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지는 아이

6화 시험

by 별지킴이

시험


임 소장은 홀트에서 입양 업무를 십 년 이상 해온 베테랑이었다. 그녀를 통해 백 명이 넘는 아이들이 국내와 해외에서 새 가정을 찾았다. 그녀는 입양 상담을 하러 오는 부부들을 첫눈에 알아보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아이를 소개해야 할지, 입양이 성사될지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경험이 쌓여도 정답만을 고를 순 없었다. 최근 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머리가 송곳으로 콕콕 찌르듯 쑤셨다.

경기도에 사는 한 가정으로 입양되었던 소영 엄마에게서 며칠 전 연락이 왔다. 소영이는 입양한 지 아직 채 일 년이 되지 않았다. 소영이가 집에 간 첫날부터 잠을 자다가 정확히 새벽 세 시쯤 되면 깨어 한 시간이 넘게 울곤 한다는 걸 임 소장은 알고 있었다. 좀 지나면 나아지겠거니 했지만 이제 다섯 살이 된 소영이의 습관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었다. 가족들의 인내는 한계를 넘어섰다. 특히 소영이의 할머니가 스트레스로 우울증에 걸렸고 아이를 다시 보육원에 데려다주라고 소영이의 부모를 압박했다. 소영 부모는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급기야 소영 엄마는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소영이가 지내던 보육원으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일주일만 맡아달라고 하고는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임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설상가상으로 보육원 국장도 아이를 맡아줄 수 없다며 임 소장의 탓이기라도 하듯 항의했다.

임 소장은 즉시 보육원으로 달려가 소영을 차에 태웠다. 그리고 이 년 전에 같은 보육원에서 남자아이를 입양한 진영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영 엄마, 좀 도와줘요.”

“무슨 일인데요, 소장님?”

“소영 엄마가 애를 보육원에다 데려다 놨어요. 시어머니가 파양하라고 한대요. 일

주일 정도 시간을 주면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보겠다는데 보육원에서는 애를 더 맡아줄 수 없다네.”

“아고...”

진영 엄마가 깊은 탄식이 들려왔다.

“며칠만 진영 엄마가 데리고 있을 수 있을까요? 아이가 가정에서 지내야지...”

“데려오세요. 며칠 못 데리고 있겠어요?”

진영 엄마가 선뜻 승낙하자, 임 소장은 곧장 진영이네로 차를 몰았다. 소영이를 진영 엄마에게 맡기고 돌아와서 앞으로 소영이가 입양된 집에서 정착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머리에 대못처럼 박혀 지끈거렸다. 만약 파양이라도 하게 된다면...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땐 왜 그렇게 성급했을까.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봤어야 했는데. 하지만 임 소장은 후회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소영이를 위한 최선의 길을 찾아야 했다.

어느 순간, 소영이와 선유가 임 소장의 머릿속에서 자연스레 연결됐다. ‘그 엄마가 큰아이를 입양할 수 있을지 한번 알아봐야겠어. 소영이를 며칠 맡겨보자.’ 임 소장은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성격이었다.

임 소장의 번호가 뜨자 선유의 온몸에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퍼져나갔다. 막 산책에서 돌아와 얼마 남지 않은 번역을 마무리 지으려고 낡은 책상 앞에 앉으려던 참이었다.

“어려운 부탁이 있어요...”

“부탁이요?”

선유는 의아해하며 커피잔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임 소장은 소영의 사정을 설명하고 닷새만 아이를 맡아줄 수 있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닷새나요?”

선유는 잠시 망설였다. 다섯 살 아이를 돌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닷새씩이나. 하루 종일 아이와 무엇을 하고 지낼 것인가. 밥은 뭘 해서 챙겨 먹일까. 자다가 깨면 어떻게 달래지...이런 질문들이 빠르게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데 왠지 해보고 싶었다. 스스로 시험해 보고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소영의 사정이 딱했다. 아이를 그렇게 방치하다니. 게다가 들어보니 소영이는 희야와 같은 보육원에서 자랐다고 했다. 뭔가 보이지 않는 끈이 그들을 엮어주는 것만 같았다.

“네, 한번 해 볼게요.”

다음 날, 임 소장이 선유를 태우고 진영이네로 달렸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진영의 엄마와 여자아이가 나란히 선 채 선유와 임 소장을 맞았다. 곱슬곱슬한 단발머리에 통통하고 발그레한 볼을 가진 고양이 눈을 닮은 여자아이가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선유는 아이의 한쪽 눈은 약간 사시라는 걸 금방 알아보았다. 주황색 티를 입은 윗배가 살짝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아이는 임 소장님과 선유를 보자 흥분한 듯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그러더니 진영이 엄마가 찻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마자 선유 옆에 와서 찰싹 달라붙어 앉았다. 선유는 속으로 흠칫 놀랐다. 한편으로는 소영이가 친근하게 굴어 돌보기가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영아, 이 아줌마 따라갈래?”

임 소장님이 물었다.

“네.”

소영이는 천진하고 낭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옮겨 다니는 게 익숙해져 낯섦이라는 걸 모르는 아이 같았다. 선유의 마음 한구석이 조용히 저렸다. 진영 엄마는 소영이가 자다 깨서 울면 쉬 잠들지 못하니 그때는 우황청심환을 먹이라며 한의원에서 지어온 약을 선유에게 건네주었다. 청심환 알이 콩알만큼 작았다. 진영 엄마가 소영이의 짐을 내왔다. 옷가지가 시장바구니 하나에 가득했다. 거기에 앨범 두 개, 인형, 장난감, 크레파스, 머리끈...잠깐이라더니 이삿짐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정말 소영이를 다시 데려가기나 할 건가. 임 소장이 소영의 짐을 차에 실을 때 선유는 자기 집이 소영이가 옮겨 다니는 마지막 장소이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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