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다시 낯설어진 아이
다시 낯설어진 아이
드디어 호진에게 자동차가 생겼다. 아버지가 십 년 넘게 몰던 낡은 차였다. 서울에 사는 외사촌 남동생 정훈이 차를 몰고 내려왔다. 호진의 아버지는 이 년 전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집에만 머물고 계셨다. 몇 년째 주차장에 서 있기만 하던 차를 이제 아버지는 호진에게 넘겨주었다. 호진은 정훈에게 희야를 소개하며 말했다.
“아직 부모님은 모르셔. 우리가 조만간 직접 말씀드릴 테니까 외삼촌과 숙모에게는 아는 척하지 마.”
“알겠어요, 형. 그래도 고모와 고모부는 손녀가 생겨서 좋아하시겠네요.”
정훈은 호진이 희야를 처음으로 보여준 친척이었다. 낯선 희야에게 장난을 치며 친근하게 다가가는 정훈이 호진은 고마웠다. 하지만 곧 희야를 부모님께 소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두 분이 과연 희야를 받아주실 수 있을까. 오랫동안 아이를 기다리셨는데, 혹시 서운해하시거나 호통을 치시지는 않을까. 그 생각이 들 때마다 아랫배가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10월의 어느 토요일. 마흔다섯 살의 호진은 생애 처음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희야가 아니었으면 평생 운전할 일이 없었을 거야.”
엷은 보라색 셔츠에 진한 보라색 넥타이를 맨 호진에게 선유가 살짝 놀리듯 말했다. 선유 역시 진한 보라색 원피스에 남색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집을 나섰다.
이날은 해마다 열리는 도내 보육원들의 연합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희야는 여름 방학 때부터 집에 올 때마다 이 행사에 대해 종종 이야기하곤 했다.
“거기서 희야는 뭐해?”
“우리는 에델바이스를 불러. 매일 강당에서 연습해.”
“그럼, 영어로 부르는 거야?”
“응.”
희야의 얼굴에 자랑스러움이 묻어나 있었다.
“오, 진짜? 희야 한번 해 볼래?”
희야는 노래를 부르는 동안 선유와 호진이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을 의식했다.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에브리 모닝...”
서툰 영어였지만 희야는 외운 만큼 열심히 노래하며 고개를 까닥거렸다. 선유가 손뼉을 치며 물었다.
“우리 희야, 잘하네. 아이들이 다 같이 합창하는 거야?”
희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런데 다연이가 중간에 혼자 부르는 데가 있어.”
호진이 이어 물었다.
“다연이가 노래를 잘하나 보네?”
“다연이가 소망원에서 노래를 제일 잘해.”
희야의 목소리에는 자기도 모르게 부러움이 묻어났다. 선유는 다시 물었다.
“그래? 희야도 혼자 노래 부르고 싶어?”
희야는 그런 일이 생겼다가는 큰일이라는 듯 고개를 단호하게 흔들었다.
“난 노래 못 해. 다연이는 대단해. 사람들이 많아도 큰 소리로 노래해. 내가 혼자 부르면 목구멍이 막혀서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을 거야. 그런데 다연이는 하나도 떨지 않고 가사도 안 까먹어. 꿈이 가수가 되는 거래.”
해마다 행사가 돌아올 때면, 희야는 다연이의 얼굴과 몸에서 빛이 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연이 엄마는 한 번도 행사장에 오지 않았다. 희야는 무대에 서는 게 겁이 났지만, 소망원이 일등을 차지했으면 좋겠다는 일념으로 그날을 기다렸다.
선유는 운전이 서툰 호진을 믿지 못해 고속도로에서 몇 번 고성을 질렀다. 한 시간 남짓 지나자, 고속도로 오른쪽으로 커다란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00도 보육원 연합행사’라는 플래카드가 입구에 걸려있었다. 두 사람은 꽃다발을 입구에 맡기고 행사장 안으로 들어섰다. 제법 큰 홀에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홀 곳곳에는 스무 개 정도 되는 보육원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아이들은 각양각색의 복장을 맞춰 입고 앉아 있거나 바삐 돌아다녔다. 홀 뒤쪽 좌석엔 아마 후원자들인 듯한 이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와글와글 떠들고 웃는 소리로 홀은 생기에 넘쳐있었다. 아이들의 표정에는 흥분과 긴장이 뒤섞여 있었다. 이렇게 많은 시설 보호 아동들을 한꺼번에 마주하니 선유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이 많은 아이가 부모의 품이 아닌 데서 자란다는 생각에 가슴 한쪽이 콕하고 쑤셔왔다.
선유의 눈길은 희야를 찾아 바삐 움직였다. 저만치 앞에 오리 방 여자아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 사이에 희야가 보였다. 아이들은 모두 청바지에 흰 티를 맞춰 입고 있었다. 희야는 앞머리가 짧고 가지런히 잘려있었고 머리 뒤로는 큰 흰색 리본이 달려있었다. ‘아유, 귀여워.’ 선유는 흐뭇한 미소를 띠고 희야 쪽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안녕하세요, 후원자님!”
