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첫걸음
첫 걸음
선유는 입을 꾹 다물고 코로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휴대폰을 들고 방금 찾은 기관의 전화번호를 누르자,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젊은 여성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선유는 자신의 목소리에서 미세한 떨림을 감지했다. 막상 전화를 걸었지만,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랐다. 준비한 말들이 새 떼처럼 흩어졌다. 순간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네, 홀트 사무소입니다. 무슨 일로 전화하셨나요?”
“저...아이를 입양하고 싶어서요. 어떻게 하면 되나요?”
“잠시만요. 소장님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기다리세요.”
이번에는 경쾌한 음악으로 바뀌었다. 몇 분이 지났는지 선유는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지 못했다. 바쁜가. 왜 이리 전화 연결이 더디지. 소장이 무성의하게 대답하면 어떡하지. 입양하기 어렵다고 딱 자르면 어떻게 말하지. 선유의 머릿속은 고장 난 컴퓨터처럼 빠르게 움직였지만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여보세요?”
마침내 전화기 너머로 시원시원한 음성이 들려왔다. 중년의 여성 같은데, 뭔가 중성적인 느낌이 드는 목소리였다. 선유는 다시 한번 입양하고 싶어서 전화했다고 말했다.
“아, 그러세요? 그럼, 사무소로 한번 오세요. 언제 오실 수 있으세요? 장소는 아세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바로 찾아오라고? 여러 질문을 예상했던 선유는 작게 ‘후’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토요일에 가도 될까요?”
“그러시겠어요? 그럼 열한 시쯤 오시겠어요?”
“네, 그때 찾아가겠습니다.”
“네, 토요일에 뵐게요.”
말투에서 묻어나는 친절함에 선유는 조금 용기가 솟는 듯했다.
그녀는 눈이 크고 동그란 귀여운 아이를 좋아했다. 까맣고 동그란 눈을 한, 수줍은 미소를 띤 일곱 살 여자아이가 그녀의 눈이 닿는 곳마다 서 있었다. 그녀는 길에서 만나는 여자아이들을 유심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머리를 두 갈래로 묶은 아이, 분홍색 리본 핀을 꽂은 아이, 푸른색 엘사 드레스를 입고 팔락거리며 뛰어가는 아이, 앙증맞은 빨간 구두를 신은 아이, 엄마 손을 잡고 폴짝거리는 아이...그 아이들 속에 희야와 닮은 아이가 있을지도 몰랐다.
선유의 가슴은 밀물이 차오르듯 부풀어 올랐다. ‘나에게도 조금 있으면 저런 딸이 생기겠지?’ 꿈만 같은 일이 현실이 될 거라는 생각에 그녀는 행복했다. 자꾸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눈물이 차올랐다. 7동 뒤 둘레길에는 마침내 벚꽃이 솜사탕 같은 엷은 분홍색 꽃망울을 터뜨렸다. 이름 모를 작은 새들이 짹짹거리고 벌들이 윙윙대며 벚꽃이 벌인 향연을 즐겼다. 코끝에 향긋한 꽃내음이 내려앉았다. 아지랑이가 어른거리고 공기는 설렘으로 출렁거렸다. 길가의 나무들은 아기 손가락 같은 연두색 이파리를 내밀어 본격적인 봄의 도래를 알렸다.
토요일 아침. 따뜻한 봄볕이 천지에 가득했다. 지도상으로 홀트 사무소는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걸리는 D 시의 동쪽에 있었다. 선유의 가슴에는 형언할 수 없는 긴장감과 벅찬 감동이 두 강물이 합쳐지는 지점에서처럼 섞여 휘돌아 감기고 있었다. ‘그런 생각으로는 입양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말을 듣게 되더라도 쉽게 물러서지 않을 거야. 입양 의사가 확고하다는 걸 꼭 보여주겠어.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선유는 의식적으로 그 생각을 밀쳐냈다.
버스가 도시에서 가장 큰 도서관 건물을 끼고 돌자 비스듬한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집들이 듬성듬성해지고 나지막한 산자락이 도로 오른편으로 이어졌다. 잠시 후 왼편에 아담한 건물 하나가 나타났다. ‘홀트아동복지회’라는 글자가 선명히 시야에 들어왔다. 그 아래에는 ‘미혼모 쉼터’라는 글자도 함께 적혀 있었다.
“어서 오세요”.
이층 사무실에 들어서자 활달한 목소리가 가벼운 웃음소리와 함께 다가왔다. 짧은 커트 머리에 바지 차림, 예상대로 오십 대 정도 되어 보이는 여성이었다. 선유는 터프한 느낌을 주는 그녀의 인상이 중성적인 목소리와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 드시겠어요? 커피 드릴까요?”
“네, 커피 주세요...”
소파에 앉으며 선유는 빠른 눈길로 사무실 내부를 훑어보았다. 창가에 놓친 커다란 책상 위에 온갖 서류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일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입양 사무가 이렇게 많은 걸까. 꽤 넓은 사무실의 벽에 기댄 책장에도 온통 서류들이 들어차 있었다.
“하, 요즘 일이 정말 많아서...입양을 원하신다구요? 성별은 생각하고 계셔요?”
소장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선유의 눈을 쳐다보고 물었다. ‘아니, 이렇게 바로? 왜 입양하고 싶냐는 질문도 안 하고?’ 선유는 당황했다.
“여자아이요.”
“요즘은 여자아이를 많이들 원하시죠. 몇 살 정도 아이를 원하세요?”
선유는 이렇게 빨리 실제적인 질문이 이어지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한편으로는 입양 동기를 자세히 설명해야 하는 어려운 절차를 건너뛴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한 다섯 살에서 일곱 살 정도면 좋겠어요.”
