는 닮지 않은 아이. 나이 차이가 별로 없어서 소영이 할머니가 소영이를 미워하는 것일까. 나이 차이가 많은 형제가 있는 가정에 입양되었더라면 낫지 않았을까. 선유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엉클어졌다.
“오빠 좋아?”
“네!”
소영은 힘찬 목소리로 대답한 후, 오빠와 찍은 사진만 계속 보여줬다. 엄마, 아빠, 할머니와 찍은 사진은 없었다.
소영이가 보육원에서 찍은 사진들도 꽤 있었다. 그 사진 중에 어쩌면 희야가 있을지도 몰랐다. 선유는 아이들 얼굴 하나하나를 기억에 담아두려고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중 소영이와 유독 친해 보이는, 눈이 크고 하얀 살결의 남자아이가 있었다.
“얘는 누구야?”
“지운이요. 친구예요.”
“지금 어디 있어?”
“몰라요.”
소영이는 입양 전에 어디서 살았는지 잊어버린 듯했다. 하지만 지운이에 대한 기억만큼은 마음의 상자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마치 단절된 과거로 가는 작은 창문 같았다.
호진이 돌아올 시간이 되자 소영은 현관 앞을 얼쩡거렸다.
“이모부 언제 와요?”
“이제 곧.”
선유는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호진을 소영이가 기다리는 게 신기했다. 호진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소영이는 우렁찬 소리로 “이모부, 오셨어요?”하고 유치원에서 배운 대로 몸을 깊이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신이 나는지 거실 안을 뱅글뱅글 돌며 뛰어다녔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천연덕스럽게 호진의 무릎에 턱 하니 올라가 앉았다.
“소영이가 당신을 참 좋아하네.”
선유는 희야도 소영이처럼 호진을 좋아했으면 생각했다. 호진은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아이들은 왠지 호진을 좋아했다. “아마 당신의 순수하고 어린애 같은 면을 아이들이 알아보는 모양이야. 수준이 비슷한 거지.”라고 선유는 놀리듯이 말하곤 했다.
밤 열 시가 되어 침대 아래에 자리를 깔아주었다. 낮에 힘을 소진한 탓인지 금세 새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곱슬머리와 통통한 볼이 라파엘의 천사를 연상시켰다. ‘예쁘진 않아도 사랑스러운 아이야.’ 무사히 지난 하루에 안도하며 선유도 평소보다 일찍 잠을 청했다.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해서인지 몸이 무거워져 곧바로 잠에 빠졌다.
“엉..엉..엉”
잠귀가 밝은 선유는 곧 눈을 번쩍 떴다. 소영이가 몸부림을 치며 서럽게 울고 있었다. 손을 허공에 휘젓고 발을 버둥거리면서. 한밤중의 울음. 진영 엄마가 말했던 모습이었다. 선유는 우황청심환을 먹이지 않고 소영을 진정시키고 싶었다. 선유는 우는 소영이를 달래 거실로 데리고 나왔다.
“소영아, 꿈꿨어?”
아무 대답이 없었다. 소영은 또 다른 세계에 가 버린 듯했다. 무엇이 이리도 서러운 것일까. 선유는 다섯 살 아이가 자다가 이토록 깊고 무겁게 울음을 터뜨리는 걸 처음 봤다. 어딘가 찢겨 나간 듯한 울음이었다.
“우리 소영이가 슬픈가 보다.”
어떤 말도 소영이의 영혼에 가 닿지 않았다. 선유는 소영이의 등을 토닥여 주기도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하다가 결국 그냥 울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한 시간이 지나도록 소영의 울음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선유는 진영 엄마가 준 우황청심환을 소영의 입에 넣어주었다. 소영은 거부하지 않고 약을 꿀꺽 삼켰다. 잠시 후 소영의 울음이 멈췄다. 선유는 다시 소영을 방으로 데리고 가 자리에 눕혔다.