선유를 맨 먼저 알아본 영은이가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그 옆에 앉은 희야는 딱딱한 표정으로 잠깐 두 사람을 힐끗 보고는 인사도 하지 않고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인사조차 하지 않고서. 선유는 예상과 다른 희야의 행동에 선유는 잠시 멈칫했다. ‘왜 그러지, 갑자기?’ 희야 옆으로 와 이 말 저 말 시켜보아도 시큰둥하긴 마찬가지였다. 실망감에 조금 무거워진 마음으로 선유는 희야 옆자리에 앉아 아이들이 공연할 차례를 기다렸다. 다른 팀들의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희야는 앞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선유는 자주 희야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뿌연 안개 속 같은 그 마음을 헤아려보려 애썼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친해졌다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을까. 지난 삼 개월을 뒤로 건너뛰어 6월로 돌아가 버린 것만 같았다.
지루한 내빈 소개가 끝나고 비로소 공연이 시작되었다. 스무 개 팀의 춤과 연극, 합창, 연주 등 다양한 공연이 차례로 이어졌다. 다채로운 복장과 다양한 도구들, 아이들의 해맑은 목소리, 악기의 연주가 어우러져 한바탕 즐거운 향연이 펼쳐졌다. 아이들이 이날을 위해 몇 달 동안 땀 흘려 연습했으리라고 생각하니 코끝이 찡해왔다. ‘저 모습을 아이의 부모들이 와서 보아야 하는데.’ 아이마다 자기 한 명만을 바라봐주는 누군가가 있어야만 했다. 그 당연한 한 사람을 갖지 못한 아이들의 현실에 선유는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퍼질 때마다 선유의 마음이 점점 뜨거워졌다. 왜? 왜? 이렇게 아이들이 부모 없이 자라야 하는 걸까?
선유는 유독 다른 보육원의 다섯 살 정도 되는 여자아이들과 남자아이들에게 눈길이 갔다. 아이들의 움직임과 목소리, 표정에서 선유는 사랑과 관심에 대한 갈구, 그리움이 묻어나는 듯했다. ‘저 아이들은 입양 대상에 포함되어 있을까. 그것도 시설장이 결정할 텐데.’ 입양 대상 아동이 한 명도 빠짐없이 다 가정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가슴을 저몄다. 우리나라에는 왜 이렇게 시설 보호 아동들이 많은 것일까. 지난 몇 달 동안, 보육원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에 관한 관심이 계속 커져만 갔다. 모든 아이를 입양할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이라도 찾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자라났다.
드디어 소망원 차례였다.
“희야, 잘해. 파이팅!”
선유가 응원했지만, 희야는 아무 반응도 없이 언니들의 뒤를 따라 무대 아래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첫 순서는 도레미 송이었다. 희정 이모는 영화 주인공처럼 앞치마를 두르고 솔이 언니는 짧은 드레스를 입었다. 영은 언니와 다연이는 깡충깡충 뛰면서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불렀다. 희야는 그 노래를 배우지 못해서 언니들과 다연이가 부러웠다. 희야에게 도레미 송을 부르라고 한다면 절대 못 했을 것이다.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은 희야에게 엄청난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에델바이스는 아이들 전체가 부르는 거라 긴장이 덜했다.
세 줄로 늘어선 아이들이 오십 명이 넘었다. 키가 작은 희야는 맨 앞줄, 게다가 거의 정중앙에 섰다.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에브리 모닝 유 그릿 투 미...”
아이들은 연습한 대로 손을 뒷짐 지고 몸을 오른쪽 왼쪽으로 흔들면서 노래했다. 희야는 속으로는 떨렸지만, 겉으로는 조금도 긴장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한 번도 입을 다물지 않고 외운 대로 열심히 노래했다. 옆 아이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거나 뒤를 돌아보는 동안, 희야는 끝까지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다. 무대에서 내려올 때까지, 희야는 가사를 까먹지 않으려고 애썼다. 관객 속 선유와 호진이 자신을 보는지조차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관객석에서 앉아 있는 선유에게는 오로지 희야만 보였다. ‘저 아이가 내 딸이야, 내 딸!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선유는 오랫동안 가질 수 없을 줄 알았던 선물 보따리를 두 손 가득 안은 것처럼, 벅찬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그날따라 희야의 양 볼이 통통하고 발갛게 상기되어 더 예뻐 보였다. 늘 어딘가 단정하지 않았던 머리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뒤에 묶은 크고 흰 리본도 잘 어울렸다. 살짝 튀어나온 배마저 깜찍해 보였다. ‘어쩜 떨지도 않고 저렇게 의젓할까.’ 선유는 보통 엄마들이 무대에 선 자녀를 보며 느끼는 그 자랑스러움과 뿌듯함을 처음 맛보고 있었다. 낯설지만 황홀한 감정이었다. 아무리 꼼꼼히 살펴보아도 희야는 선유를 닮은 구석이 없었다. 하지만 선유에게는 외모가 닮지 않았다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닮지 않은 희야가 낯설면서도 이미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었다는 두 감정이 선유 안에서 일렁거렸다.