선유가 이렇게 말한 건 일곱 살이라고 말하면 너무 나이를 제한하는 것으로 들릴 수 있어서였다.
“그런 아인 이 도시에 없습니다.”
사무실을 떠나려는 선유를 붙들어 세운 소장이 건넨 종이에는 아이의 기본 정보가 적혀 있었다. 이름은 희야. C 시의 한 병원에서 출생. 태어난 지 이틀 후 근처 보육원에 맡겨졌음. 생모 000 생부 000, 출산 당시 생모의 나이 0세, 생부의 나이 0세. 그리고 생모의 가정환경과 임신과 출산 과정 등.
“이거 주실 수는 없나요?”
“정보는 드릴 수가 없게 되어 있어요.”
“네...”
선유는 한 자라도 놓칠세라 천천히 서류를 훑었다. 하지만 가슴이 두근거려서인지 낱말들이 눈앞에서 흐릿하게 겹쳤다. 그 정보 하나하나가 아이에게 얼마나 중요한 퍼즐 조각들인지 선유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생모의 나이가 생각보다 너무 어리다는 내용에 부딪힌 순간 멈칫했다. ‘괜찮을까. 나중에 아이가 알면 큰 충격을 받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은 선유에게 당장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가난했던 생모의 가정형편과 생모의 나이만으로도 왜 아이를 키울 수 없었는지 선유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 사진은 없나요?”
“네, 사진은 없어요. 작년에 희야를 입양하려는 부부가 있었는데, 보육원에서 저희에게 의뢰가 와서 자료가 남아있었어요.”
“그래요? 근데 왜 입양을 안 한 거예요?”
선유의 귀가 확 뚫리는 것 같았다. 왜 포기한 걸까. 희야 이야기가 단숨에 마음을 끌었다.
“공무원 부부였어요. 공을 많이 들였죠. 심리검사도 했는데...”
소장은 몇 장의 심리 검사지를 건넸다. 선유는 소장의 말을 더 듣고 싶어 결과지를 대충 넘겼다.
“희야가 그 부부에게 끝내 마음을 열지 않았어요. 마지막에 희야가 싫다고 했대요. 애가 똑똑한 거죠. 결국 자신감을 잃고 포기하셨어요.”
소장은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선유의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남편은 고등학교 교사, 아내는 대학 강사시니, 조건은 좋아요. 하지만 희야는 쉽지 않은 아이예요.”
그러나 선유는 동요하지 않았다. 희야라는 아이가 싫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현했다는 게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아이라면, 우리가 아닌 그 아이가 우리를 선택하는 거다. 좋아, 그편이 낫다. 난 선택받을 자신이 있어. 안 되면 다른 아이를 찾으면 되지. 선유는 분명 그들에게 올 아이가 있다고 확신했다.
“그 아이 만나보고 싶어요.”
“그러실래요?”
소장은 못내 아쉬운 눈치였다. 과연 이 부부가 희야를 입양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는 듯했다.
“잘 생각하세요. 좀 큰아이들은 나이에 둘을 곱해야 해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아기 때부터 키운 게 아니라서 적응하는 과정이 어려워요. 진짜 내 자식 만들려면 나이보다 두 배의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에요.”
선유는 처음 들어보는 그 말이 영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게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니. 수학 공식처럼 그걸 계산할 수 있을까. 다섯 살 아이가 내 자식이 되려면 열 살은 되어야 한단 말인가. 설령 그 말이 사실이라 해도 그것 때문에 주저할 수는 없었다. 선유의 마음은 앞에 닥칠 파도 너머 저 멀리 평온한 수평선을 향해서만 달려가고 있었다.
“일단 아이 만나볼게요.”
“잠시만요.”
소장은 휴대폰을 들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 안녕하셨어요? 희야 만나길 원하는 부부가 계시는데 찾아가도 될까요?...네. 아, 그럼 두 주 후 토요일에 가면 되겠죠?”
소장은 선유에게 눈짓으로 괜찮겠냐는 신호를 보냈다. 선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주. 마음 준비하려면 그 정도 시간은 필요할 거야. 소장은 보육원 국장의 전화번호를 선유에게 알려주었다.
“그 전에 제가 연락 다시 드릴게요.”
홀트 건물을 나설 때 선유의 감정은 들어설 때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어려운 질문들을 예상하며 긴장했던 근육이 다 풀려버렸다. 불과 한 시간도 안 되어 막연했던 입양이라는 사건이 현실로 들어와 있었다. 두 주 후면 희야라는 아이를 만난다. 그 아이를 입양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이름부터가 친근했다. 따뜻했던 공기는 정오가 되면서 약간 뜨거워졌다. 4월치고는 더운 날씨였다. 선유의 혈관을 흐르는 피가 뜨거워져서인지도 몰랐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들에 선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버스에 오른 선유가 창가 자리에 앉아 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 버스 천장에서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왔다. 정오의 음악방송. 그런데 방송 진행자가 하는 말이 뜻밖이었다. 진행자는 해외 입양보다 국내 입양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전문가와 나누고 있었다. ‘와, 너무 신기해!’ 선유는 흥분해서 안색이 붉게 상기되었다.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난 한 달 설교 시간에 목사님이 세 번 입양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것도, 홀트를 찾아간 날 라디오 방송에서 입양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분명 우연이 아니었다. ‘하나님 뜻인 거야.’ 선유는 그 순간 입양을 이미 확정된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 아이가 희야가 맞을까.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이 달라 보였다. 그 세상에는 희야라는 아이가 존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