지친 소영은 곧 잠이 들었다. 가슴이 잔잔히 들썩였다. ‘매일 이렇게 울면 얼마나 힘이 들까.’ 선유는 이제야 조금 소영이의 부모와 할머니가 겪는 고충이 이해될 것 같았다. 소영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트라우마가 있기에 이렇게 서러운 울음을 쏟아내는지, 어떻게 하면 소영이의 마음을 안정시켜 줄 수 있을지 그 집 어른들은 이유도, 방법도 알지 못할 것이다. 얼마나 답답할까. 소영이의 트라우마가 뭔가 출생과 연관되어 있을 거 같다는 막연한 생각만이 어지러이 나는 새들처럼 선유 머릿속을 떠돌았다. 큰아이를 키우는 일의 무게를 실감하기 시작했다. ‘희야도 이렇게 자다가 깨서 울까. 그럼 어떡하지?’ 덜컥 겁이 났다. 선유는 다시 잠을 청해보았지만, 머릿속에 낯선 감정들이 까마귀 떼처럼 몰려들었다. 결국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새벽을 맞았다.
이틀이 지나자, 소영이의 표정이 밝아지는 게 눈에 뜨일 정도였다. 처음에 눈치를 살피던 소영이가 응석을 부리기까지 했다.
“이모, 업어주세요.”, “안아 주세요.”
선유는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에 소영이의 모든 요구에 응해주었다. 그러나 소영이는 요구가 많은 아이가 아니었다. 혼자 세수하고 이빨을 닦았다. 빨아서 말린 양말을 쌓아놓으면 “이모, 제가 할 수 있어요.” 하며 양말을 반으로 접고 예쁘게 한쪽 구멍에 말아 넣었다.
“어, 이모보다 더 잘하는데!”
칭찬하면 얼굴이 발그레해지고 입이 귀에 걸렸다. 저녁을 준비하고 있으면 “이모, 제가 도와드릴게요.” 하며 옆에 와 통통하고 작은 손으로 채소를 씻었다. 소영이는 너무 일찍 혼자 살아남는 법을 배워버린 아이 같았다. 희야란 아이도 그럴까.
소영이는 얘기하는 걸 좋아했다. 맥락이 없어서 내용을 연결하고 추리해야 했지만, 손을 휘저어가며 얘기하는 모습이 앙증맞았다. 호진과 둘이 지내는 조용한 저녁 시간에 익숙했던 선유는 집안에 아이가 생겨 활력이 도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입양 후의 집 분위기가 상상 속에 떠올랐다. 늘 아이의 움직임과 목소리가 들리는 일상이라니.
“이모, 도둑 올 것 같아요.”
첫날에 곧 잠들었던 소영이는 이틀째부터 자기 전에 불안해했다. 현관 쪽을 자꾸만 쳐다보며 무서워했다. ‘왜 도둑이 올까 봐 무서워할까?’ 선유는 소영이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아냐, 도둑 오지 않아. 이모부가 있으니까 무서워하지 마.”라며 안심시키려 애썼다. 그래도 소영이는 몇 번을 더 묻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세 시쯤에는 여지없이 깨어 전날과 똑같이 울었다. 선유는 진정시키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우황청심환을 바로 먹여 재웠다. 소영이가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점점 늦춰졌다. 열한 시가 다 되어서야 잠에서 깨었다. 하루가 짧아졌다. 점심을 먹고 밖에 나가 저녁 시간에 돌아오면 하루가 금방 가 버렸다. 선유는 소영이가 오후 다섯 시만 되면 자리에 멈춰 우는 모습에도 금방 익숙해졌다.
닷새가 훌쩍 지났다. 선유의 몸은 고되었지만, 하루하루 벅찬 감동의 파도가 일렁였다. 소영이의 낯빛이 놀라울 정도로 밝아졌다. 어색했던 표정에 미소가 피어나고 고집스러웠던 아이가 선유의 말을 따르기 시작했다. ‘나 꽤 잘 해내고 있는걸. 아이
키우는 재능이 있나 봐.’ 자신감이 차올랐다.
선유는 한번 소영의 엄마와 전화 통화를 했다. 소영의 엄마는 소영이와 시어머니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소영 엄마의 목소리에는 소영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 있었다.
“그렇게 힘드시면 시어머니와 따로 사시는 게 어떠세요? 아이가 우선 아닐까요?”
“그래야 하는데, 형편이 여의치 못해요...”
소영이의 집에는 말 못 할 만한 사정이 있는 게 분명했다. 남의 집 일에 관여할 자격은 없었다.