모든 공연이 끝났다. 소망원은 아쉽게도 등수 안에 들지 못했다. 아이들의 표정에는 실망한 빛이 역력했다. 그래도 참가한 모든 팀이 골고루 상을 받았다. 선유와 호진은 희야와 사진을 찍으려고 다시 가까이 다가왔다.
“우리 희야 너무 잘하던걸.”
선유가 엄지를 들어 올려도 희야는 여전히 뚱했다. 두 사람에게서 몸을 감추려는 듯 평소 잘 따르는 초연이 옆에 찰싹 붙어 떨어지지를 않았다.
“엄마 아빠랑 사진 찍을까?”
희야는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럼, 초연 언니랑 찍을래?”
그제야 희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초연이의 손을 꼭 잡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었다. 선유는 어찌나 서운한지 초연이에게 질투가 나기까지 했다. 희야의 표정은 마치 ‘빨리 가세요.’라는 말이 담겨있는 듯했다.
홀을 빠져나갈 때도, 행사장 밖에서 전체 사진을 찍을 때도 희야는 선생님 옆에 바짝 붙어 두 사람에게는 여전히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선유와 호진은 희야의 뒤를 어쩔 수 없이 졸졸 따라갔다. 결국 희야와 말 한마디 나눠보지 못한 채 희야는 소망원 차에 냉큼 올라탔다.
“희야야, 인사드려야지.”
희정 이모가 차에 올라서는 희야에게 말을 건넸지만 듣는 척도 않았다.
“희야, 잘 가. 다음 주에 보자.”
선유는 서운한 마음을 담아 응답 없는 인사말을 건넸다.
선유는 희야가 탄 승합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무겁고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여보, 오늘 희야가 왜 그랬을까? 그 마음을 도무지 모르겠어.”
선유는 눈썹을 찡그리고 입술을 꾹 깨물며 말했다.
“글쎄...”
“아직은 우리보다 언니들이나 선생님이 더 의지가 되나 봐. 우리가 와서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아직도 우리가 부담스러운가?”
“그럴지도 모르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이 상태로 괜찮을까?”
선유는 공연히 발에 걸리는 작은 돌을 툭 걷어찼다.
“희야가 자꾸 변하잖아. 또 좋아지겠지.”
호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그럴까? 오늘은 선생님과 초연이한테 질투가 났어. 우리 딸이 될 아이가 우리보다 더 의지하니까. 아직은 당연한 건데. 나도 마음이 당황스러워. 당신은 어때?”
“난 그렇진 않아.”
호진은 담담히 대답했다. 선유는 조금 기운이 빠져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희야가 우리 딸이라고 생각할수록 마음이 조급해져. 빨리 희야랑 살고 싶어. 진짜 법적인 희야 엄마가 되고 싶어.”
선유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지금까지 잘 왔으니 조금만 참자’라고 스스로 다짐하며 차에 올랐다.
나중이 되자 희야는 그날 자신이 한 행동이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니 자신이 왜 두 사람에게 다가섰다 물러났다 하는 행동을 반복했는지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여름 여행을 다녀온 뒤부터, 희야 마음속에는 선유와 호진에 대한 작은 믿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왠지 자기를 떠나지 않을 것 같았다. 누구도 믿지 않는 희야였지만 이 두 사람은 믿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실낱같은 기대가 생겨났다. 니나와 성준이도 좋았다. 걸핏하면 시샘하고 물건을 뺏기도 하는 소망원 친구들보다 그 아이들과 노는 것이 더 재미있기도 했다.
하지만 가을이 되면서 희야에게는 묘한 불안 같은 것이 스물 대며 올라왔다. 가족이 되어 산다는 건 대체 어떤 느낌일까. 일주일에 한 번씩 가서 자고 오는 것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선유와 호진과 한집에서 매일 지내는 모습을 희야는 도무지 그려볼 수 없었다. 더구나 새로운 곳에서 학교까지 가야 한다고 했다. 희야의 작은 머리로는 도무지 가늠이 가지 않는 미래였다. 희야는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도, 미래를 공상하며 즐기는 아이도 아니었다. 그저 하루하루 주어진 대로 지낼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큰 변화가 밀려오는 듯한 예감이 희야를 덮칠 때가 있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선유와 호진이 다가올 변화의 전조처럼 느껴져서, 희야는 두 사람을 자꾸만 밀어내고 싶었다. 앞으로 일어날 변화가 점점 더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희야는 그날이 오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랐다.