마지막 날이 되자 약속대로 소영이의 부모가 소영이를 데리러 왔다. 소영이 아빠는 키가 크고 마른 체구에 거무스름한 피부였다. 선유는 그의 눈빛이 다소 날카롭다고 생각했다. 소영이의 엄마는 남편보다 키가 훨씬 작고 소박한 차림을 한 평범하고 선량한 주부였다. 엄마를 보자마자 소영이는 “엄마!”하고 달려갔다. 소영 아빠는 심란한 표정으로 엄마에게 매달려 있는 소영이를 잠시 관찰하더니 “소영이 표정이 많이 밝아졌네.”라고 말했다. 선유는 자신의 노력이 인정받는 기분이 들어 뿌듯했다. 소영 아빠가 감사의 표시로 식당에서 점심을 대접했다. ‘좋은 분들인 것 같은데 안타까워.’ 선유는 소영이 할머니만 아니라면 이 부부가 얼마든지 소영이를 잘 키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영이 아빠는 “애가 울지만 않으면 괜찮은데...”라며 아쉽다는 듯 똑바른 자세로 옆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 소영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호진, 선유 앞에서 그동안 보였던 소영이의 활달한 모습은 온 데 간 데 자취를 감췄다. 선유는 ‘사랑으로 잘 받아주시면 좋아질 수 있을 거예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주제넘은 참견에 불과할 테니까.
식사를 마치고 소영 아빠가 선유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이미 소영의 짐을 차에 실어서 선유만 차에서 내리면 그대로 소영이와는 이별이었다. 그런데 선유가 차에서 내리자 갑자기 소영이가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머리를 차 밖으로 빼고 선유를 따라 내리려고 했다.
“소영아, 집에 가야지.”
아빠의 말이 떨어지자, 소영이는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지며 다시 차 안으로 들어갔다. 다람쥐가 나무에 파인 구멍으로 쏙 들어가 버리듯이. 선유의 가슴이 어딘가에 쓸려 상처 난 듯 아려왔다. ‘소영이가 집에 가기 싫은 걸까. 우리 집에 더 있고 싶은 걸까.’
“소영아, 잘 가. 안녕.”
‘또 보자’라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이대로 영영 소영이를 다시는 볼 수 없는 걸까. 소영이는 엄마 옆에 몸을 곧게 세우고 앉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선유는 거실로 들어와 주저앉았다. 눈물이 흘렀다. 처음엔 조용히, 이내 폭포같이 쏟아졌다. 집 구석구석에 세제가 세탁물에 스며들 듯이 소영이의 자취가 배어났다. 닷새 만에 이렇게 정이 들 수 있을까. 잠시 임시로 만든 둥지에 머물렀던 작은 새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소영이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 어린아이가 눈치를 보며 그 집에서 살아내야 하는 현실이 기가 막혔다. 선유는 할 수만 있다면 소영을 구해내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무력감이 주저앉은 선유의 몸을 내리눌렀다. ‘나중에 꼭 소영이를 다시 만나야지. 입양하고 나면 그 가정하고 교류할 수 있을 거야. 어쩌면 도와줄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선유는 애써 이런 생각으로 자신을 위로했다. 한 시간을 펑펑 울고 나서야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다음 날 임 소장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소영이랑 지내기 어떠셨어요?”
선유는 간단하게 보고하듯 이야기했다. 그러자 임 소장은 다짜고짜 “혹시 소영이 입양할 생각 없어요?”라고 물었다. 선유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네? 가정이 있는 아이를요?”
“아무래도 그 집에서 못 키울 것 같아요. 선유님이 키우면 좋을 것 같은데...”
“아니에요. 전혀 그럴 생각은 없어요.”
선유는 딱 잘라 거절했다. 어떻게든 소영이가 그 가정에 안착하는 게 최선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소영이의 사정이 딱해도 파양한 아이를 키우는 건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상처까지 감싸 안을 자신은 없었다. 선유는 몰랐다. 파양된 아이도 입양되어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몇 년 뒤, 그녀는 우연히 소영이가 파양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역시 이유는 할머니였다. 선유의 가슴 한쪽이 뻥 뚫리는 것만 같았다. 희야를 만나기 전에 입양의 세계로 선유를 들여보내 주었던 소영이. 이제는 그 아이를 결코 만날 수 없었다. “이모, 이모”하던 소영이의 맑은 목소리가 허공에 떠돌